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민주당 박지원 의원, 진중권 동양대 교수, 방송인 김미화, 아나운서 오상진씨.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커버스토리] 금기 깨지는 종편 거부
종합편성채널(종편)은 말 그대로 ‘현실’이 됐다. 탄생에서부터 현재 모습까지 문제가 많다지만, 어쨌든 15~20번 황금채널대를 꿰차고 24시간 내내 프로그램을 틀어대고 있고 시청률도 조금씩 오른다. 이런 채널들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모른 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종편의 탄생을 비판했던 사람들에겐 일종의 숙제가 주어졌다. ‘볼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시청자라면 좀더 쉬울지도 모른다. ‘출연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견준다면.
종편과 거리감 느껴지던
진중권·김미화·오상진도 참여
“조·중·동 종편은 정권 장물”
“개인 욕망 무시하면 안 돼”
찬반 입장은 봉합되지 못했다 종편 출범 직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종편행’을 택한 인사의 행보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2011년 12월 종편이 개국할 때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한 종편의 ‘일일 앵커’로 출연한다거나, 안철수 의원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거나 하는 소식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실망스럽다” “김연아 너마저…”와 같은 반응들이 나왔다. 반면 이런 반응에 대해 ‘진영 논리에 매몰돼 개인의 선택을 강요하는 행태’라는 비판도 있었다. 종편 출범에 즈음해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문화연대가 주최한 ‘진보진영, 종편 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란 제목의 긴급좌담회는 이런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종편은 정권의 장물이다. 알면서 출연하면 장물 취득자”라며 종편 출연을 비판했고,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허지웅씨는 “거악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논리 아래 개인의 욕망을 무시하고 그 선택에 대해 ‘부역자’ 낙인을 찍는 행위”라며 반박했다. 두가지 다른 입장은 끝내 봉합되지 못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인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편행’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편이 어쨌든 2년 넘도록 언론사로서 자리를 잡고 조금씩 시청률을 올리면서 이런 흐름이 조금씩 변해가는 현상이 감지된다. 종편의 집요한 섭외 요구와 출연자의 현실적 필요가 겹치며 ‘금기’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는 ‘종편 출연 금지’를 당론으로 정했던 민주당이 이를 철회한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을 ‘날치기’로 규정했던 민주당은 종편이 출범할 때 소속 의원들의 종편 출연을 금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이 끝난 뒤 종편 출연 금지가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자율적으로 종편 출연을 할 수 있도록 입장을 바꾸었다. 지금은 김영환·민병두·박지원·우윤근·이언주 의원 등이 ‘정치 예능’ 프로그램을 표방한 <제이티비시>(JTBC)의 <적과의 동침>에 출연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얼굴을 비치는 정도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을 좌시할 수 없다며 미디어법 개정을 육탄으로 저지하고 나섰던 결기와 울분은 이 프로그램에서 박장대소하는 민주당 의원들한테서 찾아볼 수 없다. 이 정도면 적과 동침하는 게 아니라 투항하거나 전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년간 자리잡고 시청률 오르자
민주당 등 출연 금지 철회
“출연 거부로 문제점 알려지지도
출연으로 문제점 희석되지도 않아
개인 선택이나 결과는 책임져야” 종편을 비판하거나 종편과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방송인이나 평론가들이 종편에 모습을 비치는 경우도 많아졌다. “종편의 출연 제안을 거부해왔다”던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6월부터 제이티비시 시사 프로그램 <뉴스콘서트>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당시 진 교수는 제이티비시의 손석희 사장 영입을 입장 번복 이유로 밝혔다. 그는 스스로 종편 출연을 거부하는 동안에도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종편 출연을 비난하는 여론을 비판한 바 있다. 최근 한달 만에 하차하긴 했지만, 방송인 김미화씨가 <매일경제> 계열의 종편 <엠비엔>(MBN)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한 것을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종편 탄생의 길을 열어준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파업에 참여했던 오상진·문지애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가 제이티비시에서 고정 프로그램을 맡은 것, 시사평론가인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제이티비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등도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종편에 대한 ‘터부’가 서서히 약화되는 현상에 갑론을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종편에 더 많이 참여함으로써 종편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정권의 특혜로 탄생한 문제 있는 언론이 자리를 잡도록 도와주는 꼴밖에 안 된다’는 비판도 거세다. 종편 출연과 취재 거부를 선언한 바 있는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종편 출연 여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쪽이다. 그는 “소수의 사람들이 종편에 출연하길 거부한다고 해서 종편의 문제점이 더 많이 알려진다고 보기도 어렵고, 종편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많아진다고 해서 종편의 문제점이 희석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왜곡·편파 보도 행태 등 종편이 보여온 실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이 훨씬 시급하다고 짚었다. 또 “종편 출연 여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라고 전제한 뒤 “다만 자신의 출연과 발언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진중권·김미화·오상진도 참여
“조·중·동 종편은 정권 장물”
“개인 욕망 무시하면 안 돼”
찬반 입장은 봉합되지 못했다 종편 출범 직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종편행’을 택한 인사의 행보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2011년 12월 종편이 개국할 때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한 종편의 ‘일일 앵커’로 출연한다거나, 안철수 의원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거나 하는 소식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실망스럽다” “김연아 너마저…”와 같은 반응들이 나왔다. 반면 이런 반응에 대해 ‘진영 논리에 매몰돼 개인의 선택을 강요하는 행태’라는 비판도 있었다. 종편 출범에 즈음해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문화연대가 주최한 ‘진보진영, 종편 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란 제목의 긴급좌담회는 이런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종편은 정권의 장물이다. 알면서 출연하면 장물 취득자”라며 종편 출연을 비판했고,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허지웅씨는 “거악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논리 아래 개인의 욕망을 무시하고 그 선택에 대해 ‘부역자’ 낙인을 찍는 행위”라며 반박했다. 두가지 다른 입장은 끝내 봉합되지 못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인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편행’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편이 어쨌든 2년 넘도록 언론사로서 자리를 잡고 조금씩 시청률을 올리면서 이런 흐름이 조금씩 변해가는 현상이 감지된다. 종편의 집요한 섭외 요구와 출연자의 현실적 필요가 겹치며 ‘금기’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는 ‘종편 출연 금지’를 당론으로 정했던 민주당이 이를 철회한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을 ‘날치기’로 규정했던 민주당은 종편이 출범할 때 소속 의원들의 종편 출연을 금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이 끝난 뒤 종편 출연 금지가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자율적으로 종편 출연을 할 수 있도록 입장을 바꾸었다. 지금은 김영환·민병두·박지원·우윤근·이언주 의원 등이 ‘정치 예능’ 프로그램을 표방한 <제이티비시>(JTBC)의 <적과의 동침>에 출연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얼굴을 비치는 정도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을 좌시할 수 없다며 미디어법 개정을 육탄으로 저지하고 나섰던 결기와 울분은 이 프로그램에서 박장대소하는 민주당 의원들한테서 찾아볼 수 없다. 이 정도면 적과 동침하는 게 아니라 투항하거나 전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년간 자리잡고 시청률 오르자
민주당 등 출연 금지 철회
“출연 거부로 문제점 알려지지도
출연으로 문제점 희석되지도 않아
개인 선택이나 결과는 책임져야” 종편을 비판하거나 종편과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방송인이나 평론가들이 종편에 모습을 비치는 경우도 많아졌다. “종편의 출연 제안을 거부해왔다”던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6월부터 제이티비시 시사 프로그램 <뉴스콘서트>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당시 진 교수는 제이티비시의 손석희 사장 영입을 입장 번복 이유로 밝혔다. 그는 스스로 종편 출연을 거부하는 동안에도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종편 출연을 비난하는 여론을 비판한 바 있다. 최근 한달 만에 하차하긴 했지만, 방송인 김미화씨가 <매일경제> 계열의 종편 <엠비엔>(MBN)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한 것을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종편 탄생의 길을 열어준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파업에 참여했던 오상진·문지애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가 제이티비시에서 고정 프로그램을 맡은 것, 시사평론가인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제이티비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등도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종편에 대한 ‘터부’가 서서히 약화되는 현상에 갑론을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종편에 더 많이 참여함으로써 종편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정권의 특혜로 탄생한 문제 있는 언론이 자리를 잡도록 도와주는 꼴밖에 안 된다’는 비판도 거세다. 종편 출연과 취재 거부를 선언한 바 있는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종편 출연 여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쪽이다. 그는 “소수의 사람들이 종편에 출연하길 거부한다고 해서 종편의 문제점이 더 많이 알려진다고 보기도 어렵고, 종편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많아진다고 해서 종편의 문제점이 희석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왜곡·편파 보도 행태 등 종편이 보여온 실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이 훨씬 시급하다고 짚었다. 또 “종편 출연 여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라고 전제한 뒤 “다만 자신의 출연과 발언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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