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미디어 전망대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에 실려 있는 말이다. 이를 인용하는 까닭은 포털을 나무라면서도 포털 콘텐츠의 젖줄 구실을 하며 포털 비대화에 일조하는 콘텐츠 생산자들의 ‘이율배반’을 논하기 위해서다.
올드미디어, 특히 신문은 포털의 행태를 탐탁지 않아 한다. 최근만 해도 〈동아일보〉는 포털의 ‘문어발’ 확장을 ‘저인망’으로 비판하고(5월16일치) 다음 날 “‘공룡 포털’의 해악을 걱정하는 이유”를 사설로 다루었다. 주간지 〈한겨레21〉의 지난 3월16일치 표지이야기는 “포털, 풀까지 뜯어먹는 사자”였다. 포털 공략에는 이른바 보수나 진보의 성향 차이도 없다.
포털에 대한 비판의 논점이 한두 가지는 아니지만 크게 보면 두 갈래다. 하나는 과도한 시장 지배력으로 뉴스 등의 온갖 콘텐츠 영역을 종속해 ‘웹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데도 기사를 자의적으로 편집하고 오보나 명예훼손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정확한 지적이자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다. 그러나 따져볼 일이다. 포털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미끼, 즉 화면 정 가운데에 배치한 뉴스 콘텐츠는 누가 공급한 것인가?
포털은 대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대신 신문과 같은 올드미디어는 물론 인터넷언론 등이 만든 기사를 변형하지 않고 유통시키는 데 치중한다. 포털의 저널리즘 기능은 뉴스의 취사선택, 제목수정, 이슈별 재분류 등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신문사를 비롯한 콘텐츠 생산 주체가 포털에 아무런 뉴스기사도 제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포털의 유통시장 장악이 지금처럼 무소불위할지 의문이다. 포털의 편집행위 역시 작위적이라고 개탄할 이유가 희박해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모든 주체들은 자체 유통창구를 살찌우기보다 포털에 의해 ‘재매개’되는 쉬운 길을 선택했다. 포털의 무차별적인 포식 습성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그 먹잇감을 자처한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다. 도리어 포털의 ‘대문’에 진입하려고 자극적인 뉴스거리를 좇고 경박하게 접근하는 것조차 마다지 않는다.
정치권은 포털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법안 마련에 부심 중이다. 특히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검색서비스 사업자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검색결과의 인위적 조작 등을 막기 위한 포털의 자체 편집 금지 및 자동검색 서비스 의무화가 골자다. 취지는 이해하나 과연 미로처럼 복잡한 사이버 공간을 일률적이고 표준화된 ‘방향타’로 항해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일까?
창발적 속성을 지닌 인터넷 세계에서는 법과 규제가 능사가 아니다. 이보다는 ‘생각 깊은 나무’에 의지하는 편이 낫다. 스스로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다고 얘기하는. 거대 포털에 기대어 자체 콘텐츠를 함부로 유통시키지 말고 스스로 진지를 구축하는 독립군 정신이 먼저다.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창발적 속성을 지닌 인터넷 세계에서는 법과 규제가 능사가 아니다. 이보다는 ‘생각 깊은 나무’에 의지하는 편이 낫다. 스스로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다고 얘기하는. 거대 포털에 기대어 자체 콘텐츠를 함부로 유통시키지 말고 스스로 진지를 구축하는 독립군 정신이 먼저다.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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