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추천한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과 남찬순·최홍재·김광동·차기환(왼쪽부터) 이사.
MBC독립·자율 수호 설립취지 뒤엎고
소유-경영-편성 분리 기본원칙 짓밟아
정치권력 입김 차단할 장치마련 시급
소유-경영-편성 분리 기본원칙 짓밟아
정치권력 입김 차단할 장치마련 시급
<문화방송>(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설립 취지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문화방송의 독립과 자율을 지키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방문진이 오히려 문화방송을 정치권력에 종속시키고 언론의 자유를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계에서는 방문진의 설립 취지를 지켜내기 위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문진은 군사정권의 그늘 아래 있던 문화방송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1988월 야3당과 시민사회단체, 언론계가 제안하고 여당이 받아들이면서 설립됐다. <한국방송>(KBS)이 갖고 있던 문화방송 주식 70%가 방문진으로 넘어갔고, 문화방송은 방문진이라는 방어막을 통해 공영방송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방문진 설립과정을 지켜봤던 최문순 의원은 “문화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는 게 방문진의 취지였고, 이후 문화방송은 권력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한번도 정권의 압박에 의해 사장이 물러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방문진의 기본정신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렸다.
권혁남 전북대 교수는 “문화방송의 공영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든 게 방문진인데, 정권을 위해 가장 동원하기 쉬운 장치가 돼버렸다”며 “국민의 편에 서서 공영성을 담보해야 할 조직이 정권의 하수인이 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언론학자들은 새 방문진이 소유와 경영 분리, 경영과 편성 분리라는 언론의 기본원칙까지 뭉갰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방문진이 문화방송 본부장을 직접 선임한 것은 단적인 사례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권이 여대야소 구도였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란 기본원칙을 존중해 사장의 본부장 추천권을 존중해왔다. 방문진은 또 노사간의 특정 단체협약 사항까지 고칠 것을 주문하는 등 수시로 경영에 개입했으며 한 여당 이사는 프로그램 통폐합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진만 강원대 교수는 “방송운용에 감 놔라, 배놔라 한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대학총장이 교수 임용권을 갖고 있지만 다 행사하지 않듯이, 방문진도 관리감독 기구로 권한이 있다고 해서 맘대로 휘두른다면 방송의 자율성은 설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는 “나중에 엠비시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사장이 다 져야 하는데, 책임지지도 않을 방문진이 경영자의 수족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경영이 편성에 개입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이번 일은 소유가 편성에까지 간섭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의 거대 언론들에서도 편성권 독립원칙은 기본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최민희 청암언론재단 이사는 “방송법이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을 지키기 위한 법이듯이, 방문진도 문화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참에 방문진을 권력으로부터 확실하게 떼어내고, 문화방송의 자율성과 편성독립권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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