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 한학수 MBC PD가 10월3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두번째 인사드립니다. 이번엔 <문화방송>(MBC) 소식을 나누려고요. ‘엠×신(문화방송을 낮잡아 부르는 속어) 얘기 뻔하다’고 넘어가지 말아주세요. 문화방송엔 여전히 ‘만나면 좋은 친구’를 꿈꾸며, 진실 추구를 통해 권력이 아닌 국민들에게 충성하려는 방송인들이 많이 있거든요. 싸잡아 외면할 순 없어요.
그들 가운데서도,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피디들에게 최근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10월27일 조직개편 때, ‘교양제작국’(교양국)이 조직도에서 자취를 감춘 겁니다. 30년 전 처음 만들어진 문화방송 교양국은 <인간시대>, <피디수첩>, <경찰청 사람들> 같은 히트작을 통해, 티브이가 ‘바보상자’에서 벗어나는 데 일조했죠. ‘다큐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문화방송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2000년대엔 <아마존의 눈물> 같은 각종 ‘눈물’ 시리즈로 국내외에서 호평 받았어요.
사쪽은 교양국을 없앤 이유를, “원래 예능인 오락에서 교양이 분화했다. 이번 예능과 교양의 재결합은 시청 트렌드를 반영해 본래 기능을 강화한 것”이라고 했는데요, 교양국이 없던 3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는 건지 지금 시청자들이 교양 프로엔 관심이 없다는 건지 애매하죠. 6일 백종문 문화방송 미래전략본부장이 방송문화진흥회에서 “(교양국 프로는) 높은 제작비에 견줘 시청률은 낮다”고 말한 게 더 솔직하게 들립니다.
교양국이 사라졌으니 시사·교양 프로들이 모두 폐지되냐고요? <불만제로>처럼 사라진 프로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교양’이란 이름이 붙은 조직이 사라졌을 뿐, 그 역할은 예능국·콘텐츠제작국 등 다른 곳에서 맡는다”는 게 사쪽 설명입니다. 앞으로 선보일 프로그램들의 질은 시청자의 판단 몫이기도 하네요.
교양국 소속 피디 30여명 가운데 다수는 시사제작국(5명), 콘텐츠제작국(12명), 예능국(7명)에 발령이 났으나, 일부는 제작 현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인사권을 쥔 자들을 따르는 게 직장인의 숙명이고, 피디도 직장인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인사 결과야 어찌 되든 웬만큼 연차가 차면 발표 전에 부서장과 당사자가 ‘밀당’을 하잖아요. 조직도 개인도 ‘윈윈’하는 과정일 수 있지요. 하지만 이번엔 당사자뿐 아니라 부서장들도 몰랐대요. 사쪽은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3차례 인사협의회를 열어 심도있게 논의했다”는데, ‘윗분’들이 평소와 달리 ‘기밀’을 유지한 요번 인사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쪽은 “신성장 동력 발굴과 매체 융복합 시대 역량 강화를 위해 직종 구분 없이 적재적소에 인력을 재배치했다”고 했어요. 예컨대 황우석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의 모델인 한학수 피디는 새로 생긴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났습니다. 사쪽은 이 센터에 대해 “올해 처음 도입한 독립채산 방식의 특임사업국에서 수행할 사업을 발굴하는 막중한 책무를 맡고 있다. 모바일 게임 개발과 공연 등 문화 사업에서도 새 가능성을 찾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막중한 책무’를 짊어진 부서원은, 한창 다큐를 만드는 중에 갑자기 발령을 받았습니다. 1997년 입사 이래 줄곧 프로그램 제작을 해온, 탐사보도 능력자에게 수익 사업 발굴을 맡기는 걸 ‘역량 극대화’ 시도로 볼 수 있을까요.
아예 직무를 못 받은 이들도 있습니다. 내년도 주요 기획 다큐를 준비하던 이우환 피디, <불만제로> ‘자동차 보험의 두 얼굴’ 편으로 최근 상을 받은 이춘근 피디는 다른 직원 10명과 함께 2주짜리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실적·역량이 낮아, 업무 활동을 개선하고 역량을 증진시키기 위한”, ‘교육 발령’이래요. 원래 농군학교에 입소해 효 사상, 식탁교육 등을 받는 일정이 있었는데, 회사 안팎의 강한 반발로 취소됐고요. 직무와 연관된 온라인 강좌를 직접 골라 듣는 걸로 바뀌었대요. 평소엔 유능한 문화방송 인재개발부에서 이런 ‘오락가락’ 교육 일정을 내놓는 걸 보면 무척 급히 만든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신천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상암중학교에 입학했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는 ‘웃픈’ 얘기가 나옵니다. 2012년 문화방송이 파업에 참여한 기자·피디 등 100여명을 서울 신천역 근처 엠비시아카데미로 보내 브런치 만들기, 클래식 강좌 등을 교육하자 ‘신천교육대’란 용어가 생긴 걸 빗댄 말입니다. 이번 교육은 상암 사옥에서 합니다. 사쪽은 ‘제2의 신천교육대’란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헷갈립니다. 정말 평생교육 시대에 걸맞은 회사의 재교육 지원일까요? 오는 14일, 이들의 인사 배치 결과를 보면 성격이 더 뚜렷해질 것입니다.
김효실 여론미디어팀 기자 trans@hani.co.kr
김효실 여론미디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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