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창간 20돌] 출발! 새로운 20년
- 2028년의 <한겨레> 가상 콩트
뇌물사건 특종 보도기 “5분 남은 거 알죠?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왜 매일 이래요? 신문 만들기 싫어요? 저녁때 술마셨어요?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쉽게 가자니까요!” 저 목소리 지겹다. 누군 쉬운 거 모르나. 결정을 해야 했다. 전송 사인만 보내면 모든 것이 끝난다. 테라헤르츠 파동에 실린 기사는 순식간에 한반도 전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러시아, 유럽, 미국 등지로 전송될 것이다. 의혹은 몇 달 전부터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웬일인지 걸려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가 상승으로 재미를 본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과 거물급 투자자들 탓인지 주요 외신들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숨죽인 언론과 광고업계에선 “역시 ‘숭숭’”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정성이 갸륵했다. 그 많은 돈을 수없이 잘게 쪼개 주고받은 20세기형 후진적 뇌물사건. 터무니없이 단순해 ‘검은돈’을 실시간으로 걸러내는 최첨단 금융거래 시스템 ‘주판알’이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취재결과 드러났다. ‘받은 놈’은 인정하는데 ‘준 놈’은 잡아떼는 상황. 돈이 오간 현장을 잡은 ‘세동시스템’의 영상만 확보하면 숭숭그룹 박아무개 회장과 숭숭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중국과 미국, 일본의 다국적 기업 관계자, 고위 정치인 등 열댓명이 한꺼번에 철창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그 마지막 고리를 찾느라 세동시스템 내부 제보자와 접촉하기 위해 취재팀을 보낸 것이 정확히 9시간 전이었다.
“황 선배, 신문 만들기 싫어요? 왜 이래? 4분 남았다니까!” 1분 전 나를 닦달하던 방송에디터가 이번엔 사회에디터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뉴스 계약을 맺은 외국 뉴스채널 보도시간에 맞추려니 방송에디터의 시계는 일곱 나라의 뉴스타임에 맞춰 제각각 돌아간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특종은 결국 ‘사람’한테서 나오지만, 마감시간을 넘긴 특종은 술안주로나 쓸까? 제보, 제보였다.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한 우편물이 내 책상에 올라온 것은 정오, 아이피방송 제작 사인이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전자우편이 아닌 소인이 찍힌 우편물을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메일 검열을 피한 것이 분명했다. 보낸 사람을 밝히지 않은 봉투에서 새끼손톱만한 메모리칩이 미끄러져 나왔다. 6개월 전 뉴스룸으로 들어온 익명의 우편물도 그랬다. 그때도 메모리칩이었다. 평양 재개발 사업과 개마고원 리조트 건설 짬짜미 입찰 제보로 숭숭건설 등 7개 건설사가 줄줄이 날아갔다. 관련자들이 구속되고 공동 환경보전구역(옛 비무장지대) 북쪽에서 2년간, 남쪽에선 1년간 공공기관 발주사업 입찰이 금지됐다. 북한 막개발 문제가 심각해지던 시점에 나온 <한겨레> 보도로, 북한 당국도 개발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시작과 끝이 제대로 된 기사였다.
이번에도 ‘느낌’이 왔다. 메모리칩을 뉴스룸 전용 스크린에 연결하자 1270쪽에 이르는 서류와 27초짜리 짧은 고화질 동영상이 투명 디스플레이에 펼쳐졌다. “숭숭, 제대로 걸렸구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크린 위로 한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숭숭그룹과 중국·미국·일본의 다국적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따낸 세동시스템 사업의 이중계약서가 빠르게 지나갔다. 숭숭. 31개 계열사와 46곳에 국외 법인을 거느린 다국적 기업집단. 불과 15년 사이에 거대 기업집단으로 성장한 숭숭그룹은 태생부터 <한겨레>와 적대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맞서 “미친소는 너나 드세요”라며 국민적 저항이 일던 2008년. “한국의 평화적 집회문화”라는 설명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된 ‘촛불집회’가 들불처럼 번지던 때였다. 박 회장은 식품수입 회사 숭숭유통을 차렸다. 의지 없는 정부와 막무가내 미국 사이에서 수입위생조건 재협상이 지루하게 전개됐다. 회사 이름이 ‘숭숭’인 이유가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 소만 사 왔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당시 신문은 전하고 있다. 박 회장은 숭숭건설을 만들어 당시 정권이 추진하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결국 대운하 사업이 좌초되면서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돈벌이’를 모토로 하는 숭숭그룹은 ‘노동-자본-국가’가 한국형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낸 이른바 ‘2017년 체제’에서도 한쪽 발만 걸쳤다. 정치에서 자본으로 권력이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생산과 고용, 복지를 둘러싼 싸움은 한층 심해졌고, 삼자 모두 한발씩 물러서 ‘대타협’이라는 합의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숭숭은 ‘비정규직 고용비율 7% 이하’ 규정, ‘여성 임원 비율 50% 이상’ 규정 등을 교묘하게 피해 가거나 무시했다.
동영상에는 숭숭그룹 박 회장이 실세 정치인 3명과 만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박 회장 왼쪽 볼의 작은 점까지 선명했다. 마저 저장하지 못한 듯 화면은 ‘결정적 장면’에서 갑자기 끊겼다. 불현듯 오늘 아침 누군가 차를 긁고 갔다는 사실이 떠올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거미줄 기술이 적용된 탓에 며칠 지나면 저절로 원상복구될 터였다. 화면을 복구해야 했다. 제보자를 만나야 했다.
긴급 편집회의가 소집됐다. 관련 부처와 출입처에 나가 있던 현장기자들이 화상 연결을 통해 회의에 참석했다. 디비(DB)팀에는 메모리칩에 등장하는 기업인·정치인·공무원 관련 파일, 2천억원 이상 리베이트·분식회계 사건 파일, 최근 20년 동안 나온 공공감시 시스템 정책, 인권단체 활동내용, 세동시스템 개요 등을 시간에 맞춰 회의실로 전송할 것을 지시했다. 자료는 정확히 15분 뒤 좌우에서 모두 볼 수 있도록 회의실 중간에 설치된 투명 디스플레이로 전송됐다.
지난 세기 한 정보기관장의 이름을 딴 세동시스템 사업은 서울·베이징·도쿄·뉴욕을 묶는 통합감시 프로젝트다. 이 사업을 수주한 숭숭엔지니어링이 수주액의 2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리베이트를 정치권과 관료에게 뿌렸다는게 제보의 뼈대였다. 위험물질·위험인물 추적을 목적으로 한 세동시스템은 도입 추진 당시부터 각국 인권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세동시스템 개발을 주도한 숭숭엔지니어링의 이름을 빗대, 인권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는 말도 나돌았다. 인권단체들의 싸움은 전자감시 기술발전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힘들어진다는 ‘숭숭의 법칙’도 생겼다. 953만여 서울시민들이 촘촘한 그물망에 포획될 판이었다.
제보가 사실로 확인되면 내일치 1면 머릿기사를 포함해 9개 면을 털어 집중보도를 하기로 결정됐다. 각 분야 전문기자들에게 향후 정치·경제에 미칠 영향, 법적 처리방향, 제도적 대책, 외교적 문제들과 관련된 분석기사 작성 지시가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기자 열댓명이 며칠을 달라붙어야 겨우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현장기자 몇 명이, 지난한 싸움 끝에 얻어낸 새 정보공개 청구제도, 정치·경제·사회·문화 정보가 집적된 한겨레 디비시스템을 통해 단 몇시간이면 주요 팩트를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 5대 두뇌집단인 한겨레경제연구소와 교수 및 전문가들의 자문시스템도 작동에 들어갔다.
컴퓨터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수십대의 컴퓨터와 대형 모니터가 줄지어 놓여 있던 편집국은 5년 전에 사라졌다. 뉴스룸의 기자별 코드가 부여된 좌석에는 약한 자기장이 흐른다. 자기장으로 미세한 손가락 움직임까지 잡아내는 포인트 스크린 덕에 키보드와 마우스가 없어도 신문제작을 할 수 있다. 기계치인 임 부장은 여전히 엉뚱한 곳을 두들기는 일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와 아이피방송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선택형 편집으로 제작된 뒤 전자신문 형태로 ‘배달’된다. ‘대중적 정론지’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고급지’라는, 40년 전 창간 당시부터 고민해 온 가치가 동시 구현된 것은 2018년부터였다. 축적된 신문제작 노하우와 데이터베이스, 인적 네트워크가 전자신문 제작 기술과 맞물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자신문과 종이신문은 공존한다.
“20년 뒤에 종이신문을 누가 보겠나”라는 말은 기우에 불과했다. 여전히 펼치고, 접고, 밑줄 긋고, 스크랩하기를 원하는 독자들, 기록은 여전히 ‘종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종이신문이 배달된다. 종이신문 역시 독자들의 요구사항에 따라 나이·성별·직업·취미 등에 맞춰 개별적으로 편집·인쇄된다. 본사 별관 1층의 한겨레신문 박물관에는 <한겨레> 창간 당시 윤전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8면을 시간당 2만4천부밖에 찍지 못했어도 ‘감격’이었다고 한다.
종이신문이 배달되기에 조금 앞서 전자신문과 뉴스메일, 아이피방송을 타고 기사가 뿌려진다.
사실과 정보는 빛의 속도로 전달되지만, 오보 역시 빛의 속도로 퍼지기에 ‘취재기자-조사기자-팀장-에디터-국장’을 거치며 꼼꼼하게 다듬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전 10시 1차 편집회의에서 주요 기사로 결정됐던 ‘비례대표 이어 첫 다문화 가족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 ‘중국어 광풍 식혀버린 실시간 언어 번역기 열풍’, ‘광우병 추적 동물신용 인프라 시스템도 허점’, ‘국제 우주정거장 화재, 한국 우주인 안전’ 등의 기사 지면이 조정됐다.
박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뉴스룸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선배, 지금 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17분20초짜리 동영상이 박 기자의 휴대용 전송기를 통해 뉴스룸으로 들어왔다. 방송사 출신인 박 기자는 현장에서 편집까지 끝마쳤다. 화면 속의 박 회장은 웃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기술에 스스로 걸려든 꼴이다. 기술의 역습!
40년 전 ‘현장’에서 전화로 기사를 ‘불렀던’ 시대가 있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한겨레>는 1988년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컴퓨터 제작 체제(CTS)를 도입했다. 95년에는 국내 언론사 가운데 두 번째로 기사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96년 총선 때는 신문사로는 처음으로 선거 개표 상황을 컴퓨터 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10년 전 창간 30돌에 맞춰 전면적인 맞춤형·선택형 전자신문 시대를 연 것도 <한겨레>였다.
전자신문 기사 일부가 수정됐다. 종이신문 시절 밤마다 5차례 정도 수정되던 기사는 이제 24시간 항시 수정체제로 바뀌었다. 밤은 길어졌고, 기사는 그만큼 분석의 깊이와 날카로움을 벼릴 수 있게 됐다.
새벽. 야간국장에게 일을 맡기고 서울 공덕동 본사를 나섰다. 건물은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개조됐지만 2층 로비를 지키는 송건호 선생의 흉상과 6만여 주주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은 세월의 더께를 이기고 여전히 빛나고 있다. 그 빛은 낮은 바닥을 향해 따뜻하게 퍼졌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뇌물사건 특종 보도기 “5분 남은 거 알죠?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왜 매일 이래요? 신문 만들기 싫어요? 저녁때 술마셨어요?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쉽게 가자니까요!” 저 목소리 지겹다. 누군 쉬운 거 모르나. 결정을 해야 했다. 전송 사인만 보내면 모든 것이 끝난다. 테라헤르츠 파동에 실린 기사는 순식간에 한반도 전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러시아, 유럽, 미국 등지로 전송될 것이다. 의혹은 몇 달 전부터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웬일인지 걸려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가 상승으로 재미를 본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과 거물급 투자자들 탓인지 주요 외신들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숨죽인 언론과 광고업계에선 “역시 ‘숭숭’”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정성이 갸륵했다. 그 많은 돈을 수없이 잘게 쪼개 주고받은 20세기형 후진적 뇌물사건. 터무니없이 단순해 ‘검은돈’을 실시간으로 걸러내는 최첨단 금융거래 시스템 ‘주판알’이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취재결과 드러났다. ‘받은 놈’은 인정하는데 ‘준 놈’은 잡아떼는 상황. 돈이 오간 현장을 잡은 ‘세동시스템’의 영상만 확보하면 숭숭그룹 박아무개 회장과 숭숭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중국과 미국, 일본의 다국적 기업 관계자, 고위 정치인 등 열댓명이 한꺼번에 철창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그 마지막 고리를 찾느라 세동시스템 내부 제보자와 접촉하기 위해 취재팀을 보낸 것이 정확히 9시간 전이었다.
“황 선배, 신문 만들기 싫어요? 왜 이래? 4분 남았다니까!” 1분 전 나를 닦달하던 방송에디터가 이번엔 사회에디터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뉴스 계약을 맺은 외국 뉴스채널 보도시간에 맞추려니 방송에디터의 시계는 일곱 나라의 뉴스타임에 맞춰 제각각 돌아간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특종은 결국 ‘사람’한테서 나오지만, 마감시간을 넘긴 특종은 술안주로나 쓸까? 제보, 제보였다.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한 우편물이 내 책상에 올라온 것은 정오, 아이피방송 제작 사인이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전자우편이 아닌 소인이 찍힌 우편물을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메일 검열을 피한 것이 분명했다. 보낸 사람을 밝히지 않은 봉투에서 새끼손톱만한 메모리칩이 미끄러져 나왔다. 6개월 전 뉴스룸으로 들어온 익명의 우편물도 그랬다. 그때도 메모리칩이었다. 평양 재개발 사업과 개마고원 리조트 건설 짬짜미 입찰 제보로 숭숭건설 등 7개 건설사가 줄줄이 날아갔다. 관련자들이 구속되고 공동 환경보전구역(옛 비무장지대) 북쪽에서 2년간, 남쪽에선 1년간 공공기관 발주사업 입찰이 금지됐다. 북한 막개발 문제가 심각해지던 시점에 나온 <한겨레> 보도로, 북한 당국도 개발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시작과 끝이 제대로 된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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