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엠비시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문화방송>(MBC)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부에 밉보인 특정 방송사를 집요하게 때리는 ‘표적 고발’과 언론사·언론인에 대한 압수수색, 취재기자의 방문 취재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주거침입 혐의 기소, ‘성명 불상자’의 고발에서 비롯한 경찰의 언론인 조사. 모두 지난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일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한 기자와 언론사가 고소·고발, 강제수사 대상에 오르는 일이 빈번해지며 언론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언론계 안팎의 위기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지난달 22일 최초 보도한 <문화방송>(MBC)은 그 이후 여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서울시의원에 이어 29일에는 같은 당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박성제 문화방송 사장과 박성호 보도국장, 취재기자 등을 검찰에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여당은 문화방송이 윤 대통령의 발언 중 잘 들리지 않는 내용에 자막을 입혀 방송함으로써 윤 대통령의 명예와 국격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똑같은 자막을 달아 비슷한 시간에 방송을 내보낸 다른 방송사나, 그 발언을 그대로 활자로 옮긴 신문사 등 다른 언론사들은 고발하지 않았다.
대통령실도 문화방송 압박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문화방송에 비속어 논란 보도에 대한 구체적 경위를 밝히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해당 공문에서 문화방송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맞는 보도를 했는지 확인하겠다며 6개 항목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문화방송은 이미 앞서 23일 보도자료를 비롯해 여러 차례 공식 입장과 방송을 통해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에 관한 취재·보도 과정을 소상히 밝혔는데도, 대통령실이 직접 문화방송을 콕 집어 불필요한 압박성 공문을 보낸 것이다.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 방어에 나선 여권이 언론인 고발과 압박성 공문 발송 등 잇단 무리수를 두자, 언론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권의 ‘문화방송 때리기’를 “언론을 제물 삼아 대통령 자신이 초래한 위기를 모면하려는 행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현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문화방송) 보도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보도의 범주에 속한다”며 “법치와 자유를 누구보다 강조하는 대통령과 정부가 자유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이렇게 망가뜨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문화방송 앞에 닥친 지금의 상황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다른 비판 언론이 맞닥뜨려온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0월 대선후보 검증 취재를 위해 강원도 동해시 황하영 동부산업 대표 사무실을 찾은 <유피아이(UPI)뉴스> 기자 2명에게 지난달 14일 ‘공동주거침입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당시 이 매체 소속 기자 2명은 윤 대통령의 오랜 지인으로 알려진 황 대표의 사무실을 취재 목적으로 두차례 찾았다. 1차 방문에선 부재 중이던 황 대표는 만나지 못한 채 점심식사 중인 직원 1명을 상대로 기자라고 소개한 뒤 몇가지 질문을 던지고 나왔다. 사진도 몇장 찍었다. 기자들은 빠뜨린 질문이 있어 약 5분 뒤 다시 사무실을 찾았으나 이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에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서성이다가 화장실에 갔던 직원을 다시 만나 추가 질문을 던진 뒤 자리를 떠났다.
이후 기자들은 경찰로부터 황 대표 사무실에 무단침입한 사건으로 고소가 접수됐으니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고소인은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직원이었다. 기자의 취재 목적 방문에 대해 주거침입이라며 죄를 묻겠다고 나온 것이다.
유피아이뉴스 쪽은 이해할 수 없는 고소와 무리한 기소의 배경에는 황 대표와 윤 대통령의 오랜 친분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기자협회도 검찰의 기소 직후 성명을 내어 “윤 대통령과의 특수관계가 정상적인 언론 취재를 범죄로 몰아 재판에 넘기는 과정에 영향을 준 것이라면 이는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언론탄압”이라고 짚었다.
윤 대통령 관저 변경 논란과 김건희 여사 개입 의혹 등을 보도한 <한겨레> 기자에 대한 ‘성명 불상’ 고발인의 형사고발과 지난달 5일 경찰의 해당 기자 조사도 언론단체의 반발로 이어졌다. 경찰 조사 방침이 전해지자 한국기자협회는 성명에서 “공적인 영역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를 당사자도 아닌 ‘성명불상’자를 통해 형사고발하는 것은 언론의 권력 감시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행위이며, 피고발인의 방어권마저 침해하는 비겁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해 이른바 ‘쥴리’ 의혹을 제기해온 시민언론 <더탐사> 사무실과 취재기자에 대한 지난 8~9월 경찰의 압수수색,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 녹취록을 보도한 <뉴스타파>에 대한 대통령실의 법적 대응 예고도 출범한 지 5개월이 채 안 되는 현 정부 아래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김 여사 녹취록 등을 보도한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고, 검찰은 그런 대통령의 뜻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을 거라는 점에서 대통령실이 직접 비판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다는 건 취재기자 입장에서 굉장히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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