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보도 노숙인들
[하니바람] 리포트 기고 -노숙인들과 말동무하기
#1. 덕수궁 지하보도 많은 분들이 이미 자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바닥에 매트를 깔고 홑이불만 머리끝까지 덮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커피를 건네며 잠자리를 준비하는 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분, 저렇게 자다가는 감기 심하게 걸리겠는걸요?” “아, 괜찮아요. 지금 다른 사람이 상자 가지러 갔어요. 그 사람이 상자를 가지고 와서 바람막이를 만들어 줄 거예요.” 옆에서 커피를 타던 선생님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보충 설명을 덧붙입니다. “담요 같은 것들은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지만 상자는 부피가 커서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대개 상자는 아침에 버리거든요. 저녁때쯤에는 다시 주우러 다니고요.”
#2. 시청역 을지로 방향 출구 계단 중간에서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깔고 계신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출구 중간이라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는데요. 지하보도로 내려가서 주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기가 더 좋아. 저 아래쪽은 따뜻하기는 해도 새벽 4시 반이면 역무원들이 깨우거든. 여기는 늦게까지 잘 수 있지. 이곳도 여기 빌딩에 계신 분들이 많이 봐줘서 잘 수 있는 공간이라네.” “식사는 하셨어요? 지난번에는 속이 안 좋으시다며 무료진료소에서 타온 약을 드셨잖아요.” “지금은 괜찮아. 밥은 먹더라도 조금만 먹어야 돼. 안 그러면 속을 다치지.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겁이 나. 너무 많이 먹어서 돈 사람도 봤다고. 하지만 나눠주는 곳의 시간이 들쭉날쭉해서 밥을 제대로 챙겨먹기가 쉽지 않아. 먹으러 가면 다 떨어졌다고 하는 경우도 많거든.” “곧 설인데 어떻게 보내실 거예요?” “명절이 돌아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슬프지. 사람이 열심히 일하다가 쉬어야 기쁘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서울역에서 무슨 행사 없대요?” “글쎄, 해마다 뭘 했는데 올해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 40대 전후의 남자 분이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너무 말끔해 보여서 진짜 노숙인인가 싶었습니다. “이거 받으세요. 설이라고 어떤 교회에서 주네요. 전 두 개예요.” “고마워.” 툭 던져 주고 가는 것이 황토내의입니다. #3. 을지로역 만남의 광장 을지로의 노숙인들이 평소보다 많이 모였습니다. 가지고 간 커피와 더운물이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에게 전해 주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노숙인들은 자신의 커피를 챙기다가도 나이 많으신 분이나 몸이 불편한 분 것도 챙겨다 드렸습니다. “을지로의 경우 노숙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들 사이에 대표가 있어서 후원물품이 들어올 경우 연장자나 장애인분들을 먼저 챙겨드리죠. 또 술 먹고 난동 피우지 말자는 최소한의 규율들을 지키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노숙인 쉼터 ‘아침을 여는 집’ 이제원 팀장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4. 덕수궁 대한문 앞 2~3년 정도 거리상담을 꾸준히 하고 있는 한 베테랑 자원 활동가는 일년 전 어느 노숙인으로부터 장갑을 선물 받았답니다. 1년 만에 그 노숙인을 또 만나게 되었고, 그 노숙인은 그 자원 활동가가 아직도 자신이 선물한 장갑을 끼고 다른 노숙인들을 정성껏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매우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작은 선물을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참 감사했나 봅니다. #5. 버스 안 ‘나는 이 활동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단지 내 만족을 채우자고 이 일을 하고 있나? 나는 아직까지는 무임 승객이다’라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실무자와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며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끝이 없는 자원 활동에서 어떤 책임을 맡겠다고 손을 들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실무자만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며 매주 나와서 활동해 주기를 종용합니다. 아이엠에프 국가부도 사태로 급증한 거리생활자에 대해서는 ‘노숙자’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숙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나빠지면서 하나의 낙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돕는 사회단체들에선 인권존중의 의미를 담아 ‘노숙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전국엔 5000명이 넘는 노숙인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숙인의 경우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때문에 조사하기가 쉽지 않고 쪽방 거주민 등의 주거불안정 계층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 많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제게 서울 시청역 부근의 노숙인들은 그저 노숙인이었습니다. 지금은 단지 노숙인들만은 아닙니다. 그들을 알아간다는 것이 혹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겁이 납니다. 예전 한국도시연구소에 있던 김수현 박사의 강연이 떠오릅니다. “저는 사회복지가 운명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을 끝까지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숙인과 거리 상담 하기는 참 좋지만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단 계속 가보자입니다. 글 나혜영 hyeyoungz@hanmail.net/<하니바람> 리포터, 사진 류우종 wjryu@hani.co.kr/<한겨레21>부 사진팀
#1. 덕수궁 지하보도 많은 분들이 이미 자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바닥에 매트를 깔고 홑이불만 머리끝까지 덮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커피를 건네며 잠자리를 준비하는 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분, 저렇게 자다가는 감기 심하게 걸리겠는걸요?” “아, 괜찮아요. 지금 다른 사람이 상자 가지러 갔어요. 그 사람이 상자를 가지고 와서 바람막이를 만들어 줄 거예요.” 옆에서 커피를 타던 선생님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보충 설명을 덧붙입니다. “담요 같은 것들은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지만 상자는 부피가 커서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대개 상자는 아침에 버리거든요. 저녁때쯤에는 다시 주우러 다니고요.”
#2. 시청역 을지로 방향 출구 계단 중간에서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깔고 계신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출구 중간이라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는데요. 지하보도로 내려가서 주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기가 더 좋아. 저 아래쪽은 따뜻하기는 해도 새벽 4시 반이면 역무원들이 깨우거든. 여기는 늦게까지 잘 수 있지. 이곳도 여기 빌딩에 계신 분들이 많이 봐줘서 잘 수 있는 공간이라네.” “식사는 하셨어요? 지난번에는 속이 안 좋으시다며 무료진료소에서 타온 약을 드셨잖아요.” “지금은 괜찮아. 밥은 먹더라도 조금만 먹어야 돼. 안 그러면 속을 다치지.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겁이 나. 너무 많이 먹어서 돈 사람도 봤다고. 하지만 나눠주는 곳의 시간이 들쭉날쭉해서 밥을 제대로 챙겨먹기가 쉽지 않아. 먹으러 가면 다 떨어졌다고 하는 경우도 많거든.” “곧 설인데 어떻게 보내실 거예요?” “명절이 돌아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슬프지. 사람이 열심히 일하다가 쉬어야 기쁘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서울역에서 무슨 행사 없대요?” “글쎄, 해마다 뭘 했는데 올해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 40대 전후의 남자 분이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너무 말끔해 보여서 진짜 노숙인인가 싶었습니다. “이거 받으세요. 설이라고 어떤 교회에서 주네요. 전 두 개예요.” “고마워.” 툭 던져 주고 가는 것이 황토내의입니다. #3. 을지로역 만남의 광장 을지로의 노숙인들이 평소보다 많이 모였습니다. 가지고 간 커피와 더운물이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에게 전해 주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노숙인들은 자신의 커피를 챙기다가도 나이 많으신 분이나 몸이 불편한 분 것도 챙겨다 드렸습니다. “을지로의 경우 노숙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들 사이에 대표가 있어서 후원물품이 들어올 경우 연장자나 장애인분들을 먼저 챙겨드리죠. 또 술 먹고 난동 피우지 말자는 최소한의 규율들을 지키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노숙인 쉼터 ‘아침을 여는 집’ 이제원 팀장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4. 덕수궁 대한문 앞 2~3년 정도 거리상담을 꾸준히 하고 있는 한 베테랑 자원 활동가는 일년 전 어느 노숙인으로부터 장갑을 선물 받았답니다. 1년 만에 그 노숙인을 또 만나게 되었고, 그 노숙인은 그 자원 활동가가 아직도 자신이 선물한 장갑을 끼고 다른 노숙인들을 정성껏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매우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작은 선물을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참 감사했나 봅니다. #5. 버스 안 ‘나는 이 활동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단지 내 만족을 채우자고 이 일을 하고 있나? 나는 아직까지는 무임 승객이다’라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실무자와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며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끝이 없는 자원 활동에서 어떤 책임을 맡겠다고 손을 들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실무자만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며 매주 나와서 활동해 주기를 종용합니다. 아이엠에프 국가부도 사태로 급증한 거리생활자에 대해서는 ‘노숙자’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숙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나빠지면서 하나의 낙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돕는 사회단체들에선 인권존중의 의미를 담아 ‘노숙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전국엔 5000명이 넘는 노숙인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숙인의 경우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때문에 조사하기가 쉽지 않고 쪽방 거주민 등의 주거불안정 계층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 많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제게 서울 시청역 부근의 노숙인들은 그저 노숙인이었습니다. 지금은 단지 노숙인들만은 아닙니다. 그들을 알아간다는 것이 혹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겁이 납니다. 예전 한국도시연구소에 있던 김수현 박사의 강연이 떠오릅니다. “저는 사회복지가 운명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을 끝까지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숙인과 거리 상담 하기는 참 좋지만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단 계속 가보자입니다. 글 나혜영 hyeyoungz@hanmail.net/<하니바람> 리포터, 사진 류우종 wjryu@hani.co.kr/<한겨레21>부 사진팀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