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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문 녹취’ 보도 못 믿겠다는 방문진 이사님들께

등록 2016-02-05 16:29

[현장에서]

지난 4일 열린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는 이른바 ‘백종문 녹취’ 파문에 대해 <문화방송>(MBC)의 관리감독기구인 방문진의 태도를 보여줄 것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앞서 백종문 문화방송 미래전략본부장이 외부 인터넷 매체와 만난 자리에서 “최승호·박성제는 증거 없이 해고했다”, “피디들은 프로그램 다 배제시켰다”, “프로그램 패널을 바꾸도록 지시했다” 등의 발언을 했던 사실이 밝혀져 파장이 인 바 있다. 공영방송 경영진의 핵심 인사가 직원을 “증거 없이 해고”했다거나 “프로그램에 개입했다”고 인정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문화방송은 2012년 구성원들이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바 있는데, 파업 뒤 경영진이 노조원들을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등 조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이완기·유기철·최강욱 방문진 이사 3명은 ‘백종문 녹취’를 안건으로 제출하며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방문진이 진상규명 등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9명의 이사진 가운데 6명이나 되는, 이른바 ‘여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은 시종일관 이 문제를 다루기를 꺼리는 듯한 태도를 내보였다. 고영주 이사장은 지난달 26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는 제안을 거부하며 “예정된 워크숍이 더 시급하다”고 말한 바 있다. 여권 추천 이사들만 참석한 워크숍에서는 부산 키자니아 견학, 부산엠비시 업무보고, 신사옥 예정 부지 견학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이사회에서 이인철 이사는 “실명 거론 등으로 명예훼손이 우려되니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자”고 제안하고, “공개 여부를 표결로 결정하자”며 다수의 힘으로 이를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날 방문진 사무처는 아무 이유 없이 이사회 중계를 두어차례 끊어, 방청객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김원배 이사는 “사실 저는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 녹취록을 못 봤고 내용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관련 보도가 나간 지 이미 보름이나 지났고, 이미 일주일 전부터 정기 이사회 안건으로도 제출됐던 사안이지만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 이사는 “(백 본부장 발언 녹음이) 만약 공식적인 얘기면 괜찮지만, 식사하면서 농담 삼아서 한 얘기면 (이사회 공개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날 이사회의 압권은, 일부 이사들이 ‘백종문 녹취’ 관련 보도의 진실성에 대해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의문을 쏟아내는 대목이었다. 이완기 이사가 백종문 본부장이 만났던 ㅍ 매체를 거론하며 ‘극우 인터넷 매체’라고 하자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반발했던 일부 이사들은, “편향을 가진 매체들이 (백종문 녹취를) 보도했다”, “(백종문 녹취가) 내용적으로 편집됐다”, “특정 정치권에서 발표했다”, “제보자에게 범죄적인 의도가 있었다” 등 명예훼손으로 풀이될 여지가 큰 발언들을 거리낌없이 쏟아냈다.

김광동 이사는 “(백종문 녹취가) 중립된 쪽에서 보도되지 않았다. 약간의 편향 내지는 의도를 가진 쪽에서 보도가 되었고 (발언 내용이) 편집된 성격 있다”며 <한겨레>를 비롯해 이 사안을 보도한 매체들을 믿을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특정 정치권에서 발표한 것이고 보도한 일부 매체들도 편향을 가진 매체들이었다”며 ‘정치권 사주’를 암시하는 억측까지 내놨다. “100억원을 받으려 접근했다고 말한 걸 보면 의도적 범죄행위, 의도성이 있다”며 제보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려는 듯한 말까지 했다.

유의선 이사는 “(백종문 녹취가) 조직적인 부정 행위를 자백한 건지, 술 마시고 호기를 부린 건지 정확하지 않다. 녹취록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없는 이상 논의할 때 잘못된 얘기를 할 위험성이 있다”며, ‘사적 대화’라고 풀이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인철 이사는 “자료를 갖고 얘기를 해야지, 기사는 신빙성이 없다”며 관련 보도의 진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했다. 여권 추천 이사들의 이 같은 주장들은 결국 ‘녹취록 전문을 검토하기 전까지는 이사회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날 일부 이사들이 ‘백종문 녹취’에 대해 내비친 시각은 ‘사적 대화’, ‘임의 편집’, ‘보도 매체의 편향성’ 등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이는 사실상 문화방송 사쪽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관련 보도가 나간 뒤인 26일, 문화방송은 ‘알려드립니다’ 제목의 자료를 통해 “최근 일부 매체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녹음된 대화 내용을 임의로 편집해 증거도 없이 해고시켰다는 내용 등으로 허위 보도를 하고 있다”는 반론을 내놨다. 29일에는 또다시 ‘알려드립니다’를 통해 “특정 정치세력과 일부 좌파 매체들이 한 몸이 되어 사적 대화를 나눈 것을 폭로하여 마치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 근거가 실제 대화 녹음이라 ‘그런 발언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 없으니, ‘사적 대화’, ‘임의 편집’, ‘좌파 매체’ 등을 반론의 주된 내용으로 내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한겨레>는 취재 과정에서 백 본부장에게 발언의 배경 등에 대해 여러차례 해명을 요청했으나, 당시 백 본부장은 취재 요청에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과거 김재철 전 사장 시절, 방문진 이사회는 업무상 배임 등 그에 대해 제기된 온갖 의혹과 비판들을 줄곧 외면하다가 결국 2013년 3월에야 그를 해임한 바 있다. 김 전 사장 취임 이후 생긴 문화방송 내부의 상처가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져 수습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른 뒤였다. 방문진 여권 추천 이사들이 김 전 사장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동안 “누군가의 지시에 따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잇따랐고, 결국 2012년 11월 양문석 당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하금렬 대통령 실장과 김무성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이 한 여권 추천 이사에게 ‘김재철을 지키라’는 내용의 전화를 걸었다”고 폭로해 논란을 일으켰다.

문화방송을 엄정하게 관리·감독해야 하는 방문진 이사들이, 합리적인 언론 보도의 진실성을 문제 삼으면서까지 문화방송 사쪽을 편들어주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회사 쪽의 궁색한 반론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까지 이사회 논의를 뒤로 미루려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백종문 녹취가 불러온 파장이 조금이라도 가라앉길 기다리는 것이라면, 문화방송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위상 추락이 더 심각해지는 비용까지도 계산에 넣고 있을까?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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