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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장애도 못말리는 14살 수형이의 꿈

등록 2009-02-19 21:55수정 2009-02-20 16:48

지적장애 3급인 박아무개군이 15일 낮 경남 마산시 봉암동 집에서 아버지와 점심을 먹고 있다. 박군은 위턱과 아래턱이 맞물리지 않는 개방교합으로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한 채 넘겨야 한다.  마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적장애 3급인 박아무개군이 15일 낮 경남 마산시 봉암동 집에서 아버지와 점심을 먹고 있다. 박군은 위턱과 아래턱이 맞물리지 않는 개방교합으로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한 채 넘겨야 한다. 마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나눔꽃 캠페인]
심장질환 아버지와 ‘보조금 44만원’ 생활
음식물 못씹는 개방교합 장애에도 웃고
비장애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다니며 씩씩
“프로게이머 돼 아빠와 매일 영화볼래요”

수형(14·마산 ㅊ중 1년)이는 다섯살 때부터 아버지(46)와 단둘이 산다. 어머니는 4년 전 한 번 만났다. 수형이의 기억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간 법원에서였는데, 그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했다. 수형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중국말을 참 잘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머니는 중국인이었다.

수형이가 두 살 때인 1997년, 어머니는 통장에 든 돈과 패물까지 거의 전재산을 갖고 집을 나갔다.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도 어머니를 찾겠다며 수형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집을 나갔다. 2000년 10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수형이는 다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다.

수형이는 두 가지 장애를 갖고 있다. 위턱과 아래턱이 맞물리지 않는 개방교합(골격성 2급 부정교합)에 지적장애 3급이 겹쳤다. 한 번도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아보지 못해 둘 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 자라면서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일감을 구하러 인력시장에 나간다. 하지만 공치는 날이 태반이다. 사실 올해 수형이 아버지는 단 하루도 일을 하지 못했다. 심장질환을 앓아 힘든 일을 할 수 없는데다, 요즘은 아예 일거리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가구주택 1층 안쪽의 부엌 딸린 단칸방에서 아버지는 하루종일 수형이를 기다리며 지낸다.

수형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 수업을 마치면 ‘마산 봉덕지역아동센터’에 간다. 그곳에서 밥도 먹고 저녁 7시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도 한다. 숙제도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챙기지만 영어·수학·과학 과목은 정말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래도 국어와 도덕은 좋아한다. 1학년 2학기 지필고사에서도 두 과목은 절반 이상 맞혔다.

강선은 담임교사는 “수형이는 책임감이 강해서 청소나 과제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하고, 늦잠을 자는 날은 가끔 지각을 하지만 결석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학교에서 유일하게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이지만, 비장애 학생들과 잘 어울려 지내며 성적도 꼴찌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까지 컴퓨터 게임을 한다. 아버지는 밖에서 뛰어놀지 않고 컴퓨터 앞에만 앉는다고 야단을 치지만, 수형이는 프로게이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컴퓨터 게임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키가 크려는지 앉은자리에서 밥 두 공기 정도는 뚝딱 해치운다. 하지만 개방교합 때문에 음식을 씹을 수 없어 단단하고 질긴 것은 거의 먹지 못한다. 먹고 싶은 것은 많지만 주로 라면처럼 씹지 않고 후루룩 삼킬 수 있는 것이나 햄과 같이 부드러운 것을 잘게 잘라서 먹는다.

지난해부터 틈틈이 수형이를 돌봐주고 있는 복지단체인 월드비전 경남지부 박혜진 복지사는 “얼마 전 수형이를 데리고 뷔페식당에 처음 갔는데, 그곳에서도 잡채처럼 그냥 삼킬 수 있는 것밖에 먹지 못했다”며 “젖먹이 시절에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았더라면 장애를 갖지 않았거나 지금처럼 상태가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대로 두면 제대로 소화를 못해 발육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정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1천만원이 넘는 치료비다. 수형이네 형편으로는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는 막대한 금액이다. 한 달에 50만원 정도 들어가는 생활비도 정부 보조금 44만원과 후원금 6만원으로 겨우 충당하는 처지다.

박석만 마산 봉덕지역아동센터장은 “그나마 주택공사에서 전세금을 지원해줘 한 달에 이자 7만원만 내고 살고 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 언제 방을 비워야 할지 알 수 없다”며 “시급한 건 수형이의 치료보다 마음놓고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형이와 아버지는 그래도 꿈을 잃지 않는다. 아버지는 방 벽면에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다. 모든 것이 생각과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적어두고 매일 각오를 다진다. 수형이에게도 그 문구를 읽게 한다. 형편이 나아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수형이와 프로야구 롯데의 경기를 보러가는 것이라고 한다. 수형이는 햄버거를 배불리 먹어보는 게 제일 하고 싶은 일이다.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때리지도 않고, 나와 같이 살아주시잖아요. 프로게이머가 돼 돈을 많이 벌면 아버지와 매일 영화를 보러 다닐 거예요.”

수형이는 어머니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멋진 자전거도 없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항상 곁에 있고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후원 : 월드비전(02)784-2004.

마산/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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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의 반값 등록금 실현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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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눕시다] ①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고통받는 이웃과 나눔 실천
당신의 손길이 희망입니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살림과 함께 구성원들의 집안 살림들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가난한 이웃들의 형편은 엄중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절박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 속에서 급기야 삶의 끈까지 놔버리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어렵다고 하면서 손 내밀기에 주저할 수 있지만, 실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눔과 분배를 통한 구성원간 연대가 절실한 것이다.

본디 같은 말인 나눔과 분배가 한국 사회에서는 달리 사용된다. 분배가 성장의 대칭어의 뜻을 갖고 있지만, 나눔은 그렇지 않다. 분배가 공적 영역으로서 제도와 연관된다면, ‘분배 제도’와 달리 ‘나눔 제도’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나눔은 주로 사적 영역의 온정, 기부, 베풂의 뜻을 가지고 있다. 실상,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살아 있는 국가라면 사회 구성원간 연대는 공적 분배 제도를 근간으로 하면서 사적 나눔으로 보완해야 하지만, 한국의 공적 분배 제도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최근 흐름이 보여주듯 민주주의가 뒷걸음치고 사회정의의 요구가 법과 질서의 으름장 앞에서 억압될 때 그나마 취약한 분배 제도마저 뒷걸음칠 위험에 처한다.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으로 장애인 등 몇몇 사회복지 비용이 줄어든 것이 비근한 예다.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은 나눔의 강조가 자칫 분배의 요구까지 희석시킨다는 비판을 불러올 수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분배의 제도화를 기다리기엔 워낙 절박하다. 실제로 한계상황에 내몰린 구성원들의 비탄과 절망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전시행정이나 눈속임들이 가화처럼 나불대는 것에 냉소를 보내는 것으로 멈추어선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나눔의 구체적 실천 속에서 분배의 제도화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 2009년, 역시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한겨레가 ‘나눔과 희망’을 말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진정한 나눔은 나에게 넘치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 일부를 떼어내 남에게 주는 것이다. 또 누군가 말했듯이 사람을 굳이 둘로 나누어야 한다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공자는 인간이라면 마지막까지 가져야 하는 조건으로 수오지심과 함께 측은지심을 꼽았다. 우리에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 따뜻한 연대가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사회는 아직 먼 희망일지 모른다. 분배의 제도화를 이뤄내기에도 우리의 힘은 아직 미약하다. 분명한 것은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것은 시민의 참여와 실천이라는 점이다. 참여와 실천 없이 시민사회는 성숙되지 않는다. 소박한 심정으로 나눔의 작은 실천들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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