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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박정희 하야하라” 구호 첫 등장 / 이룰태림

등록 2014-01-28 19:38수정 2018-05-10 11:35

1964년 4월20일 서울대 문리대 4학년 시절 필자(성유보)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해 처음으로 구속됐다 사흘 만에 풀려난 뒤 <경향신문>에 ‘성용무’란 가명으로 얼굴 사진과 함께 인터뷰를 했다.(왼쪽 사진) 5월20일 문리대 주도로 필자도 모의 과정에 참여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시위’가 이웃 대학 학생들과 시민들까지 가세한 가운데 열렸다.(오른쪽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1964년 4월20일 서울대 문리대 4학년 시절 필자(성유보)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해 처음으로 구속됐다 사흘 만에 풀려난 뒤 <경향신문>에 ‘성용무’란 가명으로 얼굴 사진과 함께 인터뷰를 했다.(왼쪽 사진) 5월20일 문리대 주도로 필자도 모의 과정에 참여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시위’가 이웃 대학 학생들과 시민들까지 가세한 가운데 열렸다.(오른쪽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이룰태림(성유보)-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20)
1964년 봄 새 학기를 맞았다. 3월24일 서울대·고려대·연세대가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서울대 문리대에서는 김중태 주도로 ‘4월혁명 기념탑’ 앞에서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식’을 했다. 정치학과 3학년 박삼옥(경북고 출신)이 선언문을 읽고, 정치학과 2학년 최희조(전 <동아일보> 기자)가 ‘전국 대학생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법대생 200여명이 가세한 500여명이 동숭동에서 종로5가까지 진출했다. 고대생 1500여명은 대광고 학생들과 합류해 동대문까지 진출했다. 연대생 2500여명도 함석헌·장준하 선생의 강연을 들은 뒤 노고산동 로터리까지 나왔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문리대에서도 송철원과 정치학과 4학년 송진혁(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잡혀갔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학생 시위가 64년 1년 내내 전국을 ‘거리 정치’로 달굴 줄은 아무도 몰랐다.

4월20일에도 서울대 문리대와 이웃 성균관대 학생 1000여명이 연합집회를 벌였다. 구호는 “‘5·16’은 결코 ‘4·19’의 계승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나와 정치학과 동기 김문원 등 모두 6명을 본보기로 구속시켰지만 사흘 만에 석방되었다. 나의 첫 서대문형무소 입소였다.

그때 나는 혹여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성용무’(成龍武)라는 가명을 썼는데 경찰도 넘어가줬다. 풀려나자 문리대 1년 선배이기도 한 <경향신문>의 김주연 기자가 ‘구속 학생들도 할 말 있다’(4월27일치 6면)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실어줬다. 얼굴 사진까지 실린 그 기사에서 나는 “박정희 정권이 한일회담 반대 학생운동을 공갈·회유하기 위해 프락치를 학원에 침투시키고 있는데, 이를 뿌리뽑아야 합니다”, “국가의 먼 장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외교, 학원을 불순시하는 사찰, 매판자본이 활개치는 경제구조가 고쳐지지 않는 한 우리는 전진할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그 뒤 실제로 박 정권이 대학가에 심어놓은 ‘청사회’(YTP·Youth Thought Party)라는 프락치 조직이 들통났다. 송철원은 손정박(정치학과 동기)·이영섭·최해용·최무웅 등과 함께 ‘학원사찰 조사위’를 만들어 4월23일 문리대 4월혁명 기념탑 앞에서 ‘청사회 조직’의 실체를 폭로했다. 그리고 박 정권에 대해 ‘37개 사이비 학생단체를 해체시켜라, 공화당은 자금 제공을 중지하고 공개 사과하라’ 등 4개 항을 요구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5월17일 “중앙정보부 국내정보국을 완전히 철폐하고, 각 도지부를 없애는 대신 주요 지역에 ‘대공분실’을 새로 설치하여 대공 및 반국가 사범에 관한 정보·수사 활동을 전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위장술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5월21일 송철원을 납치해 심한 고문을 한 뒤 사흘 만에 슬쩍 풀어줬다.

‘학림제’ 축제기간이었던 5월20일 문리대에서는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시위’를 벌였다. 동국대·성균관대·건국대 학생도 동참했다. 송철원은 5월16일 저녁 문리대 앞 중국집 ‘진아춘’에서 문리대의 김중태·현승일·김도현·최혜성·이원재 등과 동국대·성균관대·건국대 학생 21명이 모여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을 열기로 결의했다고 기억했다. 현승일의 권유로 나도 이 모의에 참석했다. 경북고 1년 선배이나 재수해서 정치학과 동기생이 된 그는 민족주의비교연구회는 살려야 하니 “발언은 하지 말고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흐름을 잘 새겨두라”고 당부했다. 나로서도 학생운동의 맥을 잘 알지 못해서 별 발언을 하지 않았다.

20일 낮 문리대 교정에서 시작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에서 동국대의 장장순이 대회사를 하고 김지하가 쓴 ‘조사-시체여!’를 송철원이 낭독했다. 이윽고 오후 3시 학생 3000여명과 시민 1000여명은 곡성을 울리며 장송 시위에 들어갔다. 주동자 13명이 수배되었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5월25일에는 전국 37개 대학에서 총학생회장 주도로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서울대에서는 4·19기념탑 앞에 500여명이 모여, 법대 4학년인 총학생회장 정정길(경북고 동기·전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회로 궐기대회가 열렸다. 당시 문리대 학생회장인 사회학과 4학년 김덕룡(전 국회의원)이 선언문과 결의문을 읽은 뒤 외교학과 4학년 박영호가 ‘자유수호투쟁선언’을 통해 “양심은 반항한다. 1주일은 참을 수 없다”고 외치자 학생들은 일제히 시위에 들어갔다.

5월27일 박석무(현 다산연구소 이사장)가 주도한 전남대생 시위에서 “박정희 대통령 하야를 권고한다”는 성명이 나온 데 이어 6월2일 고려대생들이 “박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에 나섰다.

정리 도움/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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