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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방송 공공성 해칠 ‘한-미 FTA’

등록 2011-11-15 20:17수정 2012-01-12 16:43

미디어 전망대
방송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손해가 날 전형적인 영역이다. 에프티에이의 원칙은 양국 방송물과 사업자가 상대국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미국 방송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더 일방적으로 수입되고, 한국의 것은 지금처럼 거의 수출이 안 되는 것이다. 그간 유지해 왔던 여러 보호조처들이 풀리기 때문이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 국내 제작물 편성 의무는 줄이고, 한 개 나라(곧 미국)에서 수입한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늘린다. 지상파, 보도, 종합편성, 홈쇼핑 채널을 제외하고 어떠한 채널도 미국인이 100% 소유할 수 있다.

이제 좁은 한국 시장에서 괜히 큰돈 들여 프로그램 만들었다가 손해 보는 것보다는 제작비는 많이 들었지만 값은 싼 미국 것을 편성하는 게 나을 것이다. 경쟁력 있는 분야는 더 키우고 그러지 못한 분야는 상대에게 넘긴다는 것(‘비교우위론’)이 에프티에이의 정신이라면 방송산업을 미국에 넘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러나 이는 정서와 창의성을 함께 넘기는 셈이 된다. 비록 서양 옷을 입고 있지만 한국인은 같은 정서와 유대감을 지켜왔다. 방송은 이러한 정체성 유지 수단 중 하나였다. 한국 시청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준이 낮아지는 국산 프로그램보다는 ‘미드’(미국 드라마)를 더 보게 될 것이다.

애초에 방송은 산업이 아닌 문화로 취급되어 자유무역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1980~90년대 진행된 다자간 자유무역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방송을 ‘서비스 분야’로 끼워 넣었다. 그런데 많은 나라가 한번에 협정을 맺는 방식인 우루과이 라운드는 진척이 쉽지 않았다. 이에 미국은 작은 나라를 하나씩 골라 양자간 협상을 타결해, 종국에는 이 협정 내용들이 국제무역협상의 ‘표준’이 되게 하는 에프티에이를 추진한다. 한국의 방송도 ‘서비스 산업’의 하나로 미국에 개방하게 됐다.

개방 자체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방송의 창의성과 공정성을 키울 수 있는 장치들을 더는 가동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약한 한국의 방송은 지금의 개방 수준으로도 오히려 보호·육성해야 할 지경이다. 이 때문에 사회자산인 전파를 쓰는 지상파 방송에 더욱 강한 의무와 사회적 지원을 부여하고 다른 방송사들의 창의성과 공정성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회적 지원은 에프티에이 원칙에 배치된다. 협정문은 세계적 추세를 무시 못해 공영방송 수신료를 당분간 유지하기로 하였지만(이를 ‘미래 유보’라고 한다) 이외의 새로운 지원방안은 불가능하다. 미리 열거해 올려놓은 것만 예외로서 인정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 때문이다. <문화방송>(MBC)과 <에스비에스>(SBS)는 지원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며, 부가 채널 등 지상파에 대한 어떠한 특혜도 불공정 거래행위가 될 것이다.

예전에는 국내 사영 다채널 사업자들이 공적 가치를 지키려는 여러 조처에 ‘항의’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 한국에 들어오는 미국 사업자들이 불공정을 ‘제소’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방송 전반에 대해 현명한 지원정책이 떠올라도 이는 협정 위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씁쓸한 이야기이나, 특정 방송이 좋은 채널번호를 받도록 정부가 행정지도(?)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방송분야에서 에프티에이의 가장 큰 문제는 방송의 상업화가 더 가속화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 프로그램 수준이 점차 떨어지고 미국 프로그램은 늘어가는 상황에서도 손발 묶인 국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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