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월 19일 오후 6시45분. 당시 스물여섯의 청년 선우진(왼쪽 사진 왼쪽) 선생이 백범(가운데)과 백범의 맏아들 김신(오른쪽)씨와 함께 나무로 된 38선 팻말을 등지고 서 있다. 단독정부 수립을 앞두고 분단을 막고자 평양에서 열리는 ‘전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참가차 북행하는 이 사진은 ‘백범 비서’ 선우진 선생의 삶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한겨레>자료사진
‘마지막 비서’ 선우진 선생 별세
43년 광복군 입대…백범 방북·피살 현장에
“권총 찬 안두희 경계했어야 했는데” 회고 백범 김구 선생을, 중국 충칭 임시정부 시절부터 광복 뒤 서거할 때까지 4년 5개월 동안 곁에서 모셨던 애국지사 선우진(오른쪽 사진) 선생이 17일 정오 별세했다. 향년 88. 선우진 선생은 1948년 4월 19일 백범 선생이 단독 정부 수립을 막으려고 남북 협상차 38선을 넘어 방북했을 때 수행했으며, 이듬해 6월 백범이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숨질 때도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선우 선생은 40년 만주에서 한인 학생 30여명을 모아 항일운동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 42년 3월 일제 경찰에 발각되자 체포 직전 탈출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중국 중앙군 유격대에 들어가 항일 게릴라전에 참가했고 이듬해 3월 광복군에 입대했다. 선생은 45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에서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을 처음 만났다.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에 배속돼 임시정부 요인 경호를 하는 경위대원으로 활동하다, 광복을 맞아 45년 11월 백범과 함께 귀국했다. 미군정청이 임시정부 요인들한테 정부 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만 입국을 허락하는 바람에 그는 백범을 모시고 펄럭이는 태극기도, 환영하는 인파의 만세 소리도 없는 김포 비행장에 쓸쓸히 내려야 했다. 백범이 서거할 때까지 주석 판공실 비서로 근무한 선생은 지난해 12월 <백범 선생과 함께한 나날들>(최기영 씀·푸른역사 펴냄)이란 회고록을 남겼다. 선우 선생은 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백범을 살해한 안두희가 손에 권총을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이 있던 2층에서 내려오는 장면도 지켜봐야 했다. 백범을 찾아온 포병 소위 안두희를 2층 집무실로 안내한 뒤, 점심을 준비하려고 지하 식당에 내려갔다 총소리에 놀라 올라온 순간이었다. 회고록에서 선생은 “수행비서로서 선생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며 “45구경 권총을 차고 있었던 안두희에게 왜 좀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는지 아직도 한스럽다”고 가슴 아파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채영(78)씨와 아들 엽·환씨, 딸 미선·미라·미령씨 등 2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9시다. (02)2225-1444.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권총 찬 안두희 경계했어야 했는데” 회고 백범 김구 선생을, 중국 충칭 임시정부 시절부터 광복 뒤 서거할 때까지 4년 5개월 동안 곁에서 모셨던 애국지사 선우진(오른쪽 사진) 선생이 17일 정오 별세했다. 향년 88. 선우진 선생은 1948년 4월 19일 백범 선생이 단독 정부 수립을 막으려고 남북 협상차 38선을 넘어 방북했을 때 수행했으며, 이듬해 6월 백범이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숨질 때도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선우 선생은 40년 만주에서 한인 학생 30여명을 모아 항일운동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 42년 3월 일제 경찰에 발각되자 체포 직전 탈출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중국 중앙군 유격대에 들어가 항일 게릴라전에 참가했고 이듬해 3월 광복군에 입대했다. 선생은 45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에서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을 처음 만났다.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에 배속돼 임시정부 요인 경호를 하는 경위대원으로 활동하다, 광복을 맞아 45년 11월 백범과 함께 귀국했다. 미군정청이 임시정부 요인들한테 정부 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만 입국을 허락하는 바람에 그는 백범을 모시고 펄럭이는 태극기도, 환영하는 인파의 만세 소리도 없는 김포 비행장에 쓸쓸히 내려야 했다. 백범이 서거할 때까지 주석 판공실 비서로 근무한 선생은 지난해 12월 <백범 선생과 함께한 나날들>(최기영 씀·푸른역사 펴냄)이란 회고록을 남겼다. 선우 선생은 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백범을 살해한 안두희가 손에 권총을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이 있던 2층에서 내려오는 장면도 지켜봐야 했다. 백범을 찾아온 포병 소위 안두희를 2층 집무실로 안내한 뒤, 점심을 준비하려고 지하 식당에 내려갔다 총소리에 놀라 올라온 순간이었다. 회고록에서 선생은 “수행비서로서 선생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며 “45구경 권총을 차고 있었던 안두희에게 왜 좀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는지 아직도 한스럽다”고 가슴 아파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채영(78)씨와 아들 엽·환씨, 딸 미선·미라·미령씨 등 2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9시다. (02)2225-1444.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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