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용
[가신이의 발자취] 건축가 정기용 선생
우리시대 위대한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11일 세상을 떠났다. 정기용 그는 당대 최고의 사회적 건축가요 공간의 시인이었다. 사회적 기능이 서로 다른 건축가와 시인을 한 몸으로 빚어낸 놀라운 인물, 그가 정기용 당신이었다.
당신만큼 공공건물을 설계할 기회를 많이 가졌던 건축가도 드물 것이다. 계원조형예술대 다수 건물과 진주동명고등학교 교사 신축, 그리고 무엇보다 ‘무주 작업’, ‘기적의 도서관’ 연작을 통해 당신은 우리 사회 공공건물 건축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셨다. 나는 당신이 무주에서 만들어낸 군청, 면민의 집, 간이버스정류소, 시장터, 공설운동장 등을 보고 느낀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주 작업에 헌신적으로 매달릴수록 당신의 설계사무실은 오히려 더 큰 손실을 입었지만, 덕분에 전라북도 무주군은 한국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수많은 공공건축물을 지역 보물로 갖게 되었다.
단순히 공공건물을 많이 지었다고 사회적 건축가가 되는 것은 아닐 터. 당신은 어떤 건물을 짓더라도 늘 그 생김새와 쓰임새를 생태적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보고, 건물이 온전한 삶을 살도록 했다. 무주군 안성면 주민의 집을 지을 때 지역 노인들의 바람을 담아 목욕탕을 넣은 사례로 보듯 당신은 공공건물의 주인은 주민임을 늘 잊지 않았다. 건축에 사회적 관점과 민주주의 원칙을 반영하고자 당신만큼 노력한 건축가가 있을까. 당신의 건축이 유독 언제나 사회적 호소력을 갖고 많은 후학들과 지방자치체 공공건물 담당자들에게 다가간 것은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기용 당신이 건축의 사회적 의미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진정한 ‘공간의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그리스말 ‘포에테스’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을 뜻했다고 한다. 건축가도 당연히 그런 사람이다. 당신이 시인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건축을 통해 한국의 공간을 새롭게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 공간의 시인인 까닭은 역시 건축을 우리시대의 중요한 사회적 발언의 장으로 만든 데 있을 것이다. 지금 건축가 중에 당신만큼 건축과 공간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한 이는 없었다.
당신은 가난했다. 생전에 지팡이로 꽂을 땅 한 뼘도 소유하지 못했으니까. 무주의 공공건물을 도맡아 짓고, 기적의 도서관 연작으로 뭇사람을 감동시켰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설계한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가 평생 자기 집 한 채 갖지 못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가난하게 살아 세상 살 미련이 크게 없었던 것일까… 병원비라도 덜어드리고자 지인들이 서울 가회동 북촌미술관에서 16일부터 기금 마련전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당신은 그조차 기다려주지 않고 훌쩍 가버리셨다. 이제 우리는 당신 없이 ‘2011년 봄, 정기용을 응원하다’ 전을 열어야 한다.
정기용. 당신은 많은 선물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다. 수많은 건축물만이 아니다. 당신은 늘 멋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나에게는 ‘공간의 정의’, ‘당나귀길’, ‘의림’과 같은 소중한 공간 개념들을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했다. 우리시대 위대한 공간의 시인이시여, 편안히 가시라.
강내희(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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