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에서 수신료 인상 반대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한 회원 옆으로 경찰이 지나가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어느 지상파 방송사 기자의 눈물
“정부가 구조에 최선” 관급기사에
데스크는 매일 “유족 인터뷰하라
”40시간 취재하고 방에 와 눈물 왈칵
“차라리 자원봉사로 갔었다면…”
정부발표 받아쓰는 시스템속 무력감
또다른 기자 “이렇게 월급받아야 하나” 그는 “언론사 입사 준비할 때 선진국의 재난보도 사례를 공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보도는 그때 본 사례와는 완전히 달랐다”고 말했다. 속보 경쟁보다는 이런 기막힌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 배경과 대책에 더 매달렸어야 함에도 그는 유족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담요를 뒤집어쓴 이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어야 했다. 데스크의 지시에 어쩔 수 없었다. 아무나 붙잡고 취재하고 촬영했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면 취재 못하는 기자로 보일까 두려웠다. “취재도 안 하고 기사를 쓰냐?” 김 기자는 할 말이 없었다. 사고 해역은 접근조차 불가능하고, 해경 발표는 춤을 췄다. 종합편성채널(종편) 등장으로 방송사가 늘고 인터넷 매체들까지 수백명의 기자가 달라붙었으니 속보경쟁은 불이 붙었고, 온갖 해괴한 보도가 횡행했다. 데스크도 매일 “이런 보도가 있는데 확인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귀동냥으로 기사를 만들어 보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실종자 가족 면담 때, 화장실에 몰래 숨어서 취재하던 기자는 가족들한테 멱살이 잡힐 뻔했다. “차라리 자원봉사로 갔으면 더 편했을 것 같아요. 지금의 취재 및 보도 시스템에선 언제든 기레기가 될 수밖에 없어요.” 다른 지상파 방송사 중견기자 염수현(가명) 기자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그는 사건 초기 팽목항 현장에서 후배 기자들을 지휘하면서 ‘못 볼 꼴’을 많이 봤다. 기존의 취재 관행대로 하다 피해자 인권를 보호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처음 도착해서 그림(영상) 확보하는 데 기자들이 총동원됐다. 유족들 붙잡고 ‘학생들이 보내온 영상 없느냐’고 묻고 있었으니….” 그도 후배 기자들에게 “유족들은 너무 자극하지 말라”고 했지만, 다른 방송사 영상에 견줘 ‘자극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을 떨치진 못했다. 데스크는 매일 다른 방송사 보도와 자사 보도를 비교해 현장을 채근했다. “기계적인 취재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윗사람들은 다른 언론사가 독주하는 상황을 보고 있지 못한다. 의미 없는 속보와 자막 경쟁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염 기자한테 사건 당일 ‘전원 구조’ 오보는 큰 숙제가 됐다. 그는 “현장은 말 그대로 취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정부 발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정부 발표가 처음부터 잘못됐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 언론의 힘있는 출입처 보도자료 받아쓰기 관행의 폐해가 이런 대형 재난 현장에서 여지없이 노출된 것이다. 그리고 데스크가 박근혜 대통령을 변호하려는 의도 때문인지, 정부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아 ‘공정성’ 시비가 일었을 때 현장 기자들은 더 힘들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방송사 기자는 “회사가 엉뚱한 보도를 하면 현장에서 우리가 곧바로 유족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렇게 월급을 받아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팽목항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깊은 무력감을 호소했다. 현장 기자들은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라, 뭘 어떻게 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성’과 ‘피해자 배려’라는 재난 보도의 기본을 실천하기엔, 개개의 현장 기자는 너무 무력하다는 것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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