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안(오른쪽) 신임 언론노조 위원장이 지난 3월7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신학림 전 위원장으로부터 건네받은 깃발을 흔들고 있다. 언론노조 제공
중앙집행위원 대부분 “내부 진상조사 우선”
새 위원장 고발 강행…뒤늦게 “유감” 밝혀
새 위원장 고발 강행…뒤늦게 “유감” 밝혀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이 전임 집행부 때 발생한 횡령·회계부정 의혹에 대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자체 진상조사에 나섰다.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무너진 신뢰 회복,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움직임에 들어간 것이다. 바깥에선 검찰이 본격 수사에 들어가 결과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태에 전임·신임 집행부 간 노선 갈등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과 관련한 정황들도 눈에 띈다. 노선 다른 신임 집행부=한국방송 출신의 이준안 신임 위원장은 지난 2월 예상을 뒤엎고 기존 집행부의 노선을 이어받은 현상윤 후보(전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당선됐다. 이는 기존 언론노조 집행부와 최근 다른 노선을 보여온 한국방송 노조의 조직적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를테면 ‘비운동권’ 집행부가 들어선 셈”이라고 한 언론노조 지부장은 말했다. 언론노조는 지난 2000년 전국 신문·방송·출판·인쇄 등 매체산업 노동자들의 단일 산별노조로 창립됐다. 느슨한 연대체인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1988년 창립)의 125개 기업별노조를 하나의 조직으로 통일시킨 것이다. 조중동은 언론노조에 참여하지 않았다. 최문순 언론노조 초대 위원장은 권영길 언론노련 초대 위원장 이래 기치로 삼아온 언론개혁, 편집권 독립, 공공성 강화 등을 그대로 계승했다. 이후 들어선 김용백·신학림 위원장도 기존 노선을 이어받았다. 기존 언론노조 집행부와 한국방송 노조 간의 틈새가 벌어진 건 2001년 이후로 전해진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이용택·강철구 한국방송 노조 간부 제명사태, 조합비 삭감 갈등,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시각차 등에서 언론노조와 한국방송 노조는 갈등을 빚어왔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언론노조 관계자는 “신임 집행부가 드러내놓고 기존 집행부와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진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견해차 등을 점차 드러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횡령·회계부정 의혹 제기 과정=이준안 위원장은 지난 3월 취임 직후 한국방송 출신의 최철호·이해원씨를 ‘인수위원’ 격인 부위원장 서리로 임명했다. 이들은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총무부장의 3억3천여만원 횡령, 신학림 전 위원장의 1200여만원 기금 대출, 불법 정치자금 전달 등 의혹을 제기했다. 이 위원장은 “내부 진상조사가 우선”이라는 다수 중집위원의 의견을 무시하고 지난달 23일 홀로 검찰 고발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전임 집행부 쪽 소명은 전혀 묻지 않았다고 신 전 위원장은 전했다. 의혹이 처음 보고된 지난달 20일 중집 회의장 바깥에서 조선·동아일보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노조 산하 신문·통신사 지부장들의 모임인 전국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는 24일 긴급 총회를 열어 △검찰 고발을 강행한 이 위원장의 사과 △조선·동아일보 기자가 중집 회의를 취재하게 된 경위 해명 △언론노조 지도부 분열에 대한 반성과 대책 등을 요구하기로 하고, 이런 입장을 이 위원장에게 전했다. 이 위원장은 26일 중집 회의에서 “충분한 의사 수렴과 진상조사 노력 없이 이번 사태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로써 갈등이 봉합된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방송 쪽 중집위원이 전원 불참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또 다른 언론노조 관계자는 “노선 갈등은 여전히 미봉된 상태”라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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