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 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회사 쪽이 동원한 용역이 지키고 있는 서울 남대문로 한진해운빌딩 신관 15층 편집국에 들어가지 못한 채 1층 로비에 앉아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A신문 기자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건방지고,
B신문 기자들은 세련됐지만 소심하고
한국일보 기자들은 한마디로 인간적이었다
B신문 기자들은 세련됐지만 소심하고
한국일보 기자들은 한마디로 인간적이었다
한국일보에는 작은 추억이 있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선 조간 2부, 석간 2부(하나는 지방지)를 구독하면서, 가끔 구독신문을 이리저리 옮기시곤 했는데, 스포츠를 좋아하는 손자를 위해 한국일보는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일보는 당시, 신문이 안 나오던 월요일에 자매지인 일간스포츠를 배달해줬기 때문이다. 어릴 적 본 한국일보는 스포츠면과 문화면이 특히 강했다. 문화면을 빛냈던 김훈, 고종석, 박래부 등이 모두 한국일보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선 소년한국일보를 구독했는데, 만화가 이원복이 문학작품들을 단편만화로 각색해 신문에 게재했다. 오 헨리의 단편집을 주로 소개해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등의 오 헨리 단편소설을 만화로 먼저 섭렵할 수 있었다.
언론사 준비를 하면서, 맨 처음 시험을 본 곳이 한국일보였다. 상식 시험지를 받아보니, 20개의 제시된 용어들의 관련 내용을 짧게 쓰는 방식이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시험을 치른터라, 금융용어인 ‘꺾기’(기업이 대출을 할 때 은행에 일정한 금액을 강제로 예금하도록 하는 것, 양건예금)에 대한 답으로 “누르기, 조르기와 함께 유도의 3대 기술”이라고 썼던 일이 아득히 기억된다.
신문사에 들어오고 보니, 경쟁사인 한국일보는 살인, 사고 등 사회부 사건 기사에 특유의 강점을 지녔음을 알게 됐다. ‘기자 사관학교’라는 별칭이 한국일보에 따라다녔던 것처럼 그때 한국일보 사건 기자들은 사건 현장에서 펄떡거렸다. 또 한국일보 기자들은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과 강한 프라이드를 지니고 있음도 알았다. 한국일보의 선후배 관계는 무척 엄해 가끔 보면, 후배를 아예 잡았다. 그러면서도,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후배들이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는 게 퍽 인상적이었다. 엄하면서도 친숙한 관계였다.
신문사마다 기자들의 전형적 유형이 있다. 예를 들어, A신문사 기자들은 엄청 열심히 일하지만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다소 건방지다거나, B신문사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세련됐지만 작은 것 하나에 바들바들 떠는 소심함이 두드러진다거나 하는 식의. 그런데 사회부·경제부 생활을 하면서 현장에서 만난 한국일보 선배들은 한 마디로 인간적이었다. 기자실 안에서 엄청 시끄러운 사람들은 주로 한국일보 기자들이었고, 내가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까짓 것” 하는 대범함과 의리가 있었다. 기자들이 데스크에 강하게 쪼이다보면, 출입처의 다른 기자들도 다 알고 있지만 수사상의 이유 등으로 언제까지 쓰지 않기로 한 ‘엠바고’를 자신의 단독기사처럼 포장해 내보내는 경우도 가끔 있었는데, 한국일보 기자들이 이런 치사한 일을 벌이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조중동’이라 하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4대지로 분류되던 한국일보는 서울경제, 코리아타임즈 등 자매지들과 함께 출입처에 나와 상당한 매체 파워를 갖기도 했다. 또 미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할 동안에는 수십년동안 한인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미주 한국일보가 교포사회에서 얼마만큼 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모든 신문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국일보만큼 그 위상과 매체파워가 급전직하한 경우는 드문 것 같다.
한국일보는 이전에는 지금의 조중동과 논조가 비슷했지만, 언제부턴가 중도적인 입장을 강하게 띄웠고, 조중동이 더 보수 쪽으로 선회하면서 차별성이 두드러졌다. 한겨레, 경향 등 이른바 진보지 입장에선 한국일보가 온전히 진보 쪽 입장에 서진 않았지만, 그래도 반갑고 고마웠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어떤 사안에 대해 한국일보가 조중동과 비슷한 논조를 펼 때는 조중동이 그런 기사를 내보내는 것보다 더 섭섭했다. 또 가끔은 ‘어떻게 한 신문사에서 이렇게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논설위원들이 각각 다른 입장을 같은 지면에 각각 내보낼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논조의 취지는 알겠지만, 차지도 덥지도 않은, 이런 중도적인 논조가 지금처럼 입장이 갈린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입지를 굳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한국일보의 편집국 문이 닫힌 토요일 상황을 신문 사진으로 봤다. 한국일보가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남의 신문사지만, 한국 언론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아득했다.
한국일보가 파행된 첫날인 월요일치(6.17) 한국일보를 봤다. 기사보다 바이라인에 더 눈이 갔는데, 반 이상이 아는 기자들이다. 조금 놀랐다. 부장이어서, 또는 어떤 이유에서 닫힌 편집국 안에서 기사를 썼겠지만, 편집국 문 바깥에 있는 190명 기자들의 깨진 마음에야 비할 수 없겠지만, 문 안에서 기사를 쓴, 내가 아는 그들도 고통스런 시간을 지나고 있을 것 같다.
한국일보 사태는 봉합이 되든, 파행이 되든, 아니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매듭지어지든, 언젠가는 해결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국일보 사태를 보면서 혹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논조는 상관없구나. 신문사는 마케팅을 잘해야 하는구나. 한국일보가 최근 몇년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팩트에 충실하려 하는, 나름 자기 주관을 갖고 신문을 만들려고 애써왔지만, 결국 오너 있는 신문사에서는 그런 게 신문사를 지켜주진 않는구나. 신문사는 마케팅을 잘해야 하고, 논조는 그 다음”이라는, 지금도 견디기 힘들만큼 자본의 지배를 받는 언론사들이 더욱 자본에 기울어지게 되지는 않을런지.
지금은 일단 문 밖에 있는 한국일보 선후배들에게 어떻게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지 고심하는 게 먼저일 것 같다.
※ <한국일보> 사태를 지켜보며 한겨레신문사 권태호 콘텐츠기획부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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