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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표현자유 위축” 사이버모욕죄 입법 막는다

등록 2008-11-12 15:34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ㆍ맨왼쪽)가 11일 ‘사이버모욕죄 도입에 반대하는 전문가 선언 기자회견’이 열린 한국언론회관 레이첼카슨룸에서 이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ㆍ맨왼쪽)가 11일 ‘사이버모욕죄 도입에 반대하는 전문가 선언 기자회견’이 열린 한국언론회관 레이첼카슨룸에서 이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반의사불벌죄로 수사기관 자의적 판단 개입 커
OECD·IPI ‘모욕죄 폐지’ 국제적 추세에도 역행
법률전문가·시민단체 “입법 철회” 공동저지 나서
정부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크게 세 축으로 인터넷 통제 법안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 본인확인제’(실명제) 적용 대상 기준 확대 및 ‘불법정보’ 임시조치(삭제) 의무화(방송통신위 5일 의결)가 한 축이며, 신문법·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한 인터넷 포털 규제 강화 추진이 또다른 축으로 뒤를 받치고 있다.

두 축의 선두엔 사이버모욕죄 신설이 있다. 정기국회에서 논의할 인터넷 통제 법안들 가운데 단연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언론·법률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사이버모욕죄가 △표현의 자유 위축 △권력자의 비판세력 탄압 장치 등으로 활용될 것이라며, 공동 대응 체제를 꾸려 총력 저지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사이버모욕죄 법안은 두 가지다. 장윤석 의원은 지난달 30일 동료 의원 23인의 서명을 받은 형법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을 사이버상에 유포했을 때 9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욕설 등으로 다른 사람을 모욕했을 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달 3일 나경원 의원이 대표발의(12명 서명)한 법안은 정보통신망법을 손질한 것이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타인을 모욕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명시했다.

두 법안의 가장 위험한 독소조항은 사이버모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한 점이다. 현행 형법의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이지만,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고발 없이도 수사 당국의 수사·처벌이 가능하다. 피해자가 느낀 모욕감의 정도와 무관하게 수사기관이 모욕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처벌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는 “사이버모욕죄가 반의사불벌죄인 한 수사기관의 편의적 잣대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표현의 자유 위축은 불가피하고 일반인이 아닌 정치·경제 권력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로 남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이버모욕죄 도입은 형법상 모욕죄를 폐지하고 있는 국제적 추세에도 역행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처럼 일반인에게 모욕죄를 적용하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뿐이나, 독일의 마지막 유죄판결은 1960년대를 끝으로 중단됐고 일본의 처벌 수준은 매우 경미하다. 세계언론자유위원회(WFPC)와 조·중·동 사주들이 가입하고 있는 국제언론인협회(IPI) 등도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며 모욕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엔 모욕죄 자체가 없고, 루이지애나주는 명예훼손죄 고소·고발자의 절반 이상이 정치인이나 권력자란 연구결과가 나오자 명예훼손죄에 대해 위헌 판결(1964년 ‘게리슨 대 루이지애나 사건’)을 내렸다.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한 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제약되고 있는 중국밖에 없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는 “본래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권력자가 비판세력을 제압할 목적으로 남용해 온 것인데, 이를 한층 강화한 사이버모욕죄는 한국이 자신에게 국제적 모욕을 가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인터넷으로 말미암은 피해는 ‘퍼나르기’를 통한 증폭효과에 따른 것임에도 최초로 글을 올린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 현대 형법이 폐기한 ‘결과책임주의’를 되살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프라인상의 모욕죄는 친고죄로, 사이버모욕죄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면서 발생하는 법적 충돌도 논쟁거리다.


한나라당 내에선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서명한 나 의원 안이 좀더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나, 장 의원 쪽도 “어차피 형법으로 흡수돼야 한다”며 당론화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도입 반대쪽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동대응 체제를 꾸려 본격 저지에 들어갔다. 11일 오전엔 언론·법률전문가 230여명이 실명 성명을 발표해 제도 도입 철회를 강력 촉구했다. 12일엔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과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등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이버모욕죄 폐기를 반영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의견서를 낼 예정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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