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미디어

“교수 등 지식인 편중된 필진 칼럼서 가르치려 들어”

등록 2014-04-16 19:12수정 2014-04-16 22:29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2기 위원회 마지막 회의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2기 위원회 마지막 회의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오피니언면·만평 분석
총 36면에 이르는 신문 지면 가운데 아침에 신문을 펼쳐들면 독자들이 흔히 가장 먼저 열어보는 지면 중 하나가 오피니언면이다. 뉴스 속보는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반면, 신문 칼럼은 다른 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글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신문 읽는 시간의 효율적 투입이란 측면에서도 칼럼 지면이 우선순위로 선택되곤 한다. 이에 따라 신문사들도 저마다 오피니언 지면을 차별화된 경쟁력 요소 중 하나로 꼽고 강화하고 있다. 한겨레 지면에 실리는 칼럼은 어떨까? 사회 현상이나 이슈를 날카롭게 진단하면서 번뜩이는 통찰력을 던져주는가? 향기있고 웅숭깊은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하는가? 또 한겨레 여론면은 여론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공론장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번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토론에선 한겨레의 외부 칼럼과 사내 칼럼, 사설까지 포함한 오피니언면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한겨레 만평에 대한 의견도 들어봤다. 일부 열린편집위원들은 김선주 칼럼 등 생각을 자극하는 좋은 칼럼이 많지만 진영논리에 갇힌 칼럼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교수와 연구자 등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지식인 중심으로 필자가 구성돼 있어, 노동자·농민·시민사회 영역의 사회적 발언권은 한겨레 여론 지면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설의 경우 더 많은 사실 확인과 취재를 통해 가독성을 높여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한겨레 만평이 정치 이슈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우리 자신도 풍자 대상으로 삼아달라는 조언도 나왔다.

14일, 신인령 위원장의 사회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린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제6차 회의 내용을 정리해 지상 중계한다.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참석자)
<위원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사외 위원> 김재영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윤고은 작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사내 위원>
정석구 편집인, 김종철 편집국 에디터부문장, 강성만 편집국 여론미디어에디터,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 칼럼 필진 교수·연구자 등 지식인 중심…노동자·농민·시민사회 발언권 홀대

신인령 위원장 오늘이 어느덧 제2기 열린편집위원회 마지막 회의다. 이번 토론회의에선 <한겨레> 오피니언 지면과 만평(한겨레 그림판)을 중심으로 얘기해보자. 외부 칼럼과 사내 편집국 칼럼, 사설까지 포함해 필진 구성이나 오피니언 지면의 주제·내용·논점 그리고 정체성 등을 짚어가며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해 주면 좋겠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 개인적으로 한겨레를 보는 이유는 주로 칼럼 때문이다. 신문에서 속보와 스트레이트 뉴스의 기능은 점차 줄어드는 대신 해설과 분석 등 필자의 식견과 안목을 보여주는 칼럼 지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런 좋은 칼럼 한 편을 읽으면 한달치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 한겨레 칼럼 중에서 뻔한 얘기가 아니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의 단서를 주는 코너로 이명수의 사람그물,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김호의 궁지 등을 꼽을 수 있다. 독자에게 깨우침을 주고 생각을 자극하는 좋은 칼럼들이다. 반면,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 보면 어렵고 딱딱한 장문의 글은 부담이 있다. 특별기고란은 내용도 좋고 생각해봐야 할 의제들을 제시하고 있긴 하나 지면 할애가 좀 커 보이고 사회 원로들에 대한 의존이면서 동시에 이들을 대접한다는 느낌도 든다. 통일 이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백낙청 선생은 깊이 있고 지혜를 주는 말이지만 ‘또 백낙청 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전망대나 시민편집인 칼럼은 날카로운 대목을 품고 있으나 좀더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좋겠다. 원로나 한겨레 단골 필진 위주의 배치는 극복해야 한다. <중앙일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생 칼럼단을 모집한 뒤 이들이 쓴 칼럼 중 하나를 꼽아 매주 싣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도도 할 필요가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내가 분석해보니 지금 한겨레 칼럼난은 내부 필자 34명, 외부 필자 61명 등 총 95명이다. 직업별로 23명이 교수다. 시인 안도현(현직 교수), 염무웅 전 교수, 윤구병 농부철학자(전 교수)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다. 전문연구자 19명을 포함하면 외부필자 61명 중 교수·연구자가 총 42명이다. 나머지 19명 중 5명이 만화가 등 작가, 김선주·김종배 등 언론인, 의사·스님·전직 교사·변호사·기업체 대표 각 한두명씩이다. 필자의 직업군에서 극심한 편향이 확인된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나 노동자, 농민은 단 한명도 없다. 교사도 공무원도 없다. 오피니언 지면이 공론장의 성격인데 각 부문의 의견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고 발언권을 갖지 못한 집단이 매우 많다. 농촌·어촌·산촌·노동·시민사회는 한겨레 오피니언면에서 매우 홀대받고 있다. 교수와 연구자 등 지식인 중심의 필진 구성은 한겨레에서조차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학연 등의 요소가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심까지 든다.

노동자·농민 등 시민사회 발언 부족
단골필진 위주…필자 발굴 소홀해
사설, 진영논리 갇혀 잘 안읽혀
편집국과 외부필자간 조율 필요

내부 칼럼 필자는 고위 간부나 고참 기자들 위주로 돼 있다. 젊은 기자들에게 지면을 내주는 건 큰 모험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젊은 기자들의 집필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궁금하다. 칼럼은 한겨레의 심장 같은 것인데 많은 공을 들여 제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내용이 매번 반복되고, 한겨레에 칼럼 쓰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필자들이 진정으로 노력해 글을 쓰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날그날 한겨레에 실린 글 중에 화제가 되고 인구에 회자되는 칼럼은 별로 없다. 독자들이 미처 살피지 못했던 측면을 짚어주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칼럼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겨레가 간간이 발굴해냈던 필자도 요즘 들어선 거의 안 보인다. 진보적 이슈와 관련해 논란이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외부 칼럼 필자로 쓴 적이 있다. 그는 칼럼을 자신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자기 세일즈 수단으로 여기는 듯했다. 또 얼마 전까지 정치 캠프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곧바로 한겨레 칼럼면에 등장하는 건 문제다. 물론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자기 주장을 얼마든지 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라도 경제분야의 김아무개 교수처럼 귀기울여 들어볼 만한 얘기를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아무 이름 없는 대학생이지만 자기 관점에서 정직하게 쓴 글을 오피니언면에 실어보는 등의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

윤고은 작가 칼럼은 내용뿐 아니라 표현하는 스타일도 중요한 요소다. 위트 있게 꼬집는 칼럼이 좋다. 좀더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스타일이 구사되면 좋은데, 지식인 중심의 필진 구성은 이런 글을 쓰는 데 제약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스타일에서 좀더 확장해,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사람 중에 이효리처럼 소신 발언하는 대중 스타에게 칼럼 지면을 내주는 것도 시도해봄직하겠다. 대중적 인지도는 낮더라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주인공들이 릴레이 칼럼을 연재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 연예인 매니저나 택배기사 같은 사람부터 시작해 자유롭게 독자칼럼 유형의 글을 쓰게 하고 이들이 또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하는 직업군을 지목해 돌아가며 글을 쓰는 형태다. 또 칼럼 문패들이 많음에도 ‘왜냐면’ 등 몇개 코너를 제외하면 실제로 꼭지 간의 구분이 잘 안 되고 있다. 칼럼 형식이나 테마별로 꼭지 구분을 명확하게 설정해주면 좋겠다.

■ ‘가르치려 드는 칼럼’ 거부감…고민의 결을 독자와 공감하는 김선주 칼럼

김재영 ‘2030잠금해제’의 경우 젊은층으로 필진을 넓힌다는 취지이겠지만 오히려 이들 칼럼이 더욱 정치적으로 강하고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듯하다. 젊은층이 가진 색다른 시선은 보기 어렵고, 한겨레 지면에 실리는 글은 이래야 한다는 데서 비롯되는 어떤 스테레오타입이 있어 보인다. 외부 칼럼 필자의 글쓰기에 대해 전혀 간섭하지 않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게 자율성 보장 면에서 좋긴 하지만 때로는 어느 정도의 요구도 필요하겠다. 외부 칼럼이 실린 뒤에 그에 대한 사내외 독자들의 피드백(반응)을 필자에게 보내주면 어떨까? 필자는 자기 글에 대해 막막한 느낌이 있고, 피드백을 주면 경각심을 갖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자율성이 때론 방치로 흐를 수도 있는데, 주문한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서로 상의하는 차원에서 편집국과 외부 칼럼 필자가 상호작용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소장 필진 구성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한겨레 칼럼은 평균적으로 양질이다. 선정적이거나 정치적 목적의 칼럼은 별로 없다. 노동자·농민·학생의 필진 참여 문제는 그 배경에 글쓰기가 갖는 한계가 놓여 있는 것 같다. 직접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주체이지만 한겨레 여론면에서 이들이 자주 나타나지 않는 것은 글쓰기 훈련이 잘 안 돼 있다는 딜레마가 있을 것이다. 우리 단체에서 소식지를 만들면서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묘안을 고민해야 할 숙제다. 이명수·이계삼·윤구병 칼럼은 시사적인 문제나 소수자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진솔하게 또 의례적이지 않고 예각화해 잘 드러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겨레 사설에선 노동 이슈와 관련해 아쉬운 대목이 많다. 올해 1월부터 최근까지 실린 사설을 제목 중심으로 훑어보니 비정규 노동을 다룬 건 거의 없었다. 노동 관련 사설은 11번 정도였는데 대부분 쌍용차 사태에 관한 것이었고 비정규·중소영세·이주노동자는 빠져 있었다. 한겨레의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벌기업 삼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삼성 내부에서 간접고용 노동자, 위장폐업 등 민감한 핫이슈들이 많았는데 한겨레에 기사로는 많이 실렸으나 신문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사설 지면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한겨레에 실리는 칼럼마다 대체로 뭘 가르치려 드는 경향이 강해 거부감이 있다. 대학교수 등 지식인 중심으로 필진이 구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자꾸 가르치려 드는 칼럼은 내용이 뻔해서 끝 문장만 읽어도 주장이 뭔지 파악할 수 있다. 반면 김선주 칼럼은 결론을 성급하게 제시하지 않고 자신이 고민하는 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좋은 글이다. 그래서 글 전체를 다 읽게 된다. 칼럼 필자와 읽는 독자의 고민이 서로 공감하면서 어우러져야 흡인력이 높다. 어떤 전망을 제시하기 쉬운 지식인 부류의 필자를 앞세워 오피니언면을 통해 신문이 여론을 주도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실장 나도 한겨레 ‘열려라 경제’ 지면 칼럼 필진 중 한명이다. 한겨레 쪽에서 글의 내용을 거의 전적으로 나한테 맡기고 별다른 수정 요구는 하지 않는다. 물론 글이 너무 개인적인 일상사로 지루하게 흘러가거나 어렵게 쓰여 있으면 설명을 요청하기도 한다. 다른 언론매체에선 한번씩 글쓴이와 상의없이 제 글을 뭉툭뭉툭 날려버릴 때도 있다. 필자에게 맡기는 게 글 쓰는 입장에서 좋긴 하지만 가끔은 내 글이 기획 의도와 전체적으로 맞는지 자문해보는 적도 있다. 오피니언 지면 담당자와 필자 간의 세심한 의사소통이나 조율도 때론 필요할 수 있겠다. 사설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한겨레의 정치적 입장만을 표명하는 사례가 간혹 있어 보인다. 이번 무공천 논란의 경우 관련 사설이 현실 정치역학 구도에 의존해 쓰여진 듯한데 진보의 관점에서 이 사안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조명은 부족해 보였다.

오창익 한겨레 사설을 잘 읽지 않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뻔한 진영논리다. 3월25일치 사설 ‘하루 5억원짜리 노역은 법원·검찰의 합작품’은 여태까지 보도된 관련 기사 내용을 정리해놓은 것에 불과한 느낌이었다. 사설에서 제시한 의견은 맨 끝 문장에 나오는 “세부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사설은 그동안 보도된 내용에 대한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한겨레의 입장을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가 돼야 한다. 제목에 나오는, 법원과 검찰의 비위는 제대로 지적되지 못했다. 이건희 회장의 노역 일당 등 이미 보도된 얘기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재벌 회장 노역과 관련해 새로운 팩트는 안 보인다. 논설위원들이 사안을 확인하고 직접 전화를 돌려보면서 취재해 쓰고 있는지, 때로는 발로 뛰어 사설을 작성하고 있는지 약간 의문이 들었다.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진영논리 벗고 필자와 독자 공감 이뤄야 흡인력 생겨”

■ 사설, 진영논리에 잘 안 읽혀…‘박근혜 정부를 격려한다’ 칼럼 눈에 띄어

김재영 신문의 논조와 입장을 밝히는 난이 사설인데, 사실 1면 등에 비중 있게 지면에서 다뤘으면 기사에서 이미 신문의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그렇다면 사설의 존재 이유는 뭘까? 독자들이 사설을 잘 안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안함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한겨레> 3월26일치 35면) 등 몇 개를 빼면 나머지 사설은 대부분 보도된 내용들을 정리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관련 기사를 실은 지면에 한겨레 입장을 개진하는 칼럼이나 사설을 배치해 주제별로 묶는 것도 가독성을 높이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사설을 매일 꼭 3개씩 싣기보다는 탄력적으로 사안에 따라 길게 2개로 싣는 방식도 있겠다. ‘매일 3편’은 논설위원실의 역할분담에 맞춰 편의적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싶다. 덧붙여, 왜 사설에는 바이라인(글쓴이 이름)을 넣지 않고 있나. 신문사 전체의 입장을 집약하는 일종의 협업 구조로 사설이 생산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바이라인을 달면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고 좀더 경각심을 갖고 논설위원들이 쓰게 되지 않을까.

김종철 에디터부문장 사설에도 바이라인 넣는 문제를 논설위원실에서 한때 고민도 해본 적 있다. 하지만 사설은 신문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때로는 강한 주장이 실리기도 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바이라인을 넣으면 곧바로 글을 쓴 필자 개인이 공격받을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다. 외부 칼럼에 (때로 한겨레 편집 방향과 다른) 필자 개인의 생각과 의견이 담길 경우 공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렇지 않게 여기는 독자도 있다. 그래서 필자마다 늘 긴장 속에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군이나 연령대 등에서 다양하게 외부 필자를 구성하려고 노력하지만 짜놓고 보면 부족한 부문이 흔히 나타난다. 한겨레 내부의 젊은 칼럼과 관련해선 팀장급 및 평기자에게 칼럼 지면을 맡긴 건 한겨레가 국내 신문 중 가장 먼저 시도했다. 외부 칼럼은 물론 내부 칼럼에 대해서도 주제와 내용을 두고 편집인이든 편집국장이든 오피니언에디터든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고 어떤 주문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외부 필진까지도 자꾸 한겨레의 정체성에 맞춰 글을 쓰려 하는 측면도 간혹 있어 보인다. 자유롭게 쓰되 독자들이 읽기 쉽고 간결하게 써달라는 요청은 드려볼까 한다.

신인령 옛날에 신문 명논설로 이름을 날린 어떤 원로분에게 최근에 내가 ‘요즘 신문마다 칼럼과 논설이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는데 한겨레에 실리는 여러 칼럼과 논설은 열심히 공부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쓰여진 글 같다고 말하더라. 내가 생각하기엔 한겨레 칼럼들이 뭔가를 가르치려 든다기보다는 오히려 배울 것을 주는 좋은 글들이다. 재미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재미로 치자면 소설이 더 낫다. 가르치려 드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편안하게 표현하면서도 의미를 던져 줘 뭔가 배우게 하는 칼럼이 좋다. 외부 칼럼과 관련해, 한겨레의 편집 방향과 대립적인 의견이 같은 지면에 표출되는 건 좀 위험하다. 글을 풀어가는 방식은 달리하더라도 한겨레의 정체성을 항상 중심에 둬야 한다. 예컨대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에 대해 무공천 철회가 맞고 안철수 대표가 고집을 부리지 않은 건 그의 정치적 성장으로 볼 수 있다는 게 한겨레 기사의 입장인데, 무공천 철회로 안철수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식의 외부 칼럼이 실린다면 모순이 되고 독자에게 혼란을 주게 된다. 적어도 칼럼 지면에 서로 다른 주장이 실리는 건 피해야 한다. 유종일 칼럼 ‘박근혜 정부를 격려한다’(<한겨레> 4월8일치 35면)는 현 정부가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한겨레도 언제든 격려하고 또 그런 정책을 추진하도록 견인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시민편집인의 눈(고영재), 특별기고 코너 중 윤구병·남재희 선생의 글은 잘 읽히고 의미도 있다.

김재영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한겨레신문만 봐도 건전하고 깨어 있는 시민이 되고 배우는 것도 많아질 것이라고 늘 말한다. 그래도 학생들은 신문을 안 본다. 어떤 접점의 문제가 있다. 한겨레 칼럼들이 내용에서 후련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현실 정치를 어느 순간부터 가치 싸움이 아니라 권력투쟁으로 여기는 대중적 정서가 있다. 이런 면에서 한겨레의 정치 과잉 칼럼들을 보면 갑갑하다. 진영논리에 기대서 ‘훈수 정치’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외부 칼럼들이 정치 구도에 매몰되는 배경의 하나로 필자들의 자기검열이 작동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외부 칼럼은 신문의 논조·입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사설’이란 성격도 띠고 있다고 한다. 한겨레 외부 칼럼엔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위의 안내 문구가 없다. 자기검열 자체가 꼭 나쁘다고 할 건 아니지만 외부 필자들이 더욱 자율적이고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그런 문구를 넣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겠다. ‘한겨레만 봐서는 우리 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일부 지적이 있는데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외부 칼럼이 해줄 수도 있다.

사설은 ‘사건 정리’ 아닌 ‘입장 전달’
사실 확인·취재로 가독성 높여야
한겨레만평, 정치풍자 편향돼
여운 주는 그림도 선보였으면

■ 한겨레 만평, 정치 풍자 편향돼…우리 자신도 풍자 대상으로 삼아야

강성만 여론미디어에디터 외국 신문에선 외부 칼럼 필자 영입에서 주로 신문사 사주가 전적인 권한을 갖고 캐스팅한다. 편집국과 상의 없이 신문사가 지향하는 가치와 전혀 다른 성향의 칼럼니스트를 영입해 내부 논란이 일기도 한다. 한겨레는 편집인을 위원장으로 하고 편집국 간부들이 참여하는 필진위원회를 구성해 외부 필자 선정을 논의, 결정한다. 각 영역에서 현장기자들로부터 필자 추천을 받은 뒤 검증을 거쳐 선정한다. 국내 다른 신문들이 부러워하는 제도이다. 필진위원회가 큰 장점을 갖고 있으나, 필력도 있고 통찰력을 줄 수 있는 필자 중심으로 기자들이 추천하다 보니 대학교수 중심으로 필자가 구성되는 측면이 있다. ‘가르치려 드는 칼럼’이란 지적이 나오는 한 요인으로 보인다. 여러 시민사회영역을 대변하는 필자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참신한 필자를 모셨어도 유사한 주장과 이야기를 반복하면 식상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교체 시기가 빨라지고, 그러다 보니 다시 교수와 전문가 위주로 채워지는 경향도 있다. 칼럼들이 정치 및 시사 이슈 중심으로 쓰여져서 그런지 같은 지면에 테마가 중복되는 칼럼들이 나가는 일도 간혹 있고 그럴 때면 편집국 안에서도 조정을 시도해보려고 노력한다.

신인령 이제, 신문 2면에 싣고 있는 한컷짜리 만평 ‘한겨레 그림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오창익 한겨레 인터넷판이나 모바일판에서도 만평을 더 볼 수 있도록 편집해달라. 만평을 모아 연례행사처럼 매번 책으로 엮어내보자.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면, 한겨레가 스스로 잘한 일에 대해 너무 점잖아 보인다. ‘허재호 회장 하루 5억원 노역’은 정대하 광주 지역기자가 추적해 단독보도했는데 기자 이름을 챙겨보는 독자가 아니면 잘 모른다. 이 특종 말고도 여러 잘한 일이 많음에도 한겨레 지면에서 이를 확인해주는 데 인색하다. 자사 홍보라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독자에게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것으로 여기자.

3월18일치 2면과 4월8일치 35면
3월18일치 2면과 4월8일치 35면
후지이 다케시 한겨레 만평은 대체로 일반 정치·사회 기사들에 깔려 있는 내용을 도식화해 다시 보여주고 있다. 만화는 풍자가 핵심이다. ‘아, 이런 거구나’ 하는 충격을 줘야 하는데 기사를 읽으면 대개 알 수 있는 내용을 단지 재확인시켜주는 계몽주의적 만평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정치적 이슈가 대부분으로, 풍자 대상에 ‘우리(자신)’는 포함되지 않고 있다. ‘저들이 나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1970~80년대 권위주의 시절엔 권력자를 비꼬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80년대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자체가 또 우리들 자신이 풍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윤고은 만평이 정치 이슈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달간 한겨레 그림판에 종편 얘기가 몇번 나왔다. 종편은 얼굴 없는 실체인데 ‘종편’이라는 단어 하나로 처리해 무조건적인 비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디테일을 강화하고 캐리커처를 등장시켜 비꼬거나 대사로 접근했다면 공감이 더 넓어졌을 듯하다. 스토리를 좀더 그림에 담을 수 있는 네컷짜리 만평도 신설해보면 좋겠다.

장보형 만평이라 해서 꼭 당장의 현안이나 시사적인 것만 다룰 건 아니다. 때로는 한발 물러서서 ‘왜 나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느냐’고 스스로 되돌아보게 하거나 따뜻한 여운과 울림을 주는 그런 그림도 선보였으면 좋겠다.

신인령 예전엔 만평에서 말하려는 맥락이 금방 이해되지 않는 날도 있었는데 점점 명료해지고 있다. 만평은 시사 이슈에 집중해도 좋다고 본다. 다른 다양한 측면은 ‘김태권의 인간극장’, ‘이희재의 세상수첩’, ‘김영훈의 생각줍기’ 등 다른 그림 코너를 통해 내보내면 될 것이다.

정석구 편집인 마침 지금 편집국에서 칼럼 필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 말씀해주신 조언을 귀담아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의견이 고루 반영될 수 있도록 필진 구성에 노력하겠다. 외부 칼럼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글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는 가운데 편집국에서 (피드백 같은) 어느 정도의 관심 표명을 필자에게 하면서 함께 상의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 사설 역시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과 내용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사설을 담당하는) 논설위원실과 협의하겠다. 지금 한겨레는 달라진 안팎의 조건과 흐름 속에서 한겨레 가치를 신문사 내부 및 외부적으로 재정립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제2기 열린편집위원회 6차례 회의에서 지혜롭고 소중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신문 제작은 물론 한겨레의 가치 재정립에도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

정리 조계완 콘텐츠평가팀 심의위원

kye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