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건
재일동포 힘모아 첫 민간자본은행 일궈
자전거 타이어 장사로 시작
일본 굴지의 금융가로 우뚝
서울올림픽때 거액 기부도
자전거 타이어 장사로 시작
일본 굴지의 금융가로 우뚝
서울올림픽때 거액 기부도
국내 최대 은행의 하나인 신한은행을 세운 이희건 명예회장이 지난 2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살.
1917년 경북 경산에서 가난한 농민의 6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열다섯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의 쓰루하시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암거래 단속을 이유로 쓰루하시 시장을 강제 폐쇄하려고 하자 이를 막아내 동포들의 큰 신망을 얻었다.
1955년 동포 상인들을 규합해 오사카흥은을 설립했으며, 이후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신용조합을 제치고 일본 내 가장 실적이 좋은 조합으로 성장시켰다. 이 명예회장은 재일동포들이 한국에 투자할 때 융자받기가 쉽지 않자 직접 국내에 은행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1974년 교포들의 국내투자 창구 구실을 하는 본국투자협회를 설립했고, 1977년에는 신한은행의 전신인 제일투자금융을 세웠다.
신한은행이 설립된 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82년이다. 신한은행은 자본금 250억원, 총 4개 영업점 274명으로 문을 열었다. 일본 전역에 산재해 있던 340여명의 재일동포들이 출자금을 모아 국내에서 처음으로 순수 민간자본 은행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명예회장은 호탕하고 리더십이 강한 인물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엄청난 사업비로 고민하던 한국 정부에 재일교포들의 성금 100억엔을 모아 기부하는 등 고국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무궁화훈장을 받았다. 당시 재미동포들보다 더 큰 성금을 모아 쾌척했다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일본에서 국내 송금 운동을 주도해 재일동포들의 조국 돕기 운동에 앞장섰다. 신한은행 회장 시절에는 어려운 경제 여건 아래서도 주주들의 힘을 결집해 유상 증자를 성공시키고 은행의 조직 및 시스템 전반을 변화시키는 강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신한은행은 2009년 9월 아시아계 은행 최초로 일본 내 현지법인인 에스비제이(SBJ)은행을 설립해 일본으로 역진출하면서 재일동포들의 꿈을 실현했다. 그는 평소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좌우명을 들려주며 신한은행 임직원을 독려했으며, 조그만 점포로 출발한 신한은행이 짧은 기간에 국내 최고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는 데 정신적 지주 구실을 했다.
이 명예회장의 유족은 신한금융 주주총회가 끝날 때까지 알리지 말라는 이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가족만 참석한 채 영결식을 마쳤으며 개별적인 분향도 받지 않기로 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유족과 협의해 별도 고별식을 준비할 예정이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신한의 역사이자 조국을 사랑한 큰 거목이 졌다”며 “고인의 창업이념을 받들어 전 임직원이 심기일전해 신한금융을 세계 일류 금융그룹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