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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군 복무시절 끌려간 중앙정보부 / 이룰태림

등록 2014-02-06 19:26수정 2018-05-10 11:56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26)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와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스산하게 만든 것은 1964~65년 운동의 선봉 격인 서울대 문리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의 간부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박정희 정권이 내란음모, 내란선동, 폭발물 사용 음모, 반공법 위반 등 어마어마한 죄목을 씌워 9명을 구속 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 기소한 사건이었다. 구속 기소자는 서울대의 김중태(정치4)·최혜성(철학4)·박재일(지리4)·송철원(정치4)·이수용(정치4)·진치남(법4), 이화여대의 진민자(과학4), 동국대의 장장순(대학원 행정1)·이원범(행정4) 등이었고, 불구속 기소자는 서울대 우학명(지리4)·박영효(대학원1), 연세대 정준성(대학원1)·박영남(철학4)·김한림(범인 은닉) 등이었다.

박 정권은 앞서 64년 ‘6·3 운동’ 때 김중태·현승일·김도현을 ‘내란죄’로, 김정남을 ‘반공법’으로 기소했으나 사법부에 의해 140일 만에 무죄와 집행유예로 풀려났었다. 그럼에도 1년 만에 다시 ‘2차 민비연 사건’을 조작해 학생운동 대표들을 감옥에 보낸 것이다. “반대자는 끝까지 보복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줄 속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한 마음을 추스르고자 나는 당면한 군복무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소집명령일인 66년 7월까지 마냥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해 1월27일 포항·영일 입대예정자들과 함께 논산훈련소로 들어갔고, 6주간 이등병의 훈련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사병으로 근무한 남자들은 누구나 “군대 생활을 쓰면 책 한 권은 된다”고들 하는 만큼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논산훈련소 교육 동안 내 왜소한 체격에도 배가 너무나 고팠다는 사실만은 꼭 지적해 두고 싶다. 영천 부관학교 8주 교육에 이어 그해 4월 초 부천 소사의 33예비사단 부관부로 발령받은 나는 68년 9월14일 만기 제대했다.

비교적 평온하던 군 생활 중에도 한 번은 풍파가 있었다. 67년 10월 중순 어느 날 오후로 기억된다. 사단 본부중대의 중대장이 “사단장이 찾는다”며 나를 사단장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색안경을 낀 중년 남자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단장(정세진 준장)은 “이분들이 자네에게 볼일이 좀 있다 하니 다녀오게”라고 말했다. 그들이 몰고 온 지프차를 탔더니 차 안에서는 “여기는 독수리, 여기는 독수리” 무선교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잠을 자버렸다. 도착지는 남산 중턱의 배럭(임시막사) 건물이었다. “중앙정보부로구나” 하고 직감했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64년 5월14일 서울대 문리대 앞 진아춘 모임에 갔었지?” 하고 물었다. 나는 “진아춘 모임이 무슨 모임인데요?”라고 반문하면서 “진아춘 모임 참석자들을 엮어 다시 큰 사건을 만들지도 모르겠구나”라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수사관은 “야, 문리대 놈들이 주동이 되어 ‘민족적 민족주의 장례식’을 모의한 중국집 진아춘 모임에 너도 있었잖아?” 하고 추궁하고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무조건 오리발을 내밀어야겠다”고 작정한 나는 “시위에는 여러번 참가했지만 진아춘 모임에는 간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완강하게 부인했더니 수사관 한 명이 “좀 기다려” 하며 어딘가로 나갔다 20분쯤 지나 돌아왔다. 그는 “네가 진아춘 모임에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안다. 그러나 네가 지금 군대 졸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니 이번 한 번은 봐준다. 저녁이나 먹고 가라”고 하고는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켜 주었다. 나는 그릇을 다 비우고 나왔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냥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육군 졸병을 탈영병 만들 일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수사관은 “참 그렇지. 얘는 군인이잖아” 하면서 백지에다가 “위 사람은 당 부에서 볼일을 보고 군으로 귀대하는 자임”이라 쓰고 개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백지에 ‘중앙정보부’라는 표시는 없었다. 그 문서만으로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의 위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그러거나 말거나 나로서는 감옥에 갈 뻔한 위기를 겨우 모면하고 곧바로 부대로 귀대한다는 것이 매우 억울했다. 그들이 건넨 문서를 잠깐 들여다본 나는 “수사관님, 나온 김에 집에 좀 다녀가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 수사관은 “이런 맹랑한 놈 봤나?” 하면서도, “그래, 며칠이면 되겠어?” 하고 물었다. “사흘 정도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수사관은 귀대 날짜를 사흘 뒤로 고쳐 써 주었다.

이때 중앙정보부에 어떤 학생들이 함께 잡혀왔고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박 정권이 67년 여름 민비연의 황성모 지도교수(작고)와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을 엮어서 만든 대대적 공안사건의 마무리 단계에서 내가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 도움/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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