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일 사이 정반대 경기 분석 기사 내놔
세월호 유족들의 특별법 재협상 요구를 공격하는 여권과 보수 언론의 근거 가운데 하나가 ‘경기 침체론’이다. 세월호 유족과 야권의 무리한 요구로 정국 혼란이 이어지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8월4일치 기획기사 ‘세월호 딛고 부강한 나라로’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이 훌쩍 지났지만 내수시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여전히 지역축제나 행사를 꺼리고, 기업들도 선뜻 대규모 대외 행사 재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들마저 씀씀이를 줄이면서 내수 의존도가 높은 영세상인들과 골목 상권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생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서민들을 위해서도 이젠 세월호를 딛고 일어서야 할 때”라는 전문가들의 ‘훈수’를 전했다.
이랬던 <조선>이 25일치 1면에 ‘돌연’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실종됐던 경기, 추석 선물세트 들고 돌아오다’는 기사에서 백화점 추석 선물세트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모두 두 자릿수로 늘어나는 등 소비심리가 대폭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대형마트 관계자의 말을 따서 “최근 추석 선물세트 판매는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매우 고무적이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 지갑을 열기 시작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7월 한달 동안 주택 거래가 94% 늘고 서울 아파트값이 6주째 오르는 등 주택시장도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용지표도 제조업 취업자 증가 폭이 3년 이래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개선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추석을 앞둔 유통업체들의 매출 결과를 보면 경기가 회복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한 민간 경제연구소 쪽의 분석을 들어 경기 회복을 기정사실화했다.
<조선일보>는 불과 20일 사이에 정반대의 경기 분석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그동안 경기 흐름에 영향을 줄 만한 일이 있었던 걸까.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대립은 단식 농성을 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병원행을 계기로 더욱 격화되고 있다. 광화문의 동조 단식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의 수는 점점 늘고 있고, 종교계와 시민사회는 여야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의 논리대로라면 경기 회복은커녕 오히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혼란이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경기 회복 조짐을 보이는 이유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기 활성화 정책을 들었다. 최경환 경제팀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과 20일 전까지만해도 존재감조차 없던 정책이 갑작스레 효과를 낸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한성안 영산대 교수는 <한겨레> 25일치 칼럼에서 “세월호 이전부터 소비는 이미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경기동행지수 하락도 세월호 사건 두 달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그러니 경기 침체에 세월호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술, 스포츠, 여가 관련 서비스 분야의 올 3월 생산지수는 116.0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후 5월과 6월에 각각 122.5와 121.8로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세월호가 서비스산업을 위축시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의 25일치 기사는 한 교수의 칼럼이 더 사실에 부합함을 뒷받침한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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