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근찬씨
<수난이대>의 작가 하근찬씨가 25일 저녁 10시 타계했다. 76살.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사범과 동아대 토목과를 중퇴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단편 <수난이대>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일제에 의해 태평양전쟁에 끌려나갔다가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와 6·25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은, 다소 도식적인 감이 없지 않은 대로, 힘없는 백성들이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겪는 수난과 고초를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주로 농촌 사회를 배경으로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 민족의 시련과 민중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다룬다. 아들을 징용에서 빼 주지 않는 데 앙심을 품고 면사무소에 대변을 누는 아낙네를 그린 <분(糞)>, 전사통지서를 유족들에게 차마 배달하지 못하고 물에 띄워 보낸 죄로 해고당한 마음씨 약한 우편배달부의 이야기인 <미소> 등에서 시련과 애환은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해학적인 태도로 부드럽게 감싸인다.
<왕릉과 주둔군> <산울림> 등의 단편이 전쟁의 파괴적 영향력을 고발한다면, <족제비>와 <일본도> 같은 단편들은 작가 자신의 소년기의 일화들을 동원해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 작품들이다. 등단작 <수난이대>에서부터 뚜렷했던 이런 문학적 방향은 장편 <야호>와 <산에 들에> 등에서 집대성되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로는 단편 <흰 종이 수염> <나룻배 이야기> 등과 장편 <월례소전> <남한산성> 등이 있다. 작가는 대한민국문학상(1970), 조연현문학상(1983), 요산문학상(1984), 유주현문학상(1988)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종순씨와 아들 승일(재미 사업)·승윤(학원장)씨와 딸 승희(학원장)씨가 있다. 빈소는 평촌 한림대병원. 발인은 28일 오후 2시. (031)384-1248.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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