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노종면 <와이티엔>(YTN) 기자가 차기 보도국장으로 내정됐습니다. ‘공정방송 싸움’의 상징적 인물인 노 기자의 내정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는 “축하합니다”, “기대됩니다” 같은 누리꾼의 반응이 줄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노 기자를 포함한 와이티엔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11월5일 와이티엔 이사회의 차기 사장 내정 발표 때 치솟은 노사 갈등의 불길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적폐청산과 방송정상화’ 싸움을 멈추지 않은 와이티엔의 한달을 복기해봅니다.
피우진, 김상조, 윤석열, 노태강. 지난봄, 대한민국은 촛불이 일군 변화를 이런 ‘이름들’로 체감했다. 촛불이 세운 정부가 ‘인사’로 먼저 화답한 덕분이다. 부당 전역에 맞섰던 군인이 국가보훈처장에, ‘재벌개혁 전도사’가 공정거래위원장에, 제 직업의 원칙·소명을 지키려다가 ‘인사 보복’을 겪은 공무원들이 각각 서울중앙지검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임명됐다.
최남수. 11월5일 와이티엔 이사회는 최 전 <머니투데이방송>(MTN) 대표를 차기 와이티엔 사장으로 내정했다. 촛불이 지나간 뒤 공영 언론이 발표한 첫번째 인사였다. 와이티엔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에 희생된 첫 언론이었기에, 회생 과정에 언론계 안팎의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이 이름에서 방송정상화의 울림을 느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최남수’를 아시나요
와이티엔 노동조합(노조)은 ‘무감동’을 넘어 분노했다. 노조는 와이티엔 이사회의 사장 내정자 선임에 앞서 두 차례 발표한 성명에서, 최 당시 후보자에 대한 반대 입장을 연달아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명했다. “위기의 순간 두 차례나 와이티엔을 등진 인사.”(10월26일 성명 중) “지난 9년 언론 암흑기 동안 고통받는 와이티엔을 불구경으로 일관했던 인사.”(11월3일 성명 중) 와이티엔 출신인 최 내정자가 외환위기로 와이티엔이 경영 위기를 맞았을 때, 2008년 정권의 방송장악이 노골화했을 때 각각 해외 연수와 이직을 이유로 와이티엔을 떠난 이력을 지적한 것이다. 9년에 걸친 국가·정치권력의 방송장악 기간에, 저항과 연대에 나선 흔적이 전무한 것도 문제였다. 노조는 최씨의 사장 내정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사장 내정자 반대 입장을 공표하고, 이어 주주사에 사장 내정 철회를 촉구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와이티엔의 대주주는 한전케이디엔(KDN)·한국마사회·한국인삼공사 등으로, 소유 구조상 공영 성격이 강하다. 와이티엔 이사회는 6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들 3대 주주가 추천한 이사가 절반을 차지한다. <한겨레>는 11월 이사 5명과 전화·대면 접촉했으며, 이들 가운데 다수는 “노조의 내정자 반대 투쟁에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근거로는 최 내정자를 선임하는 과정의 절차적 타당성과 최 내정자의 객관적 ‘스펙’을 들었다.
이들의 주장처럼 이번 사장 공모에서 특기할 점은 외부 인사로만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제도 운용이다. 9년 만에 부활한 절차였다. 2008년 마지막으로 운영된 뒤, 사장 선임이 3번 더 이뤄지는 동안 한번도 운영되지 않았다. 사장 지원 서류 한장 제출하지 않은 인사가 이사회만의 ‘밀실’에서 선임돼, ‘사장이 최순실 낙하산 인사’라는 의혹이 제기돼도 회사 신뢰도 훼손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해 6월 노사가 합의한 사추위 제도는 기존 주주사 추천 4명, 회사 구성원 추천 몫 1명 위원 구성안에서 나아가, 기존 주주사 추천 몫 가운데 1명을 시청자 추천 몫으로 돌린 형태였다.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한 것이다.
11월5일 와이티엔 이사회
최남수 전 엠티엔 대표를 사장 내정
노조 “위기 때 와이티엔 등진 인사”
최 내정자 반대 투쟁 돌입
우장균 “보도국 정상화 시급”
사쪽, 30일 노종면 보도국장 내정 발표
노, “최 내정자 ‘적폐청산’ 의지 검증 우선”
최, “빠른 시일 안에 노조 만나고 싶다”
11월3일 사추위는 서류·면접 심사를 거쳐, 최씨를 비롯해 우장균 와이티엔 취재부국장, 고광헌 전 한겨레 사장 등 3명을 최종 후보자로 이사회에 올렸다. ㄱ 사추위원은 <한겨레>에 “사추위 단계의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면서도, “대주주 추천 사추위원들은 이명박 정권 때 해직됐다가 2014년 복직한 우 후보에게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아서, 나머지 위원만 30~40분 질문했다. 말이 적은 한 대주주 추천 위원의 경우 최 후보자에게만 적극적으로 질문했다”고 말했다. 최 내정자는 사추위에서 경영능력 분야 최고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추위 평가는 이들이 뽑은 최종 후보자 3명 이름 외에 이사회에 어떤 내용도 전해지지 않는다. 11월5일 열린 와이티엔 이사회에서 이사 6명에게는 후보자 3명이 공모 접수 때 제출한 이력서·경영계획서 등의 기초 서류만 제공됐다. 와이티엔 이사회는 <한국방송>(KBS) 이사회,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와 달리, 회의 내용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소유 구조상 공영 언론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이사들은 △사장 내정자 선정 기준과 방식 논의 △후보자 적격성 토론 △비밀투표의 순서로 30~40분가량 회의했다. 표결 결과는 최남수 4표, 우장균 2표로 나뉘었지만, 최 후보자 내정 결과만 공개하기로 했다.
와이티엔 이사회가 와이티엔의 공공성·공영성과 미래를 충분히 고려해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평가는 이사끼리도 의견이 엇갈린다. ㄱ 이사는 <한겨레>와 대화하며 “지난 5일 이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최 내정자의 특장점에 대해선 “경제학 석사,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소지하고, 와이티엔 경영기획실장을 역임했으며, <머니투데이방송>도 흑자 운영했다. 상식적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이력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 후보에게 표결한 ㄴ 이사는 “최종 후보 3명 다 100점짜리 후보는 아니었다. 그래서 와이티엔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 선임 기준을 확고히 하고 상대적으로 나은 사람을 뽑자고 얘기했다. 현재 와이티엔은 개혁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위기 상황이고, 이때 리더에게 중요한 건 구성원이 자진해서 따를 수 있을 정도의 신뢰성이라고 봤다. 결과가 아쉽다”고 말했다. ㄴ 이사는 또 “사장 내정자 선정 기준이나 후보자 3명에 대한 적격성 토론도 부족했다. 이사 6명 중 실질적으로 자기 의사를 밝히며 토론에 참여한 건 2명가량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ㄷ 이사는 이사회 자리에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정보가 부족하다”며 “다음부터는 최종 후보자 3명이 이사회에 나와 5~10분이라도 면접하는 절차를 두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8월28일 서울 상암동 와이티엔 본사 로비에 해직 9년 만에 회사로 돌아오는 해직기자들(왼쪽부터 조승호·노종면·현덕수)을 환영하는 영상이 흘러나오는 모습. 전국언론노동조합 와이티엔지부 제공
“사장 선임은 생존의 문제다”
언론계 안팎에선 현재 뉴스 산업 지형에서 사장이 갖춰야 할 대의명분과 경영능력을 분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종합편성채널 출범 4년차를 맞은 2015년, 와이티엔의 시청률은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 총 9곳 가운데 9등으로 떨어진 뒤 줄곧 하위권에 머물렀다. 지난 10월26일 노조가 성명을 발표하며 ‘와이티엔 사장 선임은 생존의 문제이다’란 제목을 붙인 건 과장이 아니다. 2013년 와이티엔에 입사한 15기 기자들도 11월15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사회의 최씨 사장 내정 결정에 대해 “철학의 부재”를 지적하는 동시에, “와이티엔의 유일무이한 콘텐츠는 뉴스다. 사회 구조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약자의 편에 서면서, 정치권력과 자본에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뉴스. 그래야 시청자도 돌아오고 덤으로 수익도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권 시기인 2015년 선임돼 올해 5월 자진사퇴한 조준희 전 사장의 경우, 기업은행장 출신 전문경영인으로서 와이티엔 경영 위기를 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재임 내내 적자 또는 적자 위기에 시달렸다.
“제가 어제 성명을 쓰고 너무 슬프더라고요. 왜 우리는…. 와이티엔은 왜 이럴까.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11월30일 아침 8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와이티엔 사옥 1층에서 열린 사내 집회에서 박진수 와이티엔 노조위원장이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 노조는 사장 내정자 반대 싸움이 길어지자, 우장균 기자가 ‘선 보도국 정상화’를 요청한 걸 받아들여 회사 쪽에 보도국장 임면동의제 시행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 쪽이 노조에 최 내정자를 받아들이는 조건을 내걸면서, 노조는 전날인 29일 저녁 규탄 집회를 긴급 공지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40여명이 참여했다. 노종면·현덕수·조승호 등 ‘복직’ 기자들도 자리했다. 표정이 어두웠다. 이날 오후에 발표된 노 기자의 보도국장 내정 소식도, 그늘을 거두지 못했다.
새 사장 공모와 내정자 반대 싸움 과정에서, 와이티엔 조직의 에너지 소모는 심각했다. 이미 9년 싸움의 피로감, 조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누적될 대로 누적된 상태였다. 이러한 틈을 ‘노노 갈등’ 프레임이 파고들었다. “노조 내 강경파 목소리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일부 주장부터, “해직기자들은 사내 갈등을 일으키고 통제가 불가능한 탈레반”이라는 마타도어가 정치권을 떠돈다는 소문이 회사에 퍼져갔다. ㄴ 사추위원은 <한겨레>에 “1차 사장 공모 때는 후보들이 다 ‘화합’만 강조했는데, 2차 공모 때는 후보자들이 비교적 자기 색깔을 분명히 했다”며 “복직기자들이 폐쇄적이라고 말한 후보도 있었다. 앞으로 함께 힘을 모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을 결합하려면, 외부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아침 8시, 와이티엔 노조는 노조의 ‘보도국 정상화’ 요청에 ‘사장 내정자 인정’을 조건으로 내건 회사 쪽을 규탄하는 사내 집회를 열었다. 김효실 기자
난국을 풀 열쇠는?
“최 내정자에게 ‘적폐청산’의 의지가 있는지를 노조위원장의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해 주십시오. 시대의 요구이자 와이티엔 혁신의 출발이어야 할 ‘적폐청산’이 흔들림 없이 실행될 수 있는 것인지 그 구체적 방안을 확인하고, 선명한 기준과 단단한 제도를 확보해 주십시오.”
1일 노종면 기자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입장 글의 일부다. 노 기자는 “그 기준과 제도만이 ‘적폐청산’을 보장하면서도 여론몰이식의 무질서한 청산을 막는 유일한 해법이요, 이 난국을 풀 유일한 열쇠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보도국장직 수락 여부는 그러한 노조의 검증을 거친 뒤에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각각 해직 6년, 9년 만에 복직한 우장균·노종면 기자가 와이티엔 갈등을 해결할 기회를 열었다. ‘노노 갈등’ 프레임이 가린 ‘적폐청산과 방송정상화’ 가치를 다시 전면에 끌어올렸다.
와이티엔 ㄴ 이사는 이날 <한겨레>에 “최 내정자가 억지로 오는 22일 주주총회 의결 타임라인에 끼워 맞춰서 사장이 되려고 하면, 사장이 되고 나서 더 큰 문제가 생길 거다. 인수 기간에 리더십 역량을 보여 지혜롭게 상황을 해결하면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남수 내정자는 같은 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장 내정자가 된 뒤에 여러 일을 겪으며 와이티엔 상황과 노조 입장을 전보다 더 이해하게 됐다”며 “빠른 시일 안에 노조와 직접 만나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복직 언론인들에게 ‘잃어버린 9년’을 보상할 수 있는 건 사장·국장 같은 ‘자리’가 아니다. 1년 365일 24시간 제대로 된 뉴스를 내는 와이티엔, 시민 신뢰를 회복한 와이티엔이 최우선이다. 이제는 노조원으로서의 투쟁이 아닌, 기자로서 일터에서 공정방송을 구현하는 데 기여·헌신하고 싶은 이들의 바람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최남수 내정자 검증 국면이 본격 시작됐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11월1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남수 사장 내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한전의 자회사인 한전케이디엔(KDN)은 <와이티엔>의 지분 21.43%를 가진 1대 주주다. 김효실 기자
해직기자 복직을 3일 앞둔 지난 8월25일 와이티엔 노동조합 사무실 앞 풍경. 와이티엔 노조는 이날 해직자 복직 환영 행사를 공지하며 “통한의 해직숫자판도 3일 남았습니다. 3일 후면 숫자 교체도 못 한다는 생각에 5일 전부터는 직원들 출근 전에 아침 일찍 바꿔놓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오는 게 당연함이기에 그리 흥분하거나 그리 슬퍼하지도 않으려 합니다. 월요일 8시 복직의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와이티엔지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