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문화방송>(MBC)이 지난 19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법원으로부터 지난 2일 무죄판결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다룬 <피디수첩> 제작진을 징계했다.
피디수첩 제작진은 3년 동안 ‘정치’검찰의 수사와 친정부 신문들의 ‘마녀사냥’식 보도에 시달렸다. 대법원의 무죄판결은 긴 고통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그런데도 사쪽은 재판 결과를 환영하기는커녕 몇몇 일간지에 “보도의 주요 내용이 허위라고 판시”돼 언론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엉뚱한 사과광고를 내더니, 이제 언론의 사명을 다하다 3년 만에 무거운 짐을 막 벗은 피디들을 칭찬은 하지 못할망정 징계했다.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엠비시가 지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황당한 행동을 거듭하고 있다. 엠비와 가깝다는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왜 그런가?
대법원의 무죄판결은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재판에서 처음으로 천명한 언론자유의 원칙을 한국 사례에 적용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설리번 판결’은 언론이 공무원이나 공직자에게 “실제적인 악의”를 품었거나 “진실이나 허위 사실을 무책임하게 무시하고” 보도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언론보도가 명예훼손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한 판결이다. 설리번 판결 이후 미국 언론은 거액의 배상을 청구하는 명예훼손 소송 위협에 위축되지 않고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대담하게 취재해서 보도할 수 있었다. 닉슨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보도가 가능했던 것도 이 판결의 영향이 컸다.
‘설리번 판례’에 따르면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피디수첩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처음부터 기소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처음 이 사건을 맡게 된 부장검사가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사직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후 사건을 맡은 검사들은 권력의 지시대로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다. 친정부 신문들이 합세했다. 그러나 1, 2심에 이어 대법원도 지난 2일 피디수첩 제작진들의 명예훼손 혐의를 부인하고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억압 정책에 제동을 걸고 언론자유의 원칙을 재확인해준 판결이었다.
대법원의 피디수첩 무죄판결은 그래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그런데 당사자인 엠비시, 그 최고책임자인 김재철 사장의 반응은 엉뚱했다.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피디수첩의 잘못을 사과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신문에 사과광고를 냈다.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잘못됐다는 인상을 주는 광고였다. 대법원은 “보도 내용 중 일부가 허위 사실에 해당하지만 보도가 국민의 먹거리와 이에 대한 정부 정책에 관한 여론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사과광고는 “대법원이 명예훼손은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보도의 주요 내용은 허위라고 판시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엠비시 사쪽의 모든 행동은 엠비와 가까운 김재철 사장이 엠비가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답게 문화방송을 엠비가 바라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려는 데서 빚어진 충성심의 발로로 생각하면 의문이 다 풀린다. 문제는 김재철 사장이 그렇게 행동하면 공영방송 엠비시는 죽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한다는 것이다. 문화방송과 한국 언론자유를 위해 징계할 대상은 피디수첩 제작진이 아니라 김재철 사장인 것 같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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