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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판사’ 명단 공개 반대한 신문들

등록 2007-01-31 17:57수정 2007-01-31 19:22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미디어 전망대
유신정권 때의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 사례와 담당 판사 명단 공개를 다수 신문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공개를 분명히 찬성한 중앙일간지로는 명단을 미리 입수하여 먼저 공개한 〈한겨레〉와 〈경향신문〉뿐이다. 국가기관이 만든 자료라면 비밀이 아닌 이상 공개가 마땅하다. 이번에 문제된 진실화해위원회의 긴급조치 관련 자료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공개행정을 요구해 왔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언론이 이번만은 덮어두자면서 명단 공개에 반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신문들이 사설이나 외부 필진을 동원하여 명단 공개에 반대한 논리는 이렇다. 악법도 법인 이상 판사는 실정법에 의거해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당시의 실정법에 따라 재판할 수밖에 없었던 판사들의 이름을 30년이 흐른 지금의 잣대로 망신 주려는 것은 정치적 정략적 의도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명단 공개는 해당 법관들에 대한 명백한 징벌이며, 여론몰이를 통해 유신 판사로 낙인찍자는 것이다.

사설들은 더 나아가 명단공개가 민주주의의 밑받침인 법치주의의 근간을 유린하는 헌법파괴적 발상이며 (〈세계일보〉), 마녀사냥식 접근법(〈서울신문〉)이고, 여론재판이고 포퓰리즘(〈문화일보〉)이며, 반대세력 욕보이기를 위한 사실상의 인민재판(〈동아일보〉)이라고 비판했다. 누구나 재판 기록을 열람하고 판사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데도 굳이 이를 모아 발표하겠다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법관은 재판으로 말한다고 한다. 법관은 자신이 내린 판결로써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단지 박정희 개인이나 유신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죄로 판결한 것이 당시의 재판이었다. 그런 점에서 유신시대에 긴급조치 사건을 맡았다는 것은 법관으로서는 불행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당시 곡필을 강요받았던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시대적인 상황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과거에 썼던 글이 들춰져 끊임없이 비판받는 언론인들과 마찬가지로 법관도 과거의 재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재판기록 열람이 가능한데, 왜 굳이 이를 모아 공개하느냐 하는 비판은 정부에 요청하면 정책 자료를 다 받아볼 수 있는데, 왜 굳이 이를 발표하고, 보도하느냐 하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무시한, 공허한 주장이다. 명단 공개를 헌법 파괴나 인민 재판 등으로 비난하는 데 이르면, 왜 신문들이 명단 공개에 대해 이토록 흥분하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동아일보 사설은 특히 동아일보가 유신정권에 저항하다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백지 광고 사태를 겪었음에도 이번의 판사 명단 공개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은 진정한 화해에 역행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사설은 백지 광고 사태의 전반부만 설명한 것이다. 동아일보에서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을 주도했던 기자들은 몇 달 뒤 회사에 의해 무더기로 해직당했다는 후반부가 여기에 덧붙여져야 한다.

과거 재판과 관련한 판사들의 명단 공개는 이른바 인혁당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에 뒤이어 사법부가 새로 태어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번 명단 공개는 해당 판사는 물론 사법부 전체가 판결의 엄중함을 깨닫고 과거의 행적을 반성하며, 새로워지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이 이를 반대하는 것은 명단 공개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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