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노조 조합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주차장 입구에서 출근하고 있는 길환영 사장이 탄 차량을 막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KBS 노조, ‘길환영 사장 사퇴 10가지 이유’
한국방송 내부에서 길환영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는 가운데 전국언론노동조합 케이비에스(KBS) 본부가 ‘길환영 사장이 사퇴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케이비에스 노조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두번째 특보를 통해 길 사장이 사퇴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로 청와대와의 유착을 꼽았다. 노조는 “길 사장은 오로지 청와대만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었다. 김시곤 전 국장에게 (한국방송의 세월호 보도 논란을) ‘정면 돌파’하라고 주문하더니 한 시간 반 후에 국장에게 사표를 내라며, 안 그러면 자기 자신도 살아 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입맛에 맞게 보도에 사사건건 개입했던 점도 문제 삼았다. 노조 쪽은 “해경 비판을 막았다고도 하는데, 이건 구속 이전에 천벌을 받을 일이다. 뉴스 큐시트까지 매일 받아봤다고 하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콘텐츠본부장 시절 관제 특집 177편 제작을 제작하는 등 정권(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데 혈안이 됐고, 그가 사장이 된 뒤 한국방송의 저널리즘은 씨가 말랐다”는 점도 비판했다.
이밖에도 노조는 길 사장이 △뉴라이트에 부역, 역사왜곡에 앞장섰고 △수백억대 적자로 수준 이하의 경영 성적 △망사(亡事)가 된 인사(人事) △이번 노조 신임투표에서 97.3%라는 불신임을 받은 사실 등을 거론하며 길 사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는 끝으로 길 사장이 ‘나만 살면 돼’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KBS가 침몰하면 그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상상에 맡긴다. 그리고 우리는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고 길 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아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케이비에스(KBS) 본부가 밝힌 ‘길환영 사장이 사퇴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전문>
1. 오로지 청와대만 바라본다
충분히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는 오로지 청와대만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었다. 어버이날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들의 영정을 안고 KBS 앞에서 피울음을 토할 때 그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다음 날 김시곤 국장에게 ‘정면돌파’하라고 주문하더니 한 시간 반 후에 국장에게 사표를 내라며 안 그러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그의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이 이로서 명쾌하게 정리가 된다. 그는 청와대의 지시라면 어떠한 부조리와 굴욕도 감수하는 마리오네트였다.
2. 보도에 사사건건 개입
그는 보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그동안 누차 얘기해왔지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김시곤이 허위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면) 윤창중 사태를 톱에서 내리라고 지시했다. 해경 비판을 막았다고도 하는데, 이건 구속 이전에 천벌을 받을 일이다. 뉴스 큐시트까지 매일 받아봤다고 하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당의 모 의원이 TV에 나오는 날은 반드시 전화가 왔다는 주장도 눈에 띈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3. KBS를 여론조작 도구로 전락시켰다
그가 콘텐츠본부장으로 있을 때 무려 177편의 관제특집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2010년∼2011년 3월 기준) G20 특집의 경우 3,300분에 달했다. MB정권의 업적을 찬양하는데 혈안이 됐고, 2010년 지방선거 전에 천안함 특집에 올인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에서 정부비판은 찾아보기 힘들고 미담과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자는 새마을 논리만 넘쳐났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기를 쓰고 모금방송을 시도했다. 그는 공영방송 KBS를 여론조작의 도구로 만들어버렸다.
4. 뉴라이트에 부역, 역사왜곡에 앞장서다
부사장이던 2011년 길환영은 독립단체,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승만, 백선엽 방송을 밀어붙였다. 친일미화, 독재찬양의 만행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2012년에는 드라마 <강철왕>(지금 TV조선에서 방송되는) 편성을 시도하는가 하면 사장으로 취임한 뒤 첫 개편(2013년 4월)에서 유신정권을 찬양하는 <다큐극장> 편성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물의를 빚었던 외주제작사 사장 J씨와의 이상하고도 질긴 관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5. 저널리즘의 말살
그가 사장이 되고 나서 KBS의 저널리즘은 거의 씨가 말라버렸다. 지난해 개편 때 <열린토론> 등 1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이 대거 폐지되며 1라디오는 시사·뉴스채널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길환영의 야심작으로 만들어진 <파노라마>는 국장(김규효)이 아이템을 선정하는 해괴망칙한 시스템을 도입하며 세상살이와는 담쌓은 퇴물 프로그램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경우를 보면 보도본부는 진실을 은폐하며 대통령 홍보에 이용되고 있고, TV제작본부와 라디오센터는 ‘가만히’ 있기만 하는 꼴이다.
6. 경영 성적도 수준 이하
올해 적자가 400억을 넘는다느니 600억에 달한다느니 하는 얘기가 들린다. 구조적인 문제니 뭐니 하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지만 이는 명백히 경영실패다. 길환영이 지금까지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청와대 비위맞추기에만 관심 있고 적자 나면 예산 깎아 KBS 경쟁력 떨어뜨리고, 이것이 길환영 식 경영의 전부다. 그래놓고 광고를 왕창 내주겠다는 수신료 안을 내놓고(이 마저도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KBS가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 요즘 부쩍 많이 나온다.
7. 망사(亡事)가 된 인사(人事)
길환영은 지난해 6월 국,부장 자리를 대폭 늘려주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경영·인사 방식이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이병순, 김인규 체제를 옹립했던 구악 세력들이 대거 재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중에는 과거 심각하게 도덕적 문제를 드러냈던 인물들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영혼 없이 사장의 눈치만 보는 예스맨들을 기용하고 있다. 사장은 청와대 눈치만 보고, 간부들은 사장 눈치만 보고 있으니 회사가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8. 정권따라 변신, 오직 권력만
“이젠 정경유착이 아니라 권언유착을 한 번 프로그램화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1989년 길환영이 PD연합회의 방송 민주화 관련 좌담회에서 한 말이다. ‘권언유착’을 고발해야 한다고 일갈하던 그는 박권상, 정연주 사장 때 비서실장, 대전총국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정권이 바뀌어서도 본부장을 거쳐 사장까지 오르는 괴력을 발휘. 시대에 따라 오로지 권력에 충성하며 박쥐처럼 색깔을 바꿔 출세가도를 달린 그. 흔히 이런 유형으로 이화섭 전 본부장을 꼽지만 이화섭 역시 길환영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일 뿐이다.
9. 불신임 98% 역대 최고!
2011년 2월 본부장 신임투표 때 그는 88%라는 사상 최고의 불신임을 받았다. 최소한의 체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물러나야 정상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버텼고, 그해 부사장이 됐다. 이번 신임투표에서는 97.3%의 조합원들이 그에게 불신임표를 던졌다. 역대 사장 중에 이렇게까지 구성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는 사람은 없었다. 정권을 향한 귀여운 몸짓만이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다.
10. 나만 살면 돼!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얼굴을 표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과거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고, 이번에 청와대에서 ‘오더’가 오니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보도국장에게 눈물을 흘리며 퇴사를 간청한 것이 극명한 예다. 그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만약 KBS호가 침몰해버린다면 그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상상에 맡긴다. 그리고 우리는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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