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묻지마 엠바고’로 전작권 보도 통제.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정부, 언론사와 합의해야 엠바고 성립
한겨레 거부하고 보도하자 “파기” 비난
“불편한 보도 막으려는 정치 의도” 지적
한겨레 거부하고 보도하자 “파기” 비난
“불편한 보도 막으려는 정치 의도” 지적
한·미 정상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연기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엠바고’(특정 시점까지 보도유예) 파기 논란은 ‘원활한 보도’를 위한 편의적 시스템이 ‘보도통제 기능’으로 남용되는 현실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경위는 이렇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미 정상이 26일(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에서 만나 전작권 전환 연기를 협의할 것이란 23일치 <한겨레>(1면)와 <경향신문> 보도를 “엠바고 파기”(24일 국회 운영위원회)라고 규정했다. “애초 엠바고가 성립하지 않았다”(25일치 2면)는 한겨레 반박에 이 수석은 보도자료를 내어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수석은 22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해당 내용을 전하며 ‘국익’을 이유로 엠바고를 요청했고, 한겨레는 논의 끝에 “전작권 전환 연기는 공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수용 거부 의사를 밝혔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24일 총회를 열어 두 신문사를 징계하기로 결정하고, 최종 형량은 이명박 대통령이 귀국하는 7월3일 이후 확정하기로 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엠바고는 정부 부처의 일방적 요구가 아닌 언론사 모두의 자율적 합의로 성립된다”며 “엠바고를 받은 언론사가 특종 혹은 속보 욕심에서 어겼다면 엠바고 파기지만, 애초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언론사를 두고 엠바고를 깼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전작권 전환 연기 합의 가능성은 <중앙일보>가 지난 2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해 이미 공개된 사안이었다.
근본 문제는 엠바고를 둘러싼 논란 이면에 있다. ‘전작권 사전 보도=국익 침해’란 청와대 논리엔 불편한 보도를 미리 차단하겠다는 ‘정치적 함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견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을 두고 사회적 공론을 이끌기보다 최종 결정을 받아쓰는 게 국익에 기여하는 언론’이란 청와대의 인식도 엿보인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청와대가 정상회담 전 보도를 원치 않는 것은 전작권 전환 연기의 타당성 논란은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논의와의 연계 가능성에 사회적 불만이 제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며 “전작권 사안을 두고 국익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언론이 권력의 뜻에 부합해 침묵해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용성 한서대 교수는 “전작권 전환 문제는 그동안 수차례 공개적 논의를 거쳤던 사안이다. 국가기밀도 아니고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라며 “국익으로 보기도 힘들지만 정말 국익이라면 오히려 공론에 붙이는 게 언론의 역할에 맞다”고 말했다.
이 수석이 한겨레의 엠바고 파기 근거로 제시한 ‘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도 청와대 입맛에 따른 엠바고 남발 가능성을 명문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제12조(사전 보도 금지 등) 2항은 “대변인은 운영위원회와 협의하여 보도자료에 특정 시점까지 보도제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사전 보도 금지를 설정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상 파동으로 정부가 언론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분출하던 2008년 5월 신설된 조항이다.
실제 현 정부 들어 청와대가 권력의 유·불리에 따라 엠바고를 남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청와대는 지난해 행정관의 뇌물수수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엠바고를 걸었고, 이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사실을 정부 공식 발표보다 현지 기업인 간담회에서 먼저 공개한 사실도 엠바고를 요청했다. “일본도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면 독도 문제가 많이 달라질 것”이란 2008년 이 대통령의 발언도 엠바고 사안이었다.
청와대가 ‘전작권 엠바고’를 요청한 방식도 살펴볼 대목이다. 이 수석은 ‘전작권 관련 엠바고 정보가 있음을 우선 공지→엠바고 수용 여부 파악→정상회담 때 논의한다는 정보 공개’란 정상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전환 연기 논의’란 핵심 정보부터 던진 뒤 엠바고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언론사에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은 셈이다. 당시는 국방부를 통해 기자들이 취재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엠바고 수용 여부를 묻기도 전에 정보부터 제공하는 것은 언론학에서 엠바고의 부작용을 이야기할 때 드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정보원이 엠바고 절차를 역이용해 진행중인 취재를 미리 차단해버림으로써 기자들을 농락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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