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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5·18 묘지 상석 밟은 사진이 뒤늦게 보도된 사연

등록 2012-03-15 15:58수정 2012-03-15 18:11

연합뉴스 15일부터 총파업 돌입
오전에 보낸 특종 기사를 데스크가 오후에 내보내
“보도 왜곡하는 박정찬 사장 반드시 물러나야”
15일, <연합뉴스>가 총파업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기자들은 이날 오전 출입처가 아닌 파업현장으로 출근했다. 지난달, 3년 임기가 끝난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이 연임 의사를 밝히면서, 기자들이 사장 연임 반대를 외치며 연가투쟁을 벌였다. 연합뉴스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는 지난달 29일 이사회에서 박정찬 현 사장을 최종 사장 후보자로 선출해 사실상 박 사장은 연임이 결정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위원장 공병설)는 15일 파업투쟁 선언문에서“박정찬 사장 취임 후 3년은 연합뉴스 최악의 암흑기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총파업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뉴스통신진흥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기자들이 파업을 결심한 이유는 뭘까. 지난해 12월 실명을 밝히고 “‘바른 언론 빠른 통신’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며 박정찬 사장 등 경영진에 ‘보도 공정성 강화’등 개선을 요구한 연합뉴스의 젊은 기자 4명으로부터 <연합뉴스>의 무너져 가는 오늘을 들어봤다.

임형섭 기자는 지난 2008년 1월 연합뉴스에 입사했다. 사회부 기자를 거쳐 지금은 중소기업청 등을 출입하고 있다. 임 기자는 2009년의 기억이 참담하다고 했다. 당시 그는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건 기자였다. 2009년 4월30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에 소환돼 조사받는 날, 임 기자는 김해 봉하마을로 파견됐다. 임 기자는 “당시 노 전 대통령 차를 따라가면서 휴대폰 배터리 두 개가 다 닳아버릴 때까지 캡(사건기자들을 지휘하는 팀장으로, 서울지방경찰청 출입기자)에게 전화로 기사를 불렀다”며“어디 도착, 어디 도착 생중계하듯 보도해야 했다”고 말했다. 임 기자는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한 달여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비극적 방법으로 삶을 마감한 뒤 데스크의 주문은 달랐다고 말했다. “최대한 드라이하게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임 기자는 “물론 기자가 슬픔에 잠기면 안 되는 것은 맞지만, ‘최대한 드라이하게 처리하라’는 그 주문으로 대중들의 슬픔을 전달하는 것까지도 막아버렸다”며 “그것은 결국 사회현상 보도의 의무를 방기한 것이라고 봤고, 실로 참담한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 1월 입사해 증권부에서 일하고 있는 이영재 기자는 또다른 참담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영재 기자는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외신 반응을 기사로 쓰면서 ‘톤다운’을 경험했다. 이영재 기자는 “당시 로이터 통신이나 에이피 통신 등은 ‘환율 대책이 없었다’ 등 비판적 반응을 주로 내보냈고, 그 기사를 써서 보냈는데 그로부터 5~6시간 뒤 종합된 기사는 ‘G20 원론적 합의 성과, 세부해법 미흡’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갔다”며 “대부분의 외신이 비판 일색이었는데, 제목은 그걸 왜곡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2008년 12월에 입사해 현재는 미디어과학부에서 일하고 있는 권영전 기자는 2010년 광복절 65주년 기념식에서 식전 행사로 진행된 광화문 현판 제막식·개문식 기사를 송고하면서 이상한 취재 지시를 받았다. 기사에 광화문 현판 사진을 붙여서 송고했는데 ‘대통령이 나온 사진으로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권 기자는 “내곡동 사저 의혹 기사가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4대강과 관련한 찬양 일색의 기사도 중요하지만, 광복절 기념식 기사 사진 한장처럼 사소해보이는 것까지 모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어찌보면 ‘대동맥·대정맥 오염을 넘어서 모세혈관까지 모조리 오염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회사에 들어와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독자로부터‘정부 기관지’ ‘정부 찌라시(광고·전단지)’라는 비판을 들을 때다. 권영전 기자는 후배가 최근 쪽방에서 한달 동안 생활하면서 쓴 쪽방 체험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슬펐다고 말했다. ‘최다추천댓글’ 내용은 “연합 찌라시 기자가 한 달 동안 쪽방에서 살았을 리가 없다. 사실 확인 촉구”라는 것이었다. 권 기자는 수습 시절 자기 경험담도 털어놓았다. 용산참사 취재를 갈 때 선배가 현장이 과격하니 헬맷을 쓰라고 헬맷을 건네줬다고 한다. 헬맷에는 ‘연합뉴스’라는 회사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그러나 선배는 “스티커는 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권 기자는 “집회 현장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했다면, 적어도 철거민, 시민, 대학생 등 집회를 여는 ‘피해자’들로부터 돌팔매를 맞을 이유가 없을텐데, 스티커를 떼야 한다는 현실이 참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런 ‘찌라시’로서의 정체성은 결국 자초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최근 연합뉴스의 기획기사들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친정권으로 편향돼 있었다. ‘닻올린 4대강’이라는 8회분 기획기사는 전체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긍정적 측면만을 담고 있었다. 각 회의 제목을 보면 1회는 ‘한강이 다시 숨쉰다’, 2회는 ‘수달과 학이 함께 살 남한강’, 3회는 ‘금강 살려 백제 문화도 복원’ 등이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이나 우려는 거의 담기지 않았다.

2010년 8월22일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6개월을 맞아 나간 <이명박 정부 반환점> 시리즈 기사도 마찬가지다. 15차례 나간 기사들의 제목을 보면 ‘도전과 응전의 정치’ ‘공직사회 변화 열풍’ ‘경제성장 발판 변화’ ‘4대강 논란 속 순항’ ‘문화격차 해소 주력’ 등 주로 긍정적 평가를 담았다.

임형섭 기자는 “기획기사의 한계”라고 말했다. 임 기자는 “위에서 주문해서 내려오는 기획기사를 쓸 때 기자들은 한낱 부품이 된다”며 “부품의 역할에 만족하고 반성할 수 없었던 것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특유의 ‘찬양 문구’도 부끄러움을 가중시킨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반환점> 시리즈 기사에는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파고를 특유의 현장경제경험과 배수의 진을 친 전력투구…” “이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끝모를 나락으로 빠질 위험에서 건져내기 위해 비상정부를 선포하고 과감하고도 신속한 정책 결단을 내림으로써 …”등의 표현이 들어있다. 이밖에 2010년 7월 작성된 <뚝심으로 미디어법 처리한 안상수>라는 기사를 보면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으로서의 새 리더십을 보여줬다”라는 문장이 들어있다.

임형섭 기자는 이런 주관적 표현들에 대해 “보통 때라면, 선배들이 ‘지금 스트레이트를 쓰는데 박스 쓰냐’라며 다 빼버렸을 표현들인데, 버젓이 기사에 들어가있는 걸 보고 당황스럽고 민망했다”고 말했다.

특종도 권력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이영재 기자는 ‘안상수 사진 특종이 뒤늦게 나가게 된 사연’을 전했다. 지난해 1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안상수 의원이 광주 5·18 묘지 참배에 갔다가 묘지 상석을 밟은 일이 있었다. 안 의원이 상석을 밟은 사진은 연합뉴스 지역주재 기자가 단독으로 찍었다. 해당 기자는 기사를 오전 10시께 보냈지만 데스크는 ‘장고’를 거듭한 끝에 오후 1시에야 기사와 사진을 내보냈다. 사진 설명에서도 ‘상석을 밟았다’는 내용은 빠졌다. 기사와 사진은 이후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이영재 기자는 “연합뉴스의 슬로건은 ‘바른 뉴스 빠른 통신’인데 정확한 뉴스를 빠르게 내보내면 될 일인데, 무엇을 고려하기에 이렇게 ‘장고에 장고’를 거듭해 특종 기사와 사진을 내보내는지 참 의문이다”라며 “결국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연합뉴스에 대한 신뢰도나 독자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들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권영전 기자는 기형도 시 <안개>를 인용했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권 기자는 “불공정 보도가 안개라면, 우리도 연합뉴스 구성원으로서 그 불공정보도에 대한 지분, 책임을 갖고 있다”며 “박정찬 사장이 물러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또한 그 불공정보도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진심으로 국민 여러분께 사과하는 마음으로 파업에 임한다”라고 말했다.

파업을 하면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시국이 수상하다보니, 재산가압류, 해고, 징계 등도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이들은 두렵지만 너무나 절박하기에 끝까지 갈 것이라고 했다. 한 달 전 아기 아빠가 된 입사 3년차 민경락 기자는 “징계보다 더 두려운 건, 우리를 ‘정권 기관지’ ‘정권 찌라시’로 바라보는 독자 혹은 국민의 시선”이라며 “‘공정한 보도를 하는 언론’ ‘바른 언론 빠른 통신’이라는 제 이름을 찾고 연합뉴스가 다시 거듭나겠다는 절박함이 크고, 그게 파업 찬반투표에 참가한 조합원의 84.08%가 ‘파업 찬성’에 표를 던진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재 기자는 뉴스통신진흥법이 연합뉴스를 지원하는 뜻을 잘 살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는 “박정찬 사장 혹은 연합뉴스 경영진은 우리가 정권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뉴스통신진흥법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통과된 법으로 우리는 국익에 따라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오판하고, 보도를 왜곡하고 있는 박정찬 사장은 반드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락 기자는 “사장 연임을 반대하는 요구가 과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왜곡되지 않는 사실을 보도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 연합뉴스에 입사했고, 그 길을 끝까지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박정찬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권영전 기자는 “박정찬 사장은 ‘<연합뉴스>는 뉴스 공장의 용광로이므로 용광로가 멈추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박 사장이 물러나면 우리도 파업할 이유가 없다”며 “박 사장이 당장 오늘 밤에 물러난다면, 사장이 원하는 ‘뉴스의 횃불’은 여전히 불타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영재 기자도 “숱한 불공정보도의 책임자가 물러나는 것이 <연합뉴스>가 공정성을 회복하는 시작점”이라며 “<연합뉴스> 파업은 어찌보면, 회사원으로 기사를 쓰던 기자들이 언론인으로 깨어나는 과정이므로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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