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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블로그] 좌파 조선일보는…

등록 2009-03-18 13:43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압력 사건을 두고 좌빨 언론이 사법부를 흔든다고 보도하는 <조선>의 보도를 보며 새삼스레, 다시한번, 진부하지만 또 한번, 자괴감을 느꼈다.

 

 이런 에스에프 소설이 1등 신문에 기사로 등장하는 이유는, ‘공론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가능한가’라는 의식이 전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코뱅당과 지롱드당의 교집합,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교집합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 지점은 어디인가, 라는 고민이 이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공론장이란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라는 최소공약수를 전제한다. 매체의 이념은 그 안에서 좌우로 다시 갈린다는 게 상식일 게다. 그래서 미네르바를 구속하라고, 조선일보 광고주에 항의전화를 하라고 독려한 시민을 구속하라는 극우 신문은 민주주의를, 공론장을 부정하고 있다.

 

 공론장이란 진부하고 늙은 개념이다. 사회학 개론 시간에 하버마스가 말했던 개념, 정도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공론장이란 말을, 언론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객관성’이란 말로 대체해도 된다.

 

 공론장, 또는 객관성이란 개념은 극우로부터는 실질적으로 무시당하고(말로는 인정한다)좌파로부터 공격당한다. 고전적 사회주의자는 객관이란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어와 이데올로기는 어느 계급(또는 어느 계급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는 것만 가능하다.

 

 불가능한 작전이 되기 십상이지만, 결국 언론이 공론장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한겨레와 경향을 선택한 건 같은 편이어서가 아닐 게다.

 

 그게 아니라면, 좌파가 우파의 코를 철사로 꿰어 끌고 다니고 우파가 좌파의 코를 꿰어 끌고 다니는 황석영의 <손님>에 나오는 지옥도 밖에 남는 게 없을 게다. 설령 계급투쟁의 마지막에 차악의 편을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마지막이다.

 

 공론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 비판의 대부분은 <조선> <중앙>을 향한다. 그러나 일부는 <한겨레>에 향한다. 내가 몸담은 조직이니, 절반은 내 스스로에 대한 자아비판이다.

 

 나는 기사는 객관적일 수 없지만, 기사작성은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객관이나 공론장은, 거창하고 현란한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을 균형 감각(조지 오웰은 decency라고 했다)이라거나, 김어준이 말한 바 있는,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 논쟁에 있어서는 내용보다 그 내용을 전달하는 말의 태도와 육성, 눈빛과 표정이 더 중요하다는 감각, 정도로 이해한다.

 

 노무현 집권기 보다, 지금 한국 사회보다 40년대의 영국 사회는 이념논쟁, 갈등이 격심했다. 좌우가 연합해 파시즘과 싸웠고, 좌파 안에서 스탈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싸웠으며,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입장을 두고 입장이 갈렸다. 잠시 조지 오웰을 인용한다. 영국 노동당이 최초로 단독 집권하기 직전, 이념 논쟁이 매일 폭풍우처럼 휘몰아쳤던 45년에 썼던 논설이다.

  (*번역은 대충...)

 

 지금은 정치적인 시대다. 전쟁, 파시즘, 집단수용소, 경찰 곤봉, 원자 폭탄 등등이 우리가 쓰는 대상이다, 설령 드러내놓고 그것들을 말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가라앉는 배에 있을 때 당신은 가라앉는 배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주제만 좁혀지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전반적인 문학에 대한 태도도 우리가 잠정적으로 비문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충성도에 의해 착색된다.

 (중략)

  누군가의 책에 대한 진정한 반응은 보통 ‘이 책이 좋아’라거나 ‘나는 그게 싫어’이고 그에 대한 합리화가 뒤따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좋아’라는 반응은 비문학적 반응이 아니다. 비문학적 반응은 ‘이 책은 내 편이고 그러므로 나는 나는 그 책의 장점을 발견해야만 한다’이다. 물론 누군가 정치적인 이유로 어떤 저서를 찬양할 때 그는 정서적으로 진정성이 있을 수 있다, 그가 그 책에 대한 지지를 강하게 느낀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정파적 연대감이 완전한 거짓말을 요구할 때가 종종 벌어진다.

 

  (중략)

 

 어쨌든, 셀수 없이 많은 논쟁적인 책들, 소비에트 러시아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책들, 시오니즘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책들, 카톨릭 교회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책들 등등이 그것들이 읽히기 전에 판정되며, 실제로는 쓰여지기도 전에 판정된다. 저자는 (쓰기도 전에)미리 어떤 평가를 어떤 신문에서 받을 지 미리 안다. 그리고 가끔씩은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도록 거짓되게, 진짜 문학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체하는 가식이 계속된다.

 

 쓰여지기도 전에 판정된다,는 60여년 전의 한 작가의 말이 아프다.

 

 (This is a political age. War, Fascism, concentration camps, rubber truncheons, atomic bombs, etc. are what we write about, even when we do not name them openly. We cannot help this. When you are on a sinking ship, your thoughts will be about sinking ships. But not only is our subject-matter narrowed, but our whole attitude towards literature is coloured by loyalties which we at least intermittently realize to be non-literary.

 

 One’s real reaction to a book, when one has a reaction at all, is usually ‘I like this book’ or ‘I don‘t like it’, and what follows is a rationalization.

 But ‘I like this book’ is not, I think, a non-literary reaction; the non-literary reaction is ‘This book is on my side, and therefore I must discover merits in it.’ Of course, when one praises a book for political reason one may be emotionally sincere, in the sense that one does feel strong approval of it, but also it often happens that party solidarity demands a plain lie.

 At any rate, innumerable controversial books ? books for or against Soviet Russia, for or against Zionism, for or against the Catholic Church, etc. ? are judged before they are read, and in effect before they are written. One knows in advance what reception they will get in what papers. And yet, with a dishonesty that sometimes is not even quarter-conscious, the pretence is kept up that genuinely literary standards are being applied.)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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