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트 김.
‘엔터테이너의 원조’ 영화배우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이 30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향년 74. 고인은 2006년 9월 한 호텔에서 공연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최근까지 서울 쌍문동 한일병원에서 투병해왔다.
트위스트 김은 한국 영화계가 낳은 대표적인 성격파 배우로 꼽힌다. 작은 키에 쓰러질 듯한 깡마른 몸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강렬했다. 1962년 영화 <동경서 온 사나이>로 데뷔한 뒤 <맨발의 청춘>으로 이름을 알렸고 <깜보> <불타는 청춘> <남부군> 등 160여편의 작품에서 활약했다. 특히 1964년 암울한 시대를 사는 청춘들을 그린 김기덕 감독의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주인공(신성일)의 주검에 신발을 신겨주는 마지막 모습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1960~1970년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현란한 트위스트 춤솜씨를 보여줘 ‘트위스트 김’이란 예명을 얻은 그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던 국내 첫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이었다. 1967년 ‘폭발 1초전’을 시작으로 가수로도 모두 4장의 음반을 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청바지를 입어 ‘한국 연예계 청바지 1호’로도 불렸고, 1960~1970년대 로큰롤·트위스트와 함께 알 큰 선글라스 유행을 이끌었다.
<맨발의 청춘> 등에서 함께 연기한 신성일씨는 30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전국 댄스대회에서 트위스트를 춰서 1등 한 것을 보고 <맨발의 청춘> 영화사에서 출연 제의를 했는데 당시 너무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면서 “코디 등이 없던 시절 영화 의상을 남대문 시장에서 직접 사와서 보여주고, 동료 배우들의 의상에 대해서도 조언하는 등 패션감각이 뛰어났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개성이 뚜렷하고 노력하는 배우인데 정권 등 여러 가지 영향으로 출연 섭외가 줄면서 밤무대에서 주로 활동한 것이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2003년 배우 송승헌씨가 자신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했다는 오해를 사면서 소송에 휘말렸고, 2005년에는 그의 예명인 ‘트위스트 김’이 불법 성인 인터넷사이트에 무단 도용되자 민사소송도 벌이는 등 힘겨운 기간을 보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옥이씨와 아들 준홍(학원강사), 딸 영신(미국 거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한일병원이며, 발인은 2일 오전 9시다. (02)998-9123.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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