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시작한 드라마 <군주>(문화방송)는 기존 20부작 드라마와 방영 기간이 같은데도 ‘쪼개기 편성’으로 40부작 드라마가 됐다. 방송 화면 갈무리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프로그램 중간에 들어가는 유료 방송 중간광고를 상징하는 말이다. 지난달 10일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군주>(문화방송), <수상한 파트너>(에스비에스)와, 지난 2일 시작한 <최고의 한방>(한국방송)에서도 비슷한 알림이 등장했다. “곧이어 2부가 방송됩니다.” 70분짜리 드라마를 35분씩 2회분으로 나누고, 중간에 광고를 넣는 식이다. 프로그램 시작·종료 타이틀이 들어가는 등 형식 면에서 일부 차이는 있지만, 시청자로서는 유료 방송 중간광고와 구분하기 어렵다.
아이피티브이(IPTV)로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 브이오디(VOD·다시보기)를 구매해 보는 이용자는 더 황당하다. ‘쪼개기 편성’이 브이오디에 그대로 적용된 프로그램이 있어서다. 세 드라마는 기존 16~20부작 드라마와 방영 기간이 같은데도, 졸지에 32~40부작 드라마가 됐다. 일부 프로그램은 2회분을 묶어서 판매하지만, ‘쪼개기 편성’ 그대로 브이오디를 파는 경우 이용자는 돈을 더 내야 한다.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는 불법이다. 이 때문에 ‘꼼수·편법 중간광고’라는 지적이 들끓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은 중간광고가 아니라, ‘프리미엄 시엠’(PCM, 이하 피시엠)이라는 새로운 광고 형태라고 주장한다. 지상파 방송의 이런 행태는 지난해 이미 예능 프로그램 <일밤>(문화방송), <일요일이 좋다>(에스비에스), <해피선데이>(한국방송)에서 시작된 바 있다. 올해는 드라마와 다른 예능 프로그램까지, 점차 도입 장르와 프로그램 개수를 늘리는 모양새다.
지난 2일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최고의 한방>(한국방송)은 같은 날 1·2부가 연달아 방송됐다. 방송 화면 갈무리
■ ‘편법 중간광고 강행’ 악수 두는 이유는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도입 문제는 15년 이상 이어진 해묵은 논쟁거리다. 케이블·위성 방송에 이어 아이피티브이, 종합편성채널 등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규제 형평성, 시청권 훼손 여부 등을 둘러싸고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정부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 시도도 수차례 있었으나, 시청자·언론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상파 방송의 재정 불안과 위기감은 더 강해졌다. 2015년 씨제이이앤엠(CJ E&M) 계열 <티브이엔>(tvN)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광고 단가가 지상파 수준으로 치솟더니, 지난해 씨제이이앤엠의 광고 매출이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 2개사(한국방송·에스비에스)를 앞질렀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16 방송통신광고비 조사’를 보면, 지상파 티브이의 2016년 광고비는 1조6628억원가량으로, 2015년에 견줘 14% 줄었다. 방송 콘텐츠의 인기·화제성을 반영하는 시청률, 콘텐츠영향력지수(CPI)에서도 씨제이이앤엠 계열 채널과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문제는 지상파 방송이 비난을 감수하고 숙원사업이었던 중간광고를 꼼수로 강행했는데도 ‘살림살이’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바코(한국방송·문화방송 방송광고 판매대행사)와 미디어크리에이트(에스비에스 방송광고 판매대행사) 관계자는 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상파 3사가 피시엠을 확대한 5월 방송광고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10~15% 줄었다고 전했다. 미디어크리에이트 관계자는 “피시엠은 지상파 방송의 급격한 매출 감소세를 완화하는 완충장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간광고를 합법화할 경우 지상파 방송이 과열 경쟁으로 공공성보다 상업성을 강화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중간광고가 합법인 티브이엔은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중간광고에서 프로그램과 광고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 정부 방송정책 청사진 필요 전문가들은 지상파 방송사의 ‘꼼수’ 강행 책임에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등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지난해 지상파 방송사가 예능 프로그램에 처음 ‘편법 중간광고’를 도입할 때 방통위가 별다른 조치 없이 지나가며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고 짚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방통위는 종합편성채널 도입·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에 골몰했고, 지상파 방송사에 피시엠의 근거가 되는 ‘광고총량제’를 허용할 때 종편의 간접·가상광고 규제도 함께 풀어준 바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재원 마련에만 급급한 채 방송의 공공성과 공적 역할은 도외시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상호 팀장은 “중간광고를 합법화하려면 브이오디를 일정 기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이를 상쇄할 만한 공공 서비스 제공을 병행해야 한다. 국민이 지상파 방송의 공적 역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의 피시엠을 명백한 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지만, 중간광고를 금지한 방송법의 입법 취지를 훼손한다는 우려가 큼에 따라, 관련 프로그램과 시청자 민원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응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지난달 방송사별 자율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한 상태다. 하지만 현재 방통위는 상임위원회 5명 가운데 4명이 공석으로 사실상 ‘공백’ 상태다. 지상파 방송 광고는 방통위에서, 유료 브이오디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소관으로 업무 영역이 나뉘어 있어 유기적으로 논의가 진행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방송사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상파 방송에서 케이블 방송으로 옮긴 한 예능 피디는 “지상파 방송사는 프로그램을 시청률 잣대로 판단하는 단일한 평가 체계와 빡빡한 편성 구조 탓에 콘텐츠 실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지상파 방송사가 콘텐츠 중심 편성을 하는 게 아니라, 방송 3사끼리 상대 프로그램을 시청률로 이기려고 5분 먼저 방송을 시작해버리는 식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 게 문제”라며 “콘텐츠가 화제가 되면 광고 아닌 다양한 수익원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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