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전국언론노조가 서울 태평로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언론노조 제공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이 정권의 비판 보도 통제 등에 협력한 ‘언론장악 부역자’ 10명을 꼽아 발표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등 방송 관련 규제기구의 수장들과 공영방송사 사장, 이사장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언론노조는 1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적폐’ 청산을 위한 ‘언론장악 부역자’ 1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언론노조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진실을 은폐하는 데 앞장서 온 이들에 대한 단죄와 청산 없이는 언제든지 박근혜, 최순실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며 “대한민국의 헌정과 민주주의, 언론 자유 말살에 앞장 선 자들의 이름과 죄상을 알리고 기록하려 한다”며 명단 발표의 취지를 밝혔다.
언론노조가 꼽은 명단을 보면, 가장 먼저 방송 관련 최고 규제기구인 방통위의 최성준 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언론노조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방송>(KBS) 사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신임 사장 선출 과정과 이길영 전임 이사장 사퇴 과정에 탈법적으로 개입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공영방송의 불공정, 편파보도와 정치적 편향을 방치했고, 뉴라이트 극우 인사들을 공영방송 이사회 이사로 선임”한 것도 선정 이유가 됐다.
2015년 고대영 현 한국방송 사장이 선임되는 과정에서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과 또 다른 이사 1명에게 “고대영씨를 후보로 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우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도 꼽혔다. 김 전 수석은 <교육방송>(EBS)을 통해 창조경제 홍보 캠페인 사업을 벌인 데에 간여했다는 의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던 올해 10월에는 차은택씨와 접촉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 등도 받고 있다.
또다른 방송 관련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박효종 위원장도 명단에 들었다. 그동안 방심위가 권력 비판 보도 등을 심의를 통해 억압했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청와대 내부 사정을 말해주는 근거인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도 방심위 관련 내용이 많이 나온 바 있다. 언론노조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다수의 심의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고 봤다.
양대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과 <문화방송>(MBC) 수뇌부들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은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전화를 받고 고대영 현 사장을 사장 후보로 결정했다는 의혹과 광복 70주년 다큐멘터리 <뿌리 깊은 미래> 등을 ‘좌편향’이라 평가하는 등 보도와 편성제작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고대영 한국방송 사장은 “방송독립과 제작자율성의 근간인 ‘방송편성규약’의 개악을 시도하고, 청와대·여당에 불리한 보도나 내부 비판에 대해 보복성 징계를 남발했다”는 이유 등으로 명단에 들었다. 한국방송은 올해 총선을 앞두고 북한 관련 뉴스를 대량으로 쏟아내거나 ‘사드 배치’ 등의 국면에서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청와대·여당에 유리한 보도 태도로 일관해 비판을 받아왔다.
문화방송에서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을 비롯한 3명이 명단에 올랐다. 고 이사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문화방송의 부실·편파보도를 옹호하고, 불법 해고·청와대 방송을 자행한 경영진을 비호해 문화방송의 몰락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꼽혔다. “문화방송의 불법 해고, 불공정 보도의 총지휘책임자”인 안광한 사장, ‘최승호·박성제는 증거 없이 해고’ 발언이 담긴 녹취록의 주인공인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도 “간판 프로그램인 <돌발영상>을 폐지하고 보도국장 추천제를 파기해 공정방송 시스템을 망가뜨린” 배석규 전 <와이티엔> 사장, 단체협약 파기 등으로 공정방송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도 ‘부역자’로 꼽혔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현재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 청문회가 진행 중인데, 핵심 공범인 언론에 대해서는 증인 채택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언론장악 부역자에 대한 단죄와 언론장악방지법(방송법 등) 개정이 이뤄져야 언론이 정상화되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조준희 와이티엔 사장, 우종범 교육방송 사장 등에 대해서도 사장 선임 과정에 대한 의혹이 나오고 있는데, 사실관계 확인이 더 필요해 오늘 발표하는 명단에는 넣지 않았다.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새로운 증거와 정황이 제시될 때에는 명단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오늘 1차 발표에 이어, 취재·보도 현장에서 공정보도를 가로막은 보도 책임자 및 실무자들, 언론장악을 위해 투입된 낙하산 인사들, 이들에게 논리를 제공한 학자들,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계속 명단을 작성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또 발표된 명단을 취합해 <이명박근혜 정권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으로 출간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각 언론사의 언론노조 본부·지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각 ‘부역자’들의 핵심적인 행적들을 다시 확인하고 비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에스비에스>(SBS) 본부장은 에스비에스 출신인 김성우 전 수석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등 압력을 가해왔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증언이 있다”고 말했다. 역시 에스비에스 출신인 허원제 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해서는,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보도를 예고하자, 허 수석이 에스비에스의 고위 경영진과 접촉하려 시도했다. 경영진의 거부로 접촉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알고싶다> 보도를 무마하거나 통제하려 시도한 게 아닌가 강력한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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