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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보도 판단 쏙 빼고…청취-녹음 ‘이상한 분리 판결’

등록 2013-08-20 21:28수정 2013-08-20 22:29

정수장학회 지분매각을 논의한 비밀회동을 녹음·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2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수장학회 지분매각을 논의한 비밀회동을 녹음·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2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수장학회 보도’ 1심 선고
법원, 녹음 무죄-청취 유죄
“최필립과 통화때부터 녹음 진행
새로운 녹음행위 없어 처벌 못해”
타인들의 대화 들은건 불법 판단

최성진 기자 변호인쪽 반박
“녹음하려면 들을 수밖에 없는데
법원이 분리 안되는 걸 분리
전화 안 끊은 것도 상대방 실수”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지분 매각 논의 비밀회동 내용을 전화로 듣고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에 대해 법원은 20일 ‘청취 행위’와 ‘녹음·보도 행위’를 분리해 유·무죄를 다르게 판단했다. 청취 행위를 유죄로 보는 대신 녹음·보도 행위를 무죄로 봤지만, 보도의 공익성 여부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아 본질을 비켜간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엿들은 것”-“들려온 것” 최 기자는 지난해 10월8일 오후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 등에 관해 전화통화를 했고, 최 전 이사장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이진숙 전 문화방송 홍보기획본부장 등 문화방송 간부 2명과 문화방송 지분 매각 논의를 시작했다. 최 기자는 이들의 대화 내용을 휴대전화를 통해 들은 뒤 보도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이성용 판사는 최필립 전 이사장과 문화방송 간부들의 대화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규정하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 내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따라서 최 기자가 최 전 이사장과의 통화를 마친 뒤 이진숙 전 본부장 등의 목소리가 들렸다면 그때부터는 전화를 끊는 등 대화를 듣지 말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최필립과의 통화를 마친 직후 최필립과 문화방송 간부들 사이의 대화가 시작돼 이를 계속 듣게 됐다는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청취의 동기, 방법, 대화가 이루어진 장소, 환경, 공개되지 아니한 대화 당사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기대감 등 여러 사정에 비춰 피고인이 적법행위(대화를 듣지 않는 행위)로 나아가는 것이 실제로 전혀 불가능하였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기자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대화 당사자들이 공개할 의사가 없었지만 실수 등으로 대화가 전달돼 제3자가 듣게 되는 경우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발생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이 이런 경우까지 청취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들리게 된 내용에 대해 최 기자가 상대의 실수를 덮어주면서까지 끊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녹음 무죄인데 청취는 유죄? 최 기자가 최 전 이사장과 문화방송 간부들의 이야기를 들을 무렵에는 이미 녹음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 기자가 앞서 최 전 이사장과 통화를 하면서 녹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화 당사자가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최 기자가 세 사람의 대화가 시작될 때 ‘녹음 기능을 작동시키는 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판사는 최 기자가 녹음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 (수화기를 귀에 대고) 듣는 행위는 있었지만, 버튼을 누르는 등 녹음을 시작하는 행위는 없었기 때문에 공소사실의 구성요건이 안 된 것으로 보고 녹음 대목은 무죄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세 사람의 대화를 들은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청취 행위’로 봤다. 이 판사는 “청취 행위는 녹음과 별도로 기소되었고, 서로 행위의 태양(모습)이 다르며, 녹음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청취가 녹음과 흡수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판결대로라면 대화 내용을 듣지 않고 녹음만 했다면 무죄가 나오게 된다. 녹음은 청취 내용을 전자신호로 바꾼 것일 뿐 녹음과 청취를 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주민 변호사도 “녹음을 하려면 들을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분리가 안 되는 것을 분리했다. 판결이 실제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양태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보도의 정당성 여부는 판단 안 해 이 판사는 최 기자가 대화 내용을 보도한 행위에 대해 “녹음 행위가 적법하므로 녹음 내용을 보도한 것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추론일 뿐 보도의 공익성을 평가한 것은 아니다. 박주민 변호사는 “보도의 공익성을 볼 때 형법 20조에 따른 정당행위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행위를 몇개로 보든지 무죄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수장학회 매각은 단순히 사적 재산을 팔겠다는 내용이 아닌데, 이 사건 보도의 공익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노회찬 전 의원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사건을 변호했던 이덕우 변호사도 “보도의 공익성을 따져 청취부터 보도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유무죄를 가렸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최 전 이사장 등이 몰래 추진한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계획이 공적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문화방송의 민영화 및 부산일보 매각에 관한 것이었고,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수장학회를 활용하려 한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진실 보도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와 공적 이익을 지키고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언론의 기본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 이사장 등의 대화 내용 가운데 사적 부분을 제외하고 문화방송·부산일보 매각과 관련한 내용을 대화록 등 형식으로 지난해 10월13일과 15일 보도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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