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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미디어 전망대] 독립적이지 못한 독립 피디 / 강형철

등록 2015-12-14 20:27

학기가 끝나가는 대학에는 신입생 선발 업무가 한창이다. 이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 졸업예정자들의 취업 현황이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필자도 학생들이 알려오는 취업 ‘승전보’에 기뻐하기도 하고, 전해 듣는 최종면접 탈락 소식에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지낸다. 지난 학기 내내 면접 등 입사시험 때문에 수업에 못 들어온다며 양해를 구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정작 합격 소식은 드물다.

우리 학생들은 주로 서울에 있는 방송사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등 지상파 방송사가 1순위이고, 씨제이 엔터테인먼트(CJ E&M)나 와이티엔(YTN)과 같은 경쟁력 있는 케이블티브이 채널들이 2순위다. 그다음이 종합편성채널들인데 그 가운데서도 제이티비시(JTBC)를 더 선호한다. 마지막 순위가 지역 지상파 방송사와 군소 케이블티브이 채널들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원하는 이런 ‘좋은’ 방송사들은 경력만 채용할 뿐이거나 신입사원을 뽑아도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좁은 문 통과에 실패한 학생들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독립프로덕션이거나 이른바 취업 재수생, 삼수생, 나아가 ‘장수생’(?)의 길이다. 큰 방송사들이 “경력이 있어야 경력을 주겠다”고 하니 독립프로덕션에 일단 들어가 일을 시작해보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학생들이 작은 곳이라도 들어가면 당장의 학과 취업률 지표도 올라간다. 학생들의 ‘취업’보다는 ‘취업률’에 관심이 있는 학교 당국이 전공별 취업률 현황 비교표를 통보하며 교수들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년 고용률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마치 대학 탓인 듯 정부가 보조금 지원에 취업률을 비중 있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독립프로덕션 취업을 꺼리고 선생의 처지에서도 그리 강권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독립프로덕션에 가느니 차라리 일반 기업으로 눈을 돌린다. 이곳의 노동 조건이 어떠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이 발간한 ‘종편 및 방송사 독립제작 관행 실태조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보고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발주한 종편 피디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한 외주제작 독립프로덕션 피디는 안면골절로 엉망이 된 상태로 사무실에 남아 수정편집을 해야 했다고 한다. 외주제작 피디가 무릎을 꿇고 지상파 방송사 메인작가의 하이힐에 소주를 받아 마셨다며 울먹이며 증언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이런 극단적 사례들은 독립프로덕션에서 일하는 것이 결코 독립적이지 못할 것임을 잘 알려준다. 우수한 창의 인력이 풀뿌리 제작 현장으로 가지 않으려는 현상은 한국 방송영상 콘텐츠 분야의 암울한 미래를 조명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창작자에게 저작권을 귀속하는 것과 표준 계약서를 강제하는 것 등 여러 해결 방안들이 이미 제안된 바 있다. 근본적으로 독립 피디들에게 정당한 급여와 노동권이 보장되도록 우선 조치해야 한다. 각종 방송영상 관련 기금을 제작비 지원이나 인력 양성보다는 고용 지원에 투입하는 것, 4대 보험 등 기본 노동권 보장을 의무화하는 것, 발주회사와 외주제작사 인력이 함께 참여하는 윤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 등 관련 당국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정당한 급여와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인력은 이런 것들을 보장받은 인력에게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방송사 인력 간에 골품제처럼 신분적 질서가 존재하는 나라에 창의 콘텐츠가 발전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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