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영화감독 박철수씨 별세
영화감독 박철수씨 별세
‘러브 컨셉추얼리’ 최종편집 마치고
19일 귀가중 음주운전차에 치여
60대 왕성한 창작열 담은 3편 ‘유작’ 박철수 영화감독은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영향력이 커진 영화계에서 자신이 이제 “퇴물 취급을 받는다”며 아쉬워하곤 했다. 박 감독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5시간 전인 18일 저녁 7시께 이제 유작이 된 <러브 컨셉추얼리>의 최종편집을 마쳤다고 한다. 그와 마지막 편집작업을 함께 한 이세일 프로듀서는 “새벽까지 촬영이 이어져도 60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에너지를 보여준 분”이라고 떠올렸다. 대표작 <학생부군신위>에서 ‘박 노인’의 부음이 가족들에게 느닷없이 전해졌듯, 박 감독의 죽음도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다가왔다. 그는 19일 0시30분께 자택 근처인 경기도 용인시 죽전동의 횡단보도를 건너다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눈을 감았다. 향년 65. 박 감독은 파격적인 형식 실험과 주제의식으로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다. 1948년 경북 청도 태생인 그는 79년 데뷔작 <밤이면 내리는 비>로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방송사 드라마 피디를 하다 88년 영화계로 돌아와 <접시꽃 당신>(1988), <물 위를 걷는 여자>(1990), <오세암>(1990)을 만들었다. 95년엔 아파트에 사는 두 여성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폐와 심리를 들여다본 화제작 <301 302>를, 이듬해엔 한국의 장례 의식을 엿본 <학생부군신위>를 내놓았다. <학생부군신위>는 캐나다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최우수 예술공헌상을 받아 한국 영화의 국제영화제 진출 길을 넓혔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는 한국 최초 디지털 장편영화 <봉자>(2000), <녹색의자>(2005)를 연출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영화계가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된 이후 그는 “거대 자본과 스타 없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최근까지 1억5000만원 안팎의 저예산 영화 연출에 집중했다. 정식 영화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김기덕 감독을 진흙밭에서 발견한 것도 그였다. “95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심사를 갔다가 예심에서 벌써 버려진 시나리오가 있어 주워서 읽었는데 새로움이 보였고 전율이 와 본선에 진출시켰다”고 그는 밝힌 적이 있다. 이게 당시 대상작인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 <무단횡단>이다. 이동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박 감독은 <301 302>처럼 영화 내용과 메시지가 실험적이고, 삶과 죽음을 다룬 <학생부군신위>처럼 내러티브(이야기 전개) 형식에서 파괴적인 감독이었다”고 말했다. 김의석 영화진흥위원장은 “박 감독은 인간 본능에 관심이 깊은 연출자였으며, 최근엔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저예산 영화 상영 공간을 늘려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의 생전 마지막 개봉작이 된 <베드>를 지난 1월 배급한 이재식 마운틴픽쳐스 대표는 “박 감독님이 자신의 흥행작 <301 302>를 리메이크하고 싶어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대표는 “술을 드시면 최근 <부러진 화살> 등을 흥행시킨 정지영(67) 감독처럼 ‘나도 작품 하나 터뜨려야 하는데…’ 하며 강한 열정을 보였다”고 기억했다. 생애 끝까지 영화 편집에 매달린 박 감독은 떠났지만, 아직 스크린에 걸리지 못한 <생생활활>, <마스터클래스 산책>, <러브 컨셉추얼리> 등 세 편이 유작으로 남았다. 유족으로 부인 최은희씨, 딸 가영, 아들 지강씨가 있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21일이다. (031)787-1508.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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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귀가중 음주운전차에 치여
60대 왕성한 창작열 담은 3편 ‘유작’ 박철수 영화감독은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영향력이 커진 영화계에서 자신이 이제 “퇴물 취급을 받는다”며 아쉬워하곤 했다. 박 감독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5시간 전인 18일 저녁 7시께 이제 유작이 된 <러브 컨셉추얼리>의 최종편집을 마쳤다고 한다. 그와 마지막 편집작업을 함께 한 이세일 프로듀서는 “새벽까지 촬영이 이어져도 60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에너지를 보여준 분”이라고 떠올렸다. 대표작 <학생부군신위>에서 ‘박 노인’의 부음이 가족들에게 느닷없이 전해졌듯, 박 감독의 죽음도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다가왔다. 그는 19일 0시30분께 자택 근처인 경기도 용인시 죽전동의 횡단보도를 건너다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눈을 감았다. 향년 65. 박 감독은 파격적인 형식 실험과 주제의식으로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다. 1948년 경북 청도 태생인 그는 79년 데뷔작 <밤이면 내리는 비>로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방송사 드라마 피디를 하다 88년 영화계로 돌아와 <접시꽃 당신>(1988), <물 위를 걷는 여자>(1990), <오세암>(1990)을 만들었다. 95년엔 아파트에 사는 두 여성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폐와 심리를 들여다본 화제작 <301 302>를, 이듬해엔 한국의 장례 의식을 엿본 <학생부군신위>를 내놓았다. <학생부군신위>는 캐나다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최우수 예술공헌상을 받아 한국 영화의 국제영화제 진출 길을 넓혔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는 한국 최초 디지털 장편영화 <봉자>(2000), <녹색의자>(2005)를 연출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영화계가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된 이후 그는 “거대 자본과 스타 없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최근까지 1억5000만원 안팎의 저예산 영화 연출에 집중했다. 정식 영화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김기덕 감독을 진흙밭에서 발견한 것도 그였다. “95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심사를 갔다가 예심에서 벌써 버려진 시나리오가 있어 주워서 읽었는데 새로움이 보였고 전율이 와 본선에 진출시켰다”고 그는 밝힌 적이 있다. 이게 당시 대상작인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 <무단횡단>이다. 이동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박 감독은 <301 302>처럼 영화 내용과 메시지가 실험적이고, 삶과 죽음을 다룬 <학생부군신위>처럼 내러티브(이야기 전개) 형식에서 파괴적인 감독이었다”고 말했다. 김의석 영화진흥위원장은 “박 감독은 인간 본능에 관심이 깊은 연출자였으며, 최근엔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저예산 영화 상영 공간을 늘려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의 생전 마지막 개봉작이 된 <베드>를 지난 1월 배급한 이재식 마운틴픽쳐스 대표는 “박 감독님이 자신의 흥행작 <301 302>를 리메이크하고 싶어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대표는 “술을 드시면 최근 <부러진 화살> 등을 흥행시킨 정지영(67) 감독처럼 ‘나도 작품 하나 터뜨려야 하는데…’ 하며 강한 열정을 보였다”고 기억했다. 생애 끝까지 영화 편집에 매달린 박 감독은 떠났지만, 아직 스크린에 걸리지 못한 <생생활활>, <마스터클래스 산책>, <러브 컨셉추얼리> 등 세 편이 유작으로 남았다. 유족으로 부인 최은희씨, 딸 가영, 아들 지강씨가 있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21일이다. (031)787-1508.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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