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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등록 2013-02-26 20:18수정 2013-02-26 21:24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미디어 전망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14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을 위반한 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노 전 의원이 통비법을 어떻게 위반했기에 대법원이 국민이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하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노 전 의원이 직접 도청을 통해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사실은 없다. 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국가안전기획부(지금의 국가정보원)가 이학수 당시 삼성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사이의 대화를 도청한 내용이 들어 있는 테이프, 이른바 ‘삼성 엑스파일’의 일부를 입수해서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7명의 고위 검사 이름을 알아내 인터넷으로 알린 것이 전부다. 도청 시기는 1997년 대선 전이며, 노 전 의원이 ‘떡값’ 검사들 이름을 인터넷에 올린 것은 2005년 8월이다. 노 전 의원은 재벌과 검찰의 유착 관계를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검사들의 자성을 촉구하려 했다.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었다.

그런데 ‘떡값’ 검사 명단이 공개된 이후에도 뇌물성 ‘떡값’을 준 삼성의 이건희 회장 비서실이나 떡값을 받은 검사 중에는 처벌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고발한 노 전 의원만 억울하게 의원직을 상실하는 불운의 영웅이 됐다. 잡으라는 도둑은 안 잡고 도둑이 들었다고 외친 사람만 피해를 봤다는 분노의 소리가 높다.

그래서 통비법이 누구의 이익을 위한 법이냐는 의문이 새삼 제기된다. 통비법의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법이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 엑스파일을 맨 먼저 폭로한 <문화방송>(MBC)의 이상호 기자도 통비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정수장학회의 최필립 이사장과 문화방송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의 비밀 회동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의 특종도 대선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담은 기사였으나 검찰은 최 기자를 통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 기자는 최 이사장이 그와 통화한 다음 휴대전화의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실수로 비밀 회동 내용을 알게 됐을 뿐인데 검찰은 통비법 위반이라고 했다.

통비법이 통신의 비밀 보호보다 부도덕한 기업인 등의 불법행위를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언론 탄압으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010년 언론이 검찰의 형사범 감청 내용을 보도하는 것을 제한하는 입법을 시도한 바 있다. 본인을 포함해서 대기업 사주들의 비행이 폭로되는 것을 억제해 보려는 꼼수였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제한하려는 베를루스코니의 음모는 이탈리아 언론의 단결된 저항으로 좌절됐다.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자신이 연루된 베탕쿠르 정치자금 스캔들 보도가 불법도청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검찰을 통해 보도를 제한해 보려 했으나, 법원이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여하한 행동도 검열에 해당된다는 태도를 보여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언론 역시 통비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그 입법 취지를 재천명하고 이 법이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구실로 이용되지 않도록 단결해서 그 남용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제2의 노회찬 비극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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