나의 자유 이야기 /
좋아하는 동물 세 가지만 말해 보시라. 첫째는 외면적 자아(남이 이렇게 보아 주었으면 하는 나의 이미지), 둘째는 바라는 배우자 상, 셋째는 내면적 자아(실제 자아의 이미지)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큰아들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그는 세 번째를 ‘나무늘보’라 했다. 이 대답을 듣고 우리 가족 모두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평소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없이 게으르고 평화로워 보이는, 다른 동물들과 다투는 일도 없는 나무늘보.
24년 동안 큰애가 누구에게든 화내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세상에 급한 일 없는 그 애의 느긋함 앞에서 성질 급한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를 때가 많았다. 어렸을 때는 하도 굼떠(단추 채우기도 신발 신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야단치기도 여러 번이었으나 그럴 때마다 화난 엄마의 얼굴을 향해 빙글빙글 웃을 뿐이니 길게 야단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희한한 건 얼핏 게으르고 느려 보이는 그 애가 학교에 지각 한 번 한 적 없고 약속을 어긴 적도 내 기억 속엔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 애와 성질 급한 내가 해내는 일의 양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왜 늘 종종걸음 치는 것 같고 그 애는 시간이 남아도는 듯 보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대책 없이 느긋한 애를 군대에 보내게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웬걸, 아이는 군 생활 동안 표창장도 여러 번 받았고 덕분에 포상 휴가도 넉넉히 받아 오는 것이었다.
내게서 어찌 이런 아들이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전생에 도 닦다 온 듯한 이 아들을 키우며 이젠 덩달아 나도 많이 여유로워졌음을 느낀다. 그 애 옆에 있으면 세상에 그리 화낼 일도, 급한 일도 없는 것 같은 마음이 드니 말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세의 삶의 속도와 달리 자기만의 속도를 갖고 있는 큰아들 김재균.
이 애의 꿈은 한의사로서 국내뿐 아니라 의술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인술을 펼치는 것이다. 느림과 배려와 사랑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나무늘보 아들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그 애의 여유롭고 따스한 손길 아래에서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날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드린다.
강기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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