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미디어 업계에 위기일까, 기회일까. 영국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올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전망 2020-2024>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소비자 행동이 급변하며 미디어 디지털화가 빠르게 이루어진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그중 영화관 수익과 오티티(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의 주문형 구독 비디오(SVOD·Subscription Video On Demand) 수익이 올해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눈길을 끈다. 2015년까지 영화관 수익이 주문형 구독 비디오 수익의 3배에 달했지만, 2024년 영화관 수익은 반 토막 날 거라는 예측이다. 물론 섣부른 전망일 수 있으나, 최근 국내 멀티플렉스 사업자인 씨지브이(CGV)와 롯데시네마가 그렇게 경계해왔던 넷플릭스 영화를 상영하기로 결정한 걸 보면 다급한 상황이 짐작된다. 2주 홀드백 기간을 둔다 해도 영화관과 플랫폼은 공간적으로나 시청각적으로나 다른 시청 경험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디어 이용자의 습관이 이들 운명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미디어 변화는 필히 이용자 습관의 변화를 동반한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용자 경험’ 또는 ‘콘텐츠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도 새로운 미디어 습관을 확실하게 창출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넷플릭스는 수많은 콘텐츠에 둘러싸인 고객이 헤매지 않고 빠르고 쉽게 원하는 영상을 찾을 수 있도록 고안한 스트리밍 엔터테인먼트 앱을 표방한다. 콘텐츠를 경험할 때 복잡성과 좌절감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사용 구조와 시청 진입 단계가 매우 간단하다. 또 우리나라 오티티 서비스 중 가장 창의적인 플랫폼이라고 생각하는 네이버의 브이라이브(V LIVE)는 스타와 팬이 함께하는 우리만의 커뮤니티임을 강조한다. 아티스트가 플랫폼에 입점해 팬들과 가까이에서 직접 소통하도록 설계한 글로벌 서비스다. 두 서비스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지만 큰 규모의 회원과 팬을 창출할 수 있었던 건 철저히 이용자 관점에서 시청 경험과 콘텐츠를 기획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와 대조적으로 새로운 시청 경험을 창출하지 못한 미국의 오티티 플랫폼 ‘퀴비’는 서비스 개시 6개월 만인 지난달 업계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새로운 모바일 동영상으로 다음 세대 스토리텔링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는 선언에 그쳤다. 우리돈 약 2조원 투자에, 코로나19 언택트 시대라는 큰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패했다. 짧은 콘텐츠라는 길이와 형식에 치우친 안이한 발상의 기획, 시청 경험을 소통할 수 있는 창의적 장치의 부재로 몰락을 자초한 것이다. ‘퀴비’는 겉만 디지털이었을 뿐 실제로 기존 미디어와 다를 바 없는 일방향 서비스였다.
현재의 미디어 이용자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시청 레퍼토리를 구성할 수 있고, 플랫폼을 넘나들며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동영상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한 것도 ‘댓글’이라는 ‘공동시청’ 장치에 의해 만들어진 습관 때문 아닐까 싶다. 돌이켜 보면 초기 텔레비전과 영화의 산업적 성공을 이끈 경험적 관습의 핵심도 누군가와 함께 시끄럽게 떠들며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자유와 유연성에 있었다. 얼핏 콘텐츠 가짓수가 많아지고 다양해질수록 이용자나 플랫폼에 이득이 될 것 같지만, 실상은 복잡성만 가중할 수 있다. 유연하게 습관을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다. ‘어떤’ 미디어 경험을 ‘어떻게’ 발명하는가가 미래 미디어의 성패를 결정하지 않을까.
최선영 ㅣ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