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읍에 있는 도축장에서 <국민일보> 황세원(가운데)·양지선(오른쪽) 기자가 고기의 신선도와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토요판] 르포
국민일보 파업 기자들의 횡성 가는 길
국민일보 파업 기자들의 횡성 가는 길
▶ 지난해 12월23일, <국민일보> 노동조합은 파업을 시작했다. 월급은 12월부터 나오지 않았다. 노조가 갖고 있던 파업기금은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생계 위기를 겪는 조합원을 위해 국민일보 노조는 지난 3월 말 강원도 횡성 한우 공동구매라는 수익사업을 시작했다. 국민일보 노조의 두 살림꾼인 황세원, 양지선 기자는 지난 19일 출입처를 뒤로한 채 도축장 위생상태 점검 등을 위해 강원도 횡성으로 향했다.
벚꽃이었다. 강원도 횡성에 들어서자 바람에 날린 하얀 꽃잎이 반겼다.
“벚꽃 구경을 여기로 왔어야 했네. 완전 소풍 가는 기분이야, 선배~!”
운전대를 잡은 양지선 기자의 목소리가 더 밝아졌다. 선배라 불린 황세원 기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꽃구경은 잠시였다. 두 사람을 태운 하얀색 승용차는 횡성군 횡성읍 조곡리에 있는 원창기업 부지 안으로 진입했다. 원창기업은 횡성에서 나고 자란 한우를 잡아 지육(도축한 소에서 머리와 내장, 털 등을 제거한 상태) 및 정육으로 가공하는 공장, 곧 도축장이었다. 황세원·양지선 두 기자는 19일 취재가 아니라 ‘거래’를 위해 도축장을 찾았다. 두 사람이 속한 <국민일보> 노동조합은 이날로 119일째 파업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노조에 돈이 너무 없었어요.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월급 받을 때에는, 그 돈이 끊긴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던 거죠. 매달 25일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해요. 지금까지는 노조가 긴급생활자금 대출 형식으로 100만~150만원씩 대출해줬는데, 이제는 그 돈이 소 판 돈에서 나와야 해요.”
황세원 기자는 도축장 건물을 바라보며 “거래 도축장의 위생상태 점검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옷장사·떡배달·알바취업…
생활고에 투쟁기금이 바닥났다
그래도 그냥 질 수만은 없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파업은 조합원을 생계 위기라는 벼랑으로 내몰았다. 노조의 투쟁기금은 파업 100일을 넘기며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일부 조합원은 각자 살길을 찾아나섰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헌금으로 창간한 국민일보에 몸담고 있으면서 불교 관련 단체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기자가 생겼다. 지난해 12월부터 3월까지 넉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는 국민일보의 파업 현실이 빚어낸 풍경이었다. 일부 여성 조합원은 서울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옷 장사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떡 배달을 시작한 기자도 있었다. 생계를 위해 파업 현장을 떠나는 기자를 조합은 막지 못했다. 올해로 국민일보 입사 10년차인 황 기자가 “차라리 소라도 팔자”며 조상운 전 노조위원장 등 조합 간부를 설득했다. “3월 말부터 시작한 거예요. 파업 장기화에 따라 점점 조합 살림이 어려워질 무렵, 예전 종교부에서 취재했던 도농 직거래 방식의 한우 공동구매 사업이 떠오르더라구요. 당시 그 사업을 진행했던 교회 부녀회 쪽에서 한우 한 마리를 팔면 500만원이 남는다고 했거든요. 물론 실제로 그렇게 남지는 않아요.” 황 기자는 국민일보 노조가 진행하는 횡성 한우 공동구매 사업의 제안자이자 책임자다. 먼저 원창기업에 일정 금액을 주고 마리째 황소를 구매한 뒤,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모은 한우 공동구매자들에게 이를 되파는 사업이었다. 파업 직전까지 ‘경제부 기자’였던 그는 이제 국민일보 노조의 ‘한우팀장’으로 불리고 있다. 노조 내부에서는 그를 ‘황세원’이라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 ‘황소원’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모든 선배가 비웃었어요. 그러다가 3월 중하순 중앙노동위원회가 조 전 위원장에 대한 사쪽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정하는 등 파업 상황이 더 나빠지자 그제야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그때 노조 선배가 그렇게 소원하던 황소를 팔게 됐으니 이름도 황소 파는 황소원으로 바꿔라, 그러더라구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사람들 만날 때마다 한 푼이라도 더 대출받고 싶으면 소 팔아 오라고 닦달하고 있어요.” 농가에서 막 도착한 빛깔 고운 황소가 한 마리씩 도축장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영리한 놈 몇 마리는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예감한 듯 네발로 버틴 채 “꾸에엑~” 소리를 내며 울었다. 도축장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말 그대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맞닥뜨린 양지선 기자는 그 살풍경에 짧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
양 기자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도저히 못 보겠다”며 뒷걸음질을 쳤다.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국민일보 입사 7년차, 사회부와 경제부, 문화부 등을 거쳐 파업 직전에는 국제부 기사를 맡고 있었다. 국제부 근무 당시 아프리카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등 아랍 민주화 혁명에 특히 많은 관심을 쏟았다. 꿈과 기대가 컸던 만큼 파업 과정에서 회사에 대해 느낀 배신감은 컸다. 서울에서 횡성으로 오는 약 3시간 동안 그는 파업의 정당성과 국민일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또박또박 지적했다. 이와 별개로, 횡성 한우에 대한 ‘노골적’ 홍보도 그의 몫이었다.
“저는 사실 한우 먹으러 왔어요. 2주 전쯤인가, 여기 처음 왔을 때 몸이 굉장히 허하고 아팠는데도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황 선배가 운전할 사람이 없다기에 따라왔다가 횡성 한우를 먹고 난 뒤 몸이 진짜 많이 나아졌어요. 그때 느낀 게 좋은 한우는 보약이 안 부럽다는 사실이었어요. 요 며칠 새 또 기운이 달리기에 ‘아, 다시 한번 먹어줄 때가 됐나’ 하고 있었는데, 황 선배가 가자고 해서 ‘콜’ 이러고 따라왔어요.”
양 기자는 국민일보 노조 선정(비공식) ‘횡성 한우 판매왕’이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좋은 취지로 한우를 판다고 해도 물건이 좋지 않았다면 결코 높은 매출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디서도 1+ 등급의 횡성 한우를 이 가격에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주부들이 알아서 사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횡성 도착 전까지 활달한 모습을 보였던 양 기자가 한 시간 남짓 도축장 내부의 위생상태 점검을 마친 뒤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지금의 국민일보가 중동의 시리아 같은 존재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아랍 민주화 혁명과 함께 시리아에서도 시민의 민주화 요구가 터져나왔다. 시리아 정권은 시민의 바람에 무력으로 맞섰다.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그는 “<문화방송>(MBC)이나 <한국방송>(KBS) 파업과 달리 손잡아주는 곳 하나 없는 국민일보 노조는 몇십명 잘릴 때까지 외롭게 투쟁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엊그제 조상운 위원장이 물러나는 등 노조 집행부가 바뀌었잖아요. 우리는 어떻게든 사쪽과 대화해보자는 의도였는데 파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는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선배가 저를 부르더라고요. 적당히 하라는 거예요. 지금처럼 회사와 각을 세우면 회사는 너를 받아들여도 제 스스로 회사에 돌아오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맞죠. 이렇게 오래 회사에 맞서 싸웠는데 다시 월급 받고 일한다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거예요. 그런데 나갈 때 나가더라도 내 기자 생활의 마지막을 횡성 한우 팔다가 끝냈다고 하면 정말 웃기는 거잖아요.”
“고기를 팔면서 우리도
힘없는 노동자란 걸 알게 됐죠
시민들과 소통도 늘었고요
기자로 돌아가면 소외층을 위한
기사를 더 열심히 쓸래요” 양 기자가 얼굴을 돌렸다. 웃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선배인 황 기자는 그와 하늘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축장을 빠져나온 두 명의 국민일보 기자는 횡성읍내에 있는 ‘횡성종합축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노조의 횡성 한우 공동구매 사업은 언론계 종사자를 중심으로 조금씩 소문이 퍼졌다. 국민일보 노조가 쇠고기라도 팔아야 할 만큼 위기에 처했고, 이들이 한우 농가와의 ‘상생’을 위해 큰 마진을 남기지 않고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문이 늘기 시작했다. 노조 안팎에 한 마리도 제대로 팔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벌써 6마리나 팔았다. 지육·정육 가공 및 포장업체인 횡성종합축산을 찾은 이유는 쏟아지는 주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거래처 확대’ 차원이었다. 파업은 어려움을 모르고 기자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노동자의 삶’을 알려줬다. “고기를 팔면서 비로소 우리도 사주 앞에서는 힘없는 노동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동안 어렵고 소외된 계층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반성도 많이 하죠.” 주문내역을 꼼꼼히 살피랴, 모자란 부위의 정육 재구매를 요청하랴 바쁜 황 기자가 ‘반성한다’고 하자 양 기자가 되받았다. “우리는 이렇게라도 버텨보겠다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데. 황세원 없으면 못하는 일이잖아. 끝까지 열심히 해보자구. 지고 들어가는 것보다 어쨌든 뭐라도 해봐야 하는 거잖아.” 파업은 연대의 소중함도 일깨워줬다. 이들도 안다. 시민은 이들이 직접 고른 횡성 한우를 구매해함으로써 국민일보에 대한 연대의 뜻을 나타낸다. 그 마음은 이들에게 당장의 버틸 힘이 된다. 그리고 파업 이후에는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될 터였다. “저만 해도 파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트위터 등을 통해 노동자, 시민과 소통에 나섰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국민일보가 이렇게 거듭났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노동자의 어려움, 독자와의 소통까지 고려하는 기사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횡성에서 도축장 위생 점검 등 모든 업무를 마친 것은 오후 3시께였다. 횡성종합축산에 이날까지 주문 접수된 정육 95세트에 대한 세심한 포장과 배송을 당부한 뒤 두 사람은 서울로 향했다. 두 사람에게는 어떤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파업 전까지 경제부에 몸담았던 황 기자는 다시 경제부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그동안 종교부와 문화부, 생활부 등만 다니다가 제가 가고 싶었던 경제부로 막 옮기니까 파업이 시작된 거예요. 파업이 끝나면 다시 경제부로 가고 싶죠. 금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싶거든요.” 황 기자와 양 기자가 한우팀이 아니라 일선 취재부서로 복귀할 수 있을지, 돌아간다면 그게 언제쯤인지 알 수 없다. 국민일보 노사 양쪽은 지난 19일 파업 이후 첫 만남을 가졌다. 사쪽의 요구대로 노조가 해고자 신분의 조상운 전 위원장 자리에 손병호 쟁의대책위원장을 내세운 것이다. 사쪽은 지난해 10월 조용기-조민제 부자를 비판해온 조 전 위원장을 해고한 뒤 해고자와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날 첫 만남 직후 노조 관계자는 “첫 협상이다 보니 양쪽이 구체적인 협상안을 갖고 만난 것은 아니었고 앞으로 노사 협상을 어떤 식으로 전개할지 등에 대해서만 논의했다”고 전했다. 노조위원장을 교체하며 협상 의지를 보이는 노조와 달리 사쪽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다. 파업 120일째인 20일 최삼규 국민일보 경영전략실장에게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조합원의 생계 위기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최 실장은 “파업 참가자들이 임금 미지급으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들의 장기 파업으로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파업으로 인한 매출 감소와 교계 지원 축소의 피해는 누가 보상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국민일보 파업 사태 해결의 일차적 관건은 이미 해고된 조 전 위원장 복직과 파업 기간에 이뤄진 노조원 20여명에 대한 사쪽의 징계 및 민사소송 철회 여부다. 황 기자와 양 기자 역시 사쪽으로부터 경영진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조합원이다. 사쪽은 이들에 대해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쪽에서도 “파업을 일찍 끝내는 것보다 잘 끝내는 것이 여전히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강하다. 해고자 복직과 징계 및 소송 철회는 물론, ‘국민일보 사유화 반대’와 ‘편집권 독립’ 등 파업 개시 시점에 사쪽에 내놓았던 요구는 그대로 유효하다는 뜻이다. 국민일보 ‘황소원’ 기자의 횡성 한우 공동구매 사업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민일보 노동조합 후원금 계좌 안내: 외환은행 조상운 620-193993-702/수익사업팀 http://cafe.daum.net/kmstrike) 횡성/글·사진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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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국민일보-씨티에스 지부가 국민일보 파업 100일 100인 지지선언 및 온국민응원단 출범을 선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힘없는 노동자란 걸 알게 됐죠
시민들과 소통도 늘었고요
기자로 돌아가면 소외층을 위한
기사를 더 열심히 쓸래요” 양 기자가 얼굴을 돌렸다. 웃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선배인 황 기자는 그와 하늘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축장을 빠져나온 두 명의 국민일보 기자는 횡성읍내에 있는 ‘횡성종합축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노조의 횡성 한우 공동구매 사업은 언론계 종사자를 중심으로 조금씩 소문이 퍼졌다. 국민일보 노조가 쇠고기라도 팔아야 할 만큼 위기에 처했고, 이들이 한우 농가와의 ‘상생’을 위해 큰 마진을 남기지 않고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문이 늘기 시작했다. 노조 안팎에 한 마리도 제대로 팔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벌써 6마리나 팔았다. 지육·정육 가공 및 포장업체인 횡성종합축산을 찾은 이유는 쏟아지는 주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거래처 확대’ 차원이었다. 파업은 어려움을 모르고 기자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노동자의 삶’을 알려줬다. “고기를 팔면서 비로소 우리도 사주 앞에서는 힘없는 노동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동안 어렵고 소외된 계층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반성도 많이 하죠.” 주문내역을 꼼꼼히 살피랴, 모자란 부위의 정육 재구매를 요청하랴 바쁜 황 기자가 ‘반성한다’고 하자 양 기자가 되받았다. “우리는 이렇게라도 버텨보겠다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데. 황세원 없으면 못하는 일이잖아. 끝까지 열심히 해보자구. 지고 들어가는 것보다 어쨌든 뭐라도 해봐야 하는 거잖아.” 파업은 연대의 소중함도 일깨워줬다. 이들도 안다. 시민은 이들이 직접 고른 횡성 한우를 구매해함으로써 국민일보에 대한 연대의 뜻을 나타낸다. 그 마음은 이들에게 당장의 버틸 힘이 된다. 그리고 파업 이후에는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될 터였다. “저만 해도 파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트위터 등을 통해 노동자, 시민과 소통에 나섰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국민일보가 이렇게 거듭났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노동자의 어려움, 독자와의 소통까지 고려하는 기사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횡성에서 도축장 위생 점검 등 모든 업무를 마친 것은 오후 3시께였다. 횡성종합축산에 이날까지 주문 접수된 정육 95세트에 대한 세심한 포장과 배송을 당부한 뒤 두 사람은 서울로 향했다. 두 사람에게는 어떤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파업 전까지 경제부에 몸담았던 황 기자는 다시 경제부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그동안 종교부와 문화부, 생활부 등만 다니다가 제가 가고 싶었던 경제부로 막 옮기니까 파업이 시작된 거예요. 파업이 끝나면 다시 경제부로 가고 싶죠. 금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싶거든요.” 황 기자와 양 기자가 한우팀이 아니라 일선 취재부서로 복귀할 수 있을지, 돌아간다면 그게 언제쯤인지 알 수 없다. 국민일보 노사 양쪽은 지난 19일 파업 이후 첫 만남을 가졌다. 사쪽의 요구대로 노조가 해고자 신분의 조상운 전 위원장 자리에 손병호 쟁의대책위원장을 내세운 것이다. 사쪽은 지난해 10월 조용기-조민제 부자를 비판해온 조 전 위원장을 해고한 뒤 해고자와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날 첫 만남 직후 노조 관계자는 “첫 협상이다 보니 양쪽이 구체적인 협상안을 갖고 만난 것은 아니었고 앞으로 노사 협상을 어떤 식으로 전개할지 등에 대해서만 논의했다”고 전했다. 노조위원장을 교체하며 협상 의지를 보이는 노조와 달리 사쪽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다. 파업 120일째인 20일 최삼규 국민일보 경영전략실장에게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조합원의 생계 위기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최 실장은 “파업 참가자들이 임금 미지급으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들의 장기 파업으로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파업으로 인한 매출 감소와 교계 지원 축소의 피해는 누가 보상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국민일보 파업 사태 해결의 일차적 관건은 이미 해고된 조 전 위원장 복직과 파업 기간에 이뤄진 노조원 20여명에 대한 사쪽의 징계 및 민사소송 철회 여부다. 황 기자와 양 기자 역시 사쪽으로부터 경영진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조합원이다. 사쪽은 이들에 대해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쪽에서도 “파업을 일찍 끝내는 것보다 잘 끝내는 것이 여전히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강하다. 해고자 복직과 징계 및 소송 철회는 물론, ‘국민일보 사유화 반대’와 ‘편집권 독립’ 등 파업 개시 시점에 사쪽에 내놓았던 요구는 그대로 유효하다는 뜻이다. 국민일보 ‘황소원’ 기자의 횡성 한우 공동구매 사업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민일보 노동조합 후원금 계좌 안내: 외환은행 조상운 620-193993-702/수익사업팀 http://cafe.daum.net/kmstrike) 횡성/글·사진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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