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그의 언론에 대한 ‘폭언’은 한국의 정치와 언론에 큰 충격을 주었다. 권력과 언론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백일 하에 폭로했다는 점에서다. 신문들은 뒤늦게 사설을 통해 “이런 사람이 총리가 되면 큰일 날 일”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의 발언은 이완구 후보자 한 사람의 ‘비뚤어진 언론관’이나 ‘언론외압 발언’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후보자가 기자 4명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나온 문제의 발언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녹음파일까지 가지고 있으면서도 네 기자가 소속된 신문들이 이를 보도하지 않았던 것은 이 정도의 ‘충격적인’ 폭언에 대해 해당 기자들이나 언론사 편집 책임자들이 별로 놀라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정황은, 다소 왜곡이 있긴 하겠지만, 점심 자리에 동석했던 총리실 직원의 주장에서도 나온다. “자리에 함께한 기자들에게서도 불쾌한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기자들이 놀라지 않았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폭언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이와 유사한 말들을 듣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를 기사화하지 않고 묵살한 한 편집자의 설명은 기자와 편집 간부들의 인식 수준을 드러낸다. “굉장히 사적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라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 스스로도 기사가 안 된다고 판단했고, 보고받은 국회 반장 역시 똑같이 판단해 우리를 비롯한 4개 신문 모두 기사를 안 쓴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점심 자리에 기자가 동석하지 않았던 <한국방송>(KBS)이 문제의 발언을 보도하고, 결국 야당 의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가 커지자 이들 4개 신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설로 이 후보를 비판했다. 기삿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신문들이 며칠 뒤에는 사설로 비판할 만큼 큰 문제로 보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편집자와 기자들의 ‘정치적 감각’이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보도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판단은 즉흥적이냐, 계획된 발언이냐가 아니라, 발언의 내용이 어떠냐에 달려 있다. 이 후보자의 폭언이 자주 들었거나, 다른 권력자들의 입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어 새롭지 않게 느껴졌다면, 기자들의 정치적 감각이 아주 무뎌져 버린 것이다. 점심을 함께 먹은 4명의 기자 중 새누리당을 출입하는 3명 쪽이 아니라, 야당을 출입하는 1명의 기자가 그의 발언을 어떤 식으로든 문제 삼았다는 것은 그만큼 감각이 덜 무뎌졌다고, 좀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때가 덜 묻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야당 의원에게 녹음파일을 넘겨, ‘기자 윤리’가 어떠니 하는 빗나간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만일 한 야당 출입 기자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문제의 발언은 어둠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이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등 사소한 흠은 있지만, 능력 있는 총리’라는 허울을 쓰고 당당히 정부청사로 들어가 간간이 ‘대선주자’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비겁함이나 안이함, 또는 판단착오가 권력의 의도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권력의 추악한 맨얼굴이 어떻게 가려지고 있는지를 기자들이, 특히 정치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성찰해야 할 때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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