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정정보도 신청과 손해배상 청구를 한 기사.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재판장 장준현)는 대통령비서실과 김 실장, 박준우 전 정무수석, 구은수 전 사회안전비서관(현 서울지방경찰청장), 이명준 행정관 등 4명이 한겨레와 한겨레 편집국장을 상대로 낸 정정보도 및 8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24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실장 등 원고들은 기사 내용과 연관성이 있다고 명백히 인정되기 어려워 피해자로 특정할 수 없다”며, 김 실장 등이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어 “수정 전 기사에서 언급한 ‘누리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를 비판했다’는 등의 표현에 비춰보면 보도의 직접 대상은 대통령비서실이 아니라 명백히 박 대통령”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기사의 끝 부분에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통령과 권양의 만남은 연출된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청와대) 반론도 실었다”고 했다.
앞서 <인터넷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이튿날인 4월17일 진도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가족을 잃고 홀로 구조된 권아무개(5)양을 위로하는 장면을 두고 ‘쇼크 상태였던 아이가 왜 박 대통령 현장 방문에?’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정말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면 저 사람 많은 곳에 끌고 나와 수많은 카메라 번쩍이며 그 앞에서 손잡아주며 위로하지 않았겠지” 등의 트위터 반응을 인용했다. 김 실장 등은 이 기사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지난 5월 소송을 냈다.
청와대는 소송과 동시에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이에 언론중재위는 <인터넷한겨레>에 반론보도문을 싣고 청와대는 소송을 취하할 것을 권고했고, 한겨레 쪽과 청와대를 대리해 나온 법무법인 충정 쪽은 이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김 실장 등 원고 쪽이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중재는 최종 결렬됐다. 김 실장 등의 소송 제기가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보다 더 이상의 비판 보도를 막기 위한 ‘언론 재갈 물리기’ 차원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판결로 청와대의 무리한 언론 소송에 일부 제동이 걸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집계를 보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소속 공무원들은 출범 2년 동안 10여건의 언론사 상대 소송을 진행해왔다. 노무현 정부 등 지난 정부에서도 언론사 상대 소송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엔 비판 보도를 봉쇄하기 위한 차원의 성격이 더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 소송을 보면 지난 4월 세월호 참사와 최근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보도 등 정권의 위기 국면에서 터져나온 보도들에 집중되어 있다. 소송을 정치적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가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대통령 비서들이 언론중재위 권고를 묵살하고 한겨레를 상대로 무리하게 소송을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청와대가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언론을 겁박해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국가에서 정부는 권력에 대한 의혹 제기를 감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직자에 대한 의혹 제기 보도는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청와대의 언론 상대 소송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판결 및 항소 여부와 관련해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이정국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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