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합니다] 고 안상선·권영숙님께 올리는 딸의 글

지난 2011년 9월 외손자(정영진) 돌잔치 때 웃고 있는 안지애씨의 어머니 권영숙(왼쪽)·아버지 안상선(오른쪽)씨의 모습. 안지애씨 제공
‘육아·인간관계·일상’ 공유한 엄마
갑작스런 부재에 울다가 화나다가…
“할머니 별세 때 두분처럼 담대해야겠죠” 2021년 초 아빠(안상선)가 아프시더니 1년이 안되어 돌아가셨다. 향년 72. 2022년에는 엄마(권영숙)가 아프시더니 반년이 안 되어 돌아가셨다. 향년 68. 불과 6개월 사이 두 분이 모두 떠나시니 실감도 나지 않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슬픈 것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가끔 너무 갑작스럽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엉엉 눈물이 나올 때도 있고, 엄청난 분노가 일어 주위 사람들이 이유 없이 미워질 때도 있다. 그러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변함없는 일상이 돌아간다. 두 분 생전, 우리는 매일 통화를 했다. 아빠는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준비했다가 내가 전화할 때마다 하나씩 들려주셨다. 특히 엄마와는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다. 2019년 여름 미국으로 온 뒤로 매일 밤 엄마에게 전화해 인간관계나 육아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사실 나는 워낙 엄마에게 친밀하게 조언을 구하는 ‘착한 딸’은 아니다. 사춘기 이후 부모보다 친구가 더 중요했다. 집에 있기보다 친구들과 나가 놀며 사고 치던 딸이었다. 클럽에서 열심히 놀다가 집에서 전화 오면 바깥으로 나가 얌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했다. ‘도서관이니 나중에 전화 걸게요.’ 어찌보면 영악한 문제아에 가까웠다. 여행을 좋아해 대학 졸업한 뒤 취직도 안 하고 두 달간의 중국 여행 끝에 티베트 라사에 도착해 엄마에게 전화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이제 그만 돌아와”라고 말했다. 어느 누구 못지않게 속을 많이 썩인 딸이다. 그던 내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였던 것 같다. 영진이를 낳은 첫날 모유가 나오지 않자 아이는 이틀을 내리 울었다. 목소리가 쉴 때까지 가느다란 목소리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어댔다. 간호 선생님은 이 아이 크면 보통이 아닐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태어난 날부터 범상치 않던 아이는 다행히 비디오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아이로 컸다. 그러는 동안 부모님이 내게 해준 보살핌을 되돌아보고 여쭈어볼 수 있었다. 어찌 그렇게 화내지도 않고 나를 키울 수 있었는지. 부모님은 믿고 기다렸다고 했다. 영진이는 잘 할 아이이니 너 또한 믿고 기다려주라고 해주셨다. 어느 날은 인간관계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엄마,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을 만나면 너무 힘들어. 그만 만나고 싶어." 엄마는 친구 분들과 경험을 들려주며 사이가 안 좋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되고 더 친해지기도 한다며 너무 극단적으로 관계를 끊지 말라고 하셨다. 물론 내 맘대로 행동하는 때가 더 많았지만 언젠가는 엄마의 조언대로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또 하루는 삶의 지혜를 구하기도 했다. 약속을 잘 까먹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살기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는 자신처럼, 가족들이 잠든 밤에 책상에 앉아 가계부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다 보면 시간과 돈을 효율적으로 쓰고 모으는 지혜를 갖게 될 것이라 하셨다.

지난 2005년 여름 태국 여행을 함께한 어머니(권영숙)와 안지애(왼쪽)씨. 안지애씨 제공

원고료를 드립니다-<한겨레>가 어언 35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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