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자유 어느정도 지켜” “얻어낸 것 없어” 평가 엇갈려
엄기영 사장 재임 2년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이 8일 회사를 떠났다. 2008년 3월 시작한 사장 재임 기간을 2년에서 꼭 한 달 채우지 못했다. 임기는 내년 2월까지였다. 그는 이날 사퇴로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 창립 이후 정권 압박으로 물러난 최초의 사장이 됐다.
엄 사장은 지난해 8월 현 방문진 출범 이후 끊임없는 교체 시도에 시달렸다. 방문진 여당 이사들은 ‘피디수첩’ 논란과 노조 단체협약 개정 등을 빌미로 엄 사장의 사퇴를 압박했다.
이날 엄 사장이 마지막으로 회사 문을 나서기 전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도 그간의 회한이 묻어났다. 엄 사장은 “위중한 시기에 사장직을 내놓게 된 점에 대해 구성원들에게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지금 상황은 사장으로 남는 것이 엠비시의 위상에 오히려 누가 될 수 있는 국면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사장으로 재임한 2년은 엠비시 역사상 그런 2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다사다난했다”며 “방통융합과 방송업계를 둘러싼 재편 논의가 대세였던 취임 초기, 공영성을 강화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방송산업을 둘러싼 변화의 물결에 기민하게 대처하자는 것이었지만 상황은 저의 예상을 훨씬 넘을 만큼 더 복잡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사장 취임 전 그는 ‘스타 앵커’란 공통의 평가를 받았으나, 사장 재임 2년 동안의 평가는 양면적이다. 문화방송 한 기자는 “어려운 시기에 사장을 맡아 정권과 노골적으로 각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방송자유란 대의명분을 어느 정도 지켜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결과적으로 회사경영과 방송독립 중 어느 하나도 얻어낸 게 없다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고 설명했다. 취임 당시 엄 사장은 ‘뉴스데스크’ 시간 전후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집중 배치하는 ‘공영존’을 설치하며 ‘공영성 강화’를 선언했으나, 이후 정권의 압박에 대응하는 과정에선 “정도를 가겠다던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손석희 ‘100분 토론’ 진행자 교체 및 노조 단협안의 공정방송 담보 조항 개정 시도 등으로 엄 사장은 내부 구성원들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특히 지난해 4월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 교체 땐 기자들이 제작 거부를 벌이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반면 사퇴 직전엔 보궐 임원 인선을 사이에 두고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과 수차례 각을 세우며 ‘더는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노조 관계자는 “엄 사장이 정연주 전 케이비에스 사장만큼만 강단이 있었어도 엠비시가 이렇게 흔들리진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엄 사장은 노조와 대화가 됐던 사람인데, 앞으론 무조건 노조를 부수려는 사람이 오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일각에서 이는 ‘사퇴 후 지방선거 출마설’에 대해 엄 사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당분간 쉬겠다”고 밝혔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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