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한겨레]
1988년 봄, 저는 대학 새내기였습니다. 농활이라는 것을 처음 갔는데, 경기도 평택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곳은 싸움터였습니다. 지주에게 들을 빼앗긴 농민들과 함께 ‘모내기 투쟁’을 했고, 소리 지르며 달려드는 백골단을 피해 발이 척척 빠져드는 논두렁을 달렸습니다. 바로 그날(5월15일) 한겨레신문이 창간 되었습니다. 1995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하기 전까지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한겨레〉를 읽었습니다.
1999년 여름, 경제부 기자로 기획예산처를 출입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던 공무원이 “한겨레신문 주주인데, 도대체 배당은 언제 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시절엔 공무원이 〈한겨레〉 주식을 사기 어려웠을 텐데 참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로 이미 배당은 받은 셈 아니냐고 되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배당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아온 터라 이골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은 쓰렸습니다. 하루빨리 좋은 신문을 만들어 상장도 하고 배당도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2003년 가을, 한겨레 사원들이 퇴직금을 출자전환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민주화가 되면 될수록 〈한겨레〉가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졌습니다. 민주화의 과실을 따먹기는커녕, 신문사 살림살이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우리사주조합입니다.
2004년 겨울, 80여명의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난파할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한 자기희생이었습니다. 겨울은 지났으나 아직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라고.
지난 12일 저는 〈한겨레〉 노동조합과 우리사주조합을 대표하는 겸임조합장에 당선됐습니다. “축하해야 하는 것 맞느냐”는 어정쩡한 축하 인사를 많이 들었습니다. 조합장이라는 직책이 고단한 자리라는 걸 아시기 때문일 겁니다. 자웅동체의 원시동물처럼 노동자와 주주가 한 몸입니다. 더 많은 월급을 받으려면 더 좋은 신문, 더 좋은 회사를 만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겨레〉 사원들과 주주·독자는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입니다. 〈한겨레〉 창간호에는 “너를 낳아준 국민의 뜻을 잊지 말라”는 큼지막한 기사가 있습니다. 그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재성 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 위원장 겸 우리사주조합 조합장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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