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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연탄으로 빵 굽고, 팔릴 양을 채 만들지 못한 때도 있었죠”

등록 2015-12-27 20:42

오른쪽이 전서봉씨
오른쪽이 전서봉씨
전주 ‘영화의 거리’ 60년 지킨 제과점 폐업 전서봉씨
전북 전주국제영화제의 주 무대인 ‘영화의 거리’에서 60년가량 지켜온 제과점이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객사3길 영화의 거리에 위치한 동그라미제과. 이곳은 영화의 거리를 찾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다녀갔을 지역 명물이다. 이 제과점은 대표 전서봉(68)씨가 은퇴할 나이가 되고, 프랜차이즈 빵집이 골목상권을 잠식하자 경영난으로 폐점 절차를 밟게 됐다.

전씨는 “나이가 들고 자식들도 모두 키웠다. 영업도 예전 같지 않아 고심 끝에 폐업을 결정했다. 한평생 운영한 가게를 닫는 것이 아쉽고, 아직도 잊지 않고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씨 부인은 “연구를 오래 한 교수님들이 안식년이 필요하듯, 제과점을 너무 오래 해서 당분간 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거리 중심부에 자리잡은 동그라미제과는 1956년께 전신인 ‘호남제과’ 때부터 지금의 자리를 지켜왔다. 전씨는 1976년 호남제과를 인수해 상호를 동그라미제과로 바꾸고 지금껏 영업했다. 동그라미는 빵처럼 둥글고 밝게 살자는 뜻으로 이름지었다.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제과점 앞 영화관도 삼남극장→피카디리극장→씨지브이(CGV)로 이름이 바뀌었다. 세 든 제과점 건물도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너무 오래돼 앞으로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고흥 출신인 전씨는 19살에 제과에 입문해 태극당, 한양제과, 금강제과, 이화당 등 당시 전주 시내 유명 제과점을 돌며 7년가량 수련한 뒤 군 제대 후 지금 자리에 가게를 차렸다. 그는 “연탄 가마로 빵을 굽고, 사과와 팥을 사다가 잼을 만들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이곳은 1980년대에는 너무 장사가 잘돼 다음날 판매할 빵을 다 만들지 못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전씨는 “80년대에 가장 장사가 잘됐다. 덕분에 1남2녀 자식들을 모두 키우고, 지금껏 먹고살도록 해준 고마운 가게”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전씨의 딸은 “더욱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게 아빠의 소신”이라며 인터넷 블로그에 동그라미표 수제 초코파이를 소개하기도 했다. 수년 전부터 전주에서 수제 초코파이가 유행했는데, 전씨의 빵맛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초코파이를 만들도록 추천했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한 수제 초코파이가 다른 제과점의 것보다 부드럽고 고소하며 덜 달다고 딸은 평가했다.

전씨는 제과업계 후배들을 걱정했다. 그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친지를 방문할 때 동네제과점에서 선물을 많이 샀는데, 지금은 곳곳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겨 소상공인들이 먹고살기가 너무 어렵다”고 막막한 현실을 토로했다.

동그라미제과는 27일 마지막 빵을 구웠다. 보름 전부터 단골과 지인 등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는 31일까지 남아 있는 빵과 잼 등을 판매하고 폐점한다. 전씨는 “대기업들이 소상공인들을 조금 배려해주고, 제과업계의 후배들도 자기만의 레시피와 기술 개발로 경쟁력을 키워서 상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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