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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8 18:46 수정 : 2019.10.29 02:36

[짬] 제주 4·3유족회 송승문 회장

송승문 제주 4·3유족회장. 허호준 기자

“유족들은 절박합니다. 제주4·3 때 고초를 겪은 분들은 이제 90살이 넘었고,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살아계실 때 명예회복과 정부의 배상이 있어야 한다는 게 유족들 바람입니다. 이 때문에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올해 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투쟁하는 송승문(70) 제주4·3유족회장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명예회복과 정부의 배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주4·3유족회는 지난 6월28일과 지난 18일 두 차례에 걸쳐 국회 앞에서 상복을 입고 제를 지내며 ‘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유족들은 삭발투쟁까지 했다. 다음달부터는 국회 앞에서 2인 릴레이 시위에 들어간다.

26일 오전 제주공항에서 만난 송 회장은 릴레이 시위에 재경 4·3 유족들의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재경 제주4·3 유족 한마당’ 행사에 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상복을 입고 4·3특별법의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돌아가신 영령들에 대해 유가족들이 예의를 차려 위령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4·3특별법이 올해 안에 통과될 수 있도록 후손들에게 힘을 보태달라는 의미에서 국회 앞에서 제를 지내게 된 것입니다.”

제주4·3유족들이 지난 18일 국회 앞에서 상복을 입고 제를 지내며 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4·3 당시 집단수용소에서 태어난 송 회장은 4·3의 수난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족이다. 송 회장의 어머니 문순선(90)씨는 제주4·3 당시인 1949년 6월 귀순한 주민들을 수용했던 제주주정공장에서 송 회장을 낳았다. 당시 할머니도 같이 수용돼 있었다. 문씨는 지난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시어머니(송 회장의 할머니)가 수용소의 같은 방에 있던 아주머니를 불렀고, 그 아주머니가 내 허리를 감싸 안아서 승문이를 낳았다”고 했다. 방 안에 있던 대부분의 수용자도 문씨가 아기를 낳은 사실을 몰랐다.

송 회장의 할머니는 네 살배기 아들(송 회장의 작은 아버지)과 함께 전주형무소로 끌려가 10개월의 징역형을 살고 나왔다. 영문도 모른 채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던 할머니는 나중에야 교도관으로부터 이름이 잘못돼 왔다는 말을 들었다. 같이 갔던 아들은 그곳에서 홍역을 앓다 숨졌다. 송 회장의 아버지는 1949년 10월께 트럭에 실려 정뜨르비행장(제주공항)으로 간 뒤 지금까지 행방불명된 상태다. 제주공항에서 유해발굴작업이 이뤄질 때마다 현장을 찾아 발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유전자 검사까지 했지만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

특별법 개정안 올해 통과 외치며

국회 앞에서 두차례 ‘상복 투쟁’

내달부턴 국회 앞 2인 릴레이 시위

“정치권 추념식 지나면 나몰라라”

4·3 때 귀순주민 수용소에서 출생

부친은 행불, 조모는 억울한 징역

송 회장은 “올해 두 번 씩이나 국회 앞에서 상복을 입고 하소연해도 정치권의 반응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4·3추념식 때는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금방이라도 4·3특별법을 통과시킬 것처럼 말하다가 추념식이 끝나 서울로 돌아가면 더는 언급을 않는다. 오히려 지금도 4·3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제주4·3 당시 형식적인 군사재판을 통해 다른 지방 형무소에 수감됐다 살아 돌아온 4·3 수형 생존자 18명은 재심을 통해 지난 1월 사실상 무죄를 선고받고, 최근에는 형사보상금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시 형무소에 있다가 희생되거나 행방불명돼 재심조차 하지 못한 이들은 부지기수다. 군사재판으로 인한 당시 수형자만 2530명에 이른다.

2017년 12월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4·3특별법 개정안의 핵심은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화와 정부의 희생자 배·보상을 주요 뼈대로 하고 있다. 유족들은 올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이번 20대 국회가 끝나면 개정안이 자동폐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들이 특별법 개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호소하는 이유다.

수형 생존자들이 사실상 무죄 취지의 선고를 받으면서 4·3유족들의 재심청구도 늘고 있다. 행방불명인 유족협의회는 지난 6월 4·3 때 수형 생활을 하다 죽거나 행방불명된 수형인 10명에 대해 직계가족들이 재심을 청구했다. 올해 안으로 400여명이 추가 재심청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송 회장은 “일부 유족들은 ‘수형 생존자들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보상금까지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유해도 찾지 못하고, 죽은 날짜도 모른다. 이런 착잡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유족회 차원에서 재심 소송을 지원하겠다. 수형 생존자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유족회가 유족들을 위해 소송을 지원하지 않으면 비난을 듣게 된다”며 “결국은 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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