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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L 홍수, 눈길 끄나요 눈살 찌푸리게 하나요

등록 2014-11-23 20:30수정 2014-11-24 08:49

간접광고 합법화 5년 명암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한국방송)의 프랜차이즈 카페. 방송 화면 갈무리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한국방송)의 프랜차이즈 카페. 방송 화면 갈무리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서 관심을 모았던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한국방송)는 방송이 시작되자 ‘피피엘(PPL) 블록버스터’란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그랜드피아노를 놓고도 넓디넓은 방에서부터 줄거리와 동떨어진 듯한 상품 소개 에피소드까지. 시청자 게시판에 “피피엘이 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일본인 원작 만화가는 트위터에 “한국판, 방 넓다!”고 썼다.

지상파 3사 간접광고 매출액
2010년 29억→2013년 336억 ‘껑충’‘
구매 노골적 유인’ 제재 늘어
“시청권 침해” 불만도 커져

■ 간접광고 매출, 5년 새 10배로

간접광고는 2009년 9월 방송법 개정으로 합법이 됐다. 오락·교양 프로그램이 적용 대상이다. 지상파 3사의 간접광고 매출액은 2010년 29억8000만원에서 2013년 336억3000만원으로, 케이블방송(종편 제외)은 같은 기간 22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늘었다. 각각 10배 이상 급증했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간접광고 관련 제재 건수도, 지상파 3사의 경우 2010년 14건에서 2013년 62건으로 뛰었다. 법규상 간접광고는 출연자가 해당 상품의 특·장점을 대사로 직접 언급하며 구매를 노골적으로 권유하면 안 된다. 상품 노출 시간(프로그램 시간의 5% 이내), 화면 크기(25% 이내) 등도 정해져 있다. 이를테면 지난 3월 <잘 키운 딸 하나>(에스비에스)는 극중 인물이 카푸치노 거품이 묻은 자신의 입술을 간접광고주의 타월 상품으로 닦으면서 “살짝 대기만 해도 거품 바로 흡수”라고 하는 등 상품의 장점을 길게 얘기하는 바람에 제재를 받았다. 간접광고 상품에 대해선 “맛있다”, “예쁘다”, “사진 잘 나왔네” 등 일반적인 짧은 언급만 가능하다.

시청자들의 불만도 함께 커졌다. 시장조사업체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올해 전국 성인 9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보면, ‘피피엘이 시청권을 침해한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36.3%)가 동의하지 않은 응답자(18.7%)의 2배였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과도한 피피엘은 시청권 훼손뿐 아니라,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늘어나는 등 시청자의 드라마 장르 선택권 자체를 축소시킨다. 교양 프로에 나오는 상품도 간접광고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드라마 <유령>(에스비에스)의 최신형 카메라. 방송 화면 갈무리
드라마 <유령>(에스비에스)의 최신형 카메라. 방송 화면 갈무리
■ 협찬을 활용한 ‘편법’… 외주사, “협찬은 생명줄”

외주제작사 “협찬이 생명줄”
간접광고와 함께 묶어 계약하기도
“광고주들이 콘티까지 짜 와”
결국 ‘촌스러운 장면 양산’ 이어져

간접광고 시장이 급성장했다고 하지만, 이는 합법화 당시 예상 규모(1600억~1900억)의 절반도 안 된다. ‘협찬’이라는 수익 창구가 편법적 광고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협찬은 프로그램 제작에 상품·장소 등을 후원하는데, 협찬주는 간접광고에 준하는 광고 효과를 기대한다. 또 제작사 쪽에선 직거래가 가능한 협찬을 선호한다. 간접광고는 방송광고의 한 유형으로서 지상파·종편의 경우 미디어렙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최고다 이순신>(한국방송)은 협찬주의 차량을 지나치게 노출하고, 다른 협찬주(제과업체)의 실제 로고와 유사한 모양새의 로고를 만들어 여러 번 노출하는 바람에 법정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협찬은 극중 상표 노출이 금지돼 있다.

협찬 쪽을 늘리고자 간접광고와 협찬을 묶어 계약하거나 뒤늦게 기존 협찬 계약에 간접광고 계약을 추가해 ‘면피’를 하는 관행도 생겼다. 지난 9월 국감에서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한국방송 드라마 <빅>의 광고 계약서를 보면, 계약금 총 1억3000만원(간접광고 7000만원, 협찬 6000만원)에 ‘간접광고로 상품 노출 5회 + 협찬에 따른 노출 5회’가 명시돼 있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편법’ 피피엘 계약서가 공개된 드라마 <빅>(한국방송)에서는 광고회사 화장품이 ‘대놓고’ 노출됐다.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편법’ 피피엘 계약서가 공개된 드라마 <빅>(한국방송)에서는 광고회사 화장품이 ‘대놓고’ 노출됐다. 방송 화면 갈무리
<빅>은 주연배우가 결혼반지를 언급하며 커다란 화장품을 손가락에 끼우는 등 노골적인 광고 장면들로 비판을 받았다.

외주제작사 처지에선 협찬이 프로그램 제작을 성사시키는 주요 자금줄이다. 미니시리즈 제작비는 보통 60억~70억원인데, 외주사는 제작비의 절반 정도를 부담하고도 판권 등 각종 권리는 모두 지상파가 가져가는 탓에 협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능·교양프로는 아예 제작비 전액을 외주사가 협찬으로 채우도록 요구받는 경우도 있다. 한 외주사 관계자는 “협찬은 생명줄이다. 끊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간접광고는 외주사가 10원을 유치하면 미디어렙 수수료, 방송발전기금으로 2원이 나가고 4원은 지상파가 가져가 4원만 남는다. 협찬은 직거래가 가능해 외주사가 10원을 모두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상속자들>(에스비에스)의 아웃도어 상품이 등장하는 장면. 방송 화면 갈무리
드라마 <상속자들>(에스비에스)의 아웃도어 상품이 등장하는 장면. 방송 화면 갈무리
드라마 제작자들 가운데 극의 완성도를 일부러 낮추려는 사람은 없다. 스타 배우 출연료 급등 등으로 제작비가 치솟는 상황에서 광고주·협찬주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작사와 시청자 모두 불만족스러운 ‘촌스러운’ 피피엘 장면이 양산되는 이유다. 한 예능프로그램 관계자는 “광고주들이 어떤 장면에 어떻게 넣어달라고 콘티까지 짜 오거나, 녹화장에서 해당 장면을 본 뒤 계약을 접겠다고 해서 장면을 뺐던 적도 있다”고 했다.

또 대기업들은 지상파 3사의 황금시간대 간접광고를 입도선매하거나, 메인 스폰서로 십수억원을 투자해 드라마 속 직업·장소·상품 등에 모두 개입한다. 반면, 영세·중소형 광고주들은 상품 노출 1회당 1500만~3000만원에 달하는 간접광고 대신 가격협상이 가능한 협찬에 참여하는 데 그치고 있다.

■ 제작자들 노력과 정책 정비 필요

잘 만들면 ‘애교’로 받아들여질 수도
사실감 살리려는 제작자 노력 필요
제작환경 개선·제도 정비 시급
‘콘텐츠 질 담보’ 논의 뒤따라야

비정규직 사원의 고달픈 직장생활을 그린 <미생>(티브이엔)에도 숙취해소음료와 복사용지 등 피피엘은 많다. 오 과장이 장그래 등 부하직원들에게 커피를 타주며 “황금비율”이라고 특정 커피회사의 광고 문구를 되뇌는 ‘아슬아슬’한 장면도 있었지만, 제작자의 노력으로 피피엘이 작품에 잘 녹아들어가 사실감을 살렸다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잘 만들면 시청자들도 ‘애교’로 봐줄 수 있다는 얘기다. 피피엘이 시청권을 침해한다는 응답자가 많았던 마크로밀엠브레인 설문조사에서도 ‘피피엘은 수익창출을 위한 자연스러운 마케팅 방법’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과반(58.8%)이었다.

드라마 <아이언맨>(한국방송)의 손목시계형 휴대전화. 방송 화면 갈무리
드라마 <아이언맨>(한국방송)의 손목시계형 휴대전화. 방송 화면 갈무리
전문가들은 과도한 피피엘을 줄이기 위해선 “제작환경 개선이 필수”라면서도 “간접광고·협찬을 정확히 분리시킬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별에서 온 그대>(에스비에스)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자 중국 시장을 노리는 국내외 기업들의 간접광고·협찬이 몰렸는데, 지나친 광고는 드라마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콘텐츠 질과 공공성을 함께 담보하려는 장기적·사회적 정책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 같은 정부기관이 시청권·공공성을 중심에 두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 주장을 잘 조율해야 한다. 지금은 근시안적 정책으로 땜질식 처방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PPL(Product PLacement)

보통 간접광고와 동의어로 쓰인다. 간접광고는 일정한 시간, 크기 등의 제한 아래 상품을 프로그램에 노출시키는 것이며, 합법적인 광고의 한 종류이므로 상표 노출도 가능하다. 반면, ‘편법’ 피피엘의 수단이 되는 협찬은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물품·장소·경비·인력 등을 제공받는 것으로, 상표 노출이 금지되며 프로그램이 끝난 뒤 자막으로만 협찬주를 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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