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3월17일 박정희 정권에 굴복해 160여명의 언론인을 거리로 쫓아낸 동아일보사는 39년이 지난 지금껏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 요구에 귀를 닫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17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사옥 앞에서 동아투위 위원들이 자유언론과 공정방송 결의를 하고 있는 모습. 앞줄 맨 왼쪽이 필자, 맨 오른쪽이 김종철 현 위원장. 사진 동아투위 제공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57)
지난 3월17일 ‘동아투위 39돌 동아일보사 앞 집회’에 나갔다. 1976년부터 해마다 3월17일만 되면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거리에서 거행해온 이 집회는 투위 위원들의 노령화로 참가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올해도 30여명이나 모였다.
집회에 참석한 ‘막내 세대’ 정연주(전 <한국방송>(KBS) 사장) 위원이 벌써 60대 후반, ‘선배 세대’ 윤활식 전 동아투위 위원장이 80대 중반이니까 모인 사람 대부분이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지하철을 타고 일산에서 광화문으로 나가면서 먼저 떠난 위원들의 그리운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조민기·이의직·안종필·홍종민·김인한·홍선주·심재택·안병섭·우승룡·배동순·김성균·김덕렴·강정문·안성열·김두식·김진홍·이병주·이인철 위원. 벌써 18명이나 고인이 되셨다니…. 동아투위 ‘최고의 재사’ 국흥주 동지를 비롯해 최근 거동이 불편해 ‘결석’한 장윤환 전 위원장, 안상규·조성숙·신태성 위원 등의 모습도 떠올랐다.
낮 12시 반, 문영희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집회에서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의 인사말,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의 연대사에 이어 ‘동아일보사와 박근혜 정부에 보내는 공개장’을 발표했다. “오늘날의 <동아일보>는 그 ‘아우 매체’ 격인 <채널 에이(A)>와 더불어 ‘사회적 공기’라기보다는 민족공동체의 평화와 공존을 파괴하는 ‘흉기’라는 지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현 정권이 갖은 위법과 불법을 저지르다가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빠지면 기사와 논설을 총동원해서 ‘구조대’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동아일보를 포함한 보수언론입니다. 국가정보원이 2012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엄청난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는 진상을 파헤치기는커녕 오히려 정권의 ‘친위대’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이른바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에서도 ‘간첩’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나선 매체가 동아일보였습니다. <채널 에이>는 지난해 광주 5월항쟁 33돌을 앞두고 ‘북한군이 광주 폭동을 주도했다’는 투의 보도로 항쟁의 주역들과 희생자 유족의 격분을 산 끝에 달걀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박종만 위원이 낭독한 이 성명에서 우리는 현장 언론인들에게 “언론자유와 공정방송을 위해 모두 하나 되어 깃발을 높이 들고 행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우리는 이처럼 박정희 정권과 동아일보사의 합작으로 펜과 마이크를 빼앗기고도 떳떳한 데 반해, 당시 1등 신문이던 동아일보는 ‘3류 신문’으로 전락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동아일보사가 박 정권에 ‘자유에의 혼’을 저당 잡힌 결과다.
1975년 봄으로 되돌아가 보자. 동아일보는 우리를 쫓아낸 이후 민주화운동 뉴스를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국민을 까막눈으로 만들었다. 국민들은 3월 말부터 계속된 고려대생들의 시위를 ‘긴급조치 7호’로 고려대에만 휴교령이 내려진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민청학련 사건 1돌’을 맞아 “우리의 동료 이현배·유인태·김효순·이강철을 석방하라”, “모든 민청학련 관련자들을 사면·복교시켜라”며 2000명이 연좌농성에 나선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4·3 시위’도 국민들은 알 수 없었다. ‘김상진 열사 할복자결사건’은 <기독교방송>(CBS)에서 잠깐 전파를 탈 뿐 모든 언론이 묵살했고, 신민당 당보 <민주전선>(138호)에 ‘양심선언’ 내용이 실려 일부 정치권에만 알려졌다. 서울대 ‘오둘둘(5·22) 시위 사건’ 역시 은폐됐다.
단테는 일찍이 그의 <신곡>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사람에게는 ‘지옥’이 준비되어 있고, 해야 할 일을 안 한 사람들에게는 ‘연옥’이 준비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안 한 사람들의 대열 맨 앞줄에 동아일보를 비롯한 ‘긴조 9호 시대 언론’이 서 있었다”고 생각한다.
75년 봄 동아일보사의 ‘백기투항’에 박정희 정권은 한층 더 고자세로 나갔다. 6월22일 중앙정보부의 양두원 차장보는 “유신헌법은 폐지가 아니라 수호·발전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문건, ‘동아의 결의와 진로’를 이동욱 주필에게 건네면서 신문에 실어달라고 요구했다. 김상만 사주는 “신문 게재만은 못하겠다”고 버텼지만, 박 정권의 요구 내용은 거의 수용했다.”(<너마저 배신하면 이민 갈 거야>, ‘동아일보 광고탄압 해제와 경영진의 변질-주동황 교수’, 2002년)
박 정권은 미국 의회에서까지 ‘압력’이 들어오자 동아일보사가 ‘유신 지지’를 신문에 싣는 것만은 면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하여 동아일보사에 대한 광고탄압은 75년 7월 중순 완전히 풀렸다.
이처럼 국민의 편이 아니라 권력의 편에 서 있는 동아일보사가 여전히 “주류 언론” 행세를 하는 사회, 지금 한국 사회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도움 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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