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의 미디어 항해
‘온데만데’와 ‘온데간데’라고 써놓고 보니 우리말처럼 보이지 않는다. 온데만데는 여기저기, 곳곳에라는 뜻을 가진 경상도 사투리다. 온데간데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찾을 수가 없다고 할 때 ‘온데간데없이’라고 한다. 새해 첫 미디어 항해를 온데만데와 온데간데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렇다. 콘텐츠는 온데만데 널렸는데 시청자는 온데간데없다. 뉴스는 온데만데서 쏟아져 나오는데 독자는 온데간데없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그러했지만, 날이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 같다.
지난겨울 <기자협회보>에 ‘진격의 온데만데와 코드커팅’(2013년 12월18일치)이라는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캐나다에 사시는 부모님이 한국의 방송프로그램을 언제든지 볼 수 있게 현지의 유료방송서비스를 해지하고(코드커팅), 동영상 사이트에 가입해 컴퓨터와 텔레비전 수상기를 연결해 볼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사이트 이름이 온디맨드(On Demand)로 시작한다고 했다. 온데만데는 그 서비스 명칭을 영어표기대로 읽은 표현으로, 온데만데 덕분에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방영 중인 연속극, 종영된 드라마, 뉴스와 시사다큐까지 찾아보게 되었다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결국 ‘진격의 온데만데’는 코드커팅의 선두주자로 전세계 동영상 서비스 시장으로 확장중인 넷플릭스(사진) 이야기였다.
뉴스와 정보,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기 위해 조간신문을 펼치던 시대, 뉴스를 보기 위해 저녁 9시 정각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신문 독자들, 본방사수 시청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있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옷장이나 화장대와 같은 가구에,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에, 심지어 문짝에까지 패널을 만들어 붙이면 뉴스를 비롯해 날씨, 요리, 건강정보 등을 볼 수 있는 시대다. 내 손 안에 스마트폰 하나로 온갖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줄 알았던 수용자들은 온데만데 흩어져 있었다. ‘대중’이라는 말로 수용자를 내세울 수 있는 매체도, 시장도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사람들은 9천만달러, 거의 1천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들어간 10부작 미드(미국드라마) <마르코 폴로>를 넷플릭스에서 본다. 그 드라마는 할리우드 영화사나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가 제작한 작품이 아니다. 넷플릭스가 만들고 넷플릭스가 유통시킨다. 사람들은 한 달에 8.99달러만 내면 인터넷과 연결이 가능한 모든 기기로 <마르코 폴로>를 비롯하여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진격의 거인이 되어버린 넷플릭스와 경쟁해야 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은 유튜브와 계약을 한다. 그래야만 흩어진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지상파 방송3사와 씨제이이앤엠(CJ E&M), 종편 4사 등은 유튜브 서비스를 중단하고 대신 광고영업권과 편성권을 갖는 조건으로 네이버 티브이캐스트와 계약을 했다. 온데만데 흩어진 국내 시청자도 잡고 서비스의 주도권도 되찾기 위해서다. 해외에서는 물론 유튜브를 통해 계속 서비스를 한다.
앞으로는 미디어기업들이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유통시키기 위해 유튜브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가 아니라 가구회사나 가전사, 건설회사와 계약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뉴스와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며, 새벽같이 배달되는 잉크냄새 가시지 않은 신문을 펼칠 독자는 더 빠르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미디어기업들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온데만데 흩어져 있는 고객들을 만날 수 있는 접점들을 찾고 고객들을 찾아가는 일이다.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센터장
사진 넷플릭스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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