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곤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이 9일 “권력의 눈치만 보면서 보도의 독립성을 침해해왔다”며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의 자진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김 국장은 이와 함께 “보도의 독립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며 자신은 보직을 사퇴했다.
김 국장은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신념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온 길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케이비에스 사장은 언론중립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지닌 인사가 되어야 한다. 케이비에스 사장은 우리나라 민주정치가 5년 단임제를 기반으로 뿌리를 내렸듯이 단임제로 돼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국장은 기자회견 뒤 <한겨레>와 나눈 통화에서 “이번 세월호(보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보도의 독립성이 침해당했다”며 “(길 사장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매일 보도와 관련해 갈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묻는 질문에 “미뤄 짐작하라”며 답변을 피했다.
김 국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편성과 취재 보도 종사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한 방송법의 취지와 어긋난다. 방송법 4조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편성책임자를 선임하고, 방송편성책임자의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한국방송 사장은 여권에서 추천하는 이사들이 다수인 이사회에서 뽑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선임에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장이 일상적 보도에 개입한다면 보도의 공정성을 제대로 담보하기 힘들다는 게 언론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보도에 대한 전반적 책임은 사장이 지겠지만, 실제 여권에서 선임하는 사장은 일상적인 뉴스 보도 제작에서 한발짝 물러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회견에서 길 사장에 대한 사퇴 촉구를 한 뒤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보도의 독립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보도국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길 사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세월호 유족들에게 사과하면서 “보도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말했다. 김 국장의 길 사장 사퇴 촉구와 자신의 보직 사퇴 표명은 미처 예상되지 못했던 것으로, 한국방송 내부 인사들마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 국장의 폭로가 나온 뒤 새정치민주연합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의원들은 성명을 내어 길 사장의 즉각 사퇴와 보도본부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한국방송 홍보실 관계자는 김 국장의 발언에 대해 “개인 소신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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